괜찮아. 내 사이즈는 내가 알아.
요즘 한 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가스 라이팅'이 아직 내게는 신선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인생은 가스 라이팅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로 나눌 수 있다.
다른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큰 미덕인 줄 알았던 나는 설혹 상대가 좀 무례하더라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는 편이었다.
예민하게 남의 감정을 파악하고 조심하는 것은 물론 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원' 하나가 있는 듯했다.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그만큼 '원'을 차지했다.
내 입장에서 다소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져도 상대방의 나이를 더 믿거나, 경력을 믿거나 심지어는 나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염려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했었다.
그럴수록 재미없어졌다.
나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인 호의나 충고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맞지 않는 구두를 벗으려는데. 이렇게 기가 막힌 컬러를 놓칠 거냐고, 그깟 사이즈쯤은 깔창 한 장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충동질했다. 강하게 윽박지르기라도 하면 정신이라도 번뜩 차릴 텐데 슬금슬금 '원'의 절반을 살짝살짝 넘어온다.
그런가. 싶어 어물쩡 계산을 마친 구두는 역시 사이즈가 맞지 않아 몇 번 신지도 못하고 신발장안에 처박혀 있기십상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구두를 사는 사람은 나고 이 구두를 가지고 갈 사람도 나라고.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나라는 점을 명심하기로 했다.
오롯이 내 책임으로 돌아오는 모든 문제는 결국 나의 선택이 최우선 되어야 하고 내 감정이 가장 존중되어야 한다.
이 말도 맞는 것 같고 저 말도 맞는 것 같은 혼란 속에서 교묘하게 내 감정을 파고드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들.
그래서 구두는 누가 신을 건지만 명확하게 인식하기로 했다.
응. 그건 네 생각이고. 괜찮아... 내 사이즈는 내가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