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처럼 몰려오는 우울

잘 견뎌보기

by ksoo

허겁지겁 알약이라도 삼켜야 한다. 먹구름처럼, 산사태처럼,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듯 하는 우울감 앞에서는 말이다. 세차게 그리고 빠르게 닥치는 그런 상황에서는 알약이라도 허겁지겁 먹어야 된다. 피할 수 있을까? 이 감정의 파고를. 때로 피하기 힘들게 되면 굴복할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켜지고 되고 그 피할 수 없는 우울에 강타당해 나뒹굴게 된다.


내 친구도 그랬을 거다. 이성만 남아 있는 듯한 그 감성의 메마름 - 사실은 우울감, 그 메마른 폭풍우에 굴복해서 나뒹굴고 말았을 거다. 자기가 생각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생각이란 건 과연 우리가 하는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 우리를 그 생각을 만들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유의지의 한계.


종종 우리가 내린 결론이 매우 논리적이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감정적인 것이라면 참... 좌절스러운 일이다. 슬픈 일이다. 문제는 이럴 때 별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별로 그러고 싶은 욕구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 우울이 완전히 나의 마음 생태계의 지배 종이 되어버렸을 때. 뿌리를 내리고 우울의 비를 뿌리고 차곡차곡 자라게 한다. 모든 땅을 거머쥐려고 한다.


저 바깥 들판의 푸르른 자연이라면 이 비를 그치게 할 수 있을까. 숨통이 트이는 여행이라면?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 쓰는 글이라면? 맛있는 요리라면? 아주 몰입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드라마라면?


닥치는 대로 해 본다. 아주 긴 한숨도 쉬어보고. 오히려 우울한 음악도 들어보고.


하다 하다 모든 우울한 이들을 위한 기도라도 해본다. 이 어둠이 너무 짙어지지는 말게 해 달라고 말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도가 나의 우울을 걷어가지는 않을는지 바래보며. 이러면서 친구랑 혹은 가족이랑 평소보다 더 많은 대화, 통화도 해 본다. 우울이 타인과의 유대감을 가지게 하는 건 또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울이 유대감을 불러온다. 그렇다면 거꾸로 우울이 생긴 건 유대감의 부족함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또 우울한 사람은 대부분의 피상적인 관계가 싫은 법이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기도해 본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 우울이 우리의 모든 생각을 덮치지는 말게 해 달라고. 그 늪을 빠져나올 수 있는 일말의 땅 한 자락이라도 남겨 두기를. 그리고 그곳에서 희망의 풀 한 포기가 나게 해 주기를.


이런 기도도 우울할 때는 위선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저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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