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격려와 조종 사이
하임 기너트의 <부모와 아이 사이>라는 책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가족은 자동차로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가고 있었다. 여섯 살 된 에이번은 뒤에 앉아 있었는데, 조용히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 품이 꼭 천사 같았다. 엄마는 에이번이 칭찬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번, 너 참 침착하구나. 그렇게 얌전하다니.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잠시 후, 에이번은 차에 달린 재떨이를 빼내, 속에 든 내용물을 부모에게 쏟았다.
엄마는 에이번이 칭찬 받을 만하다는 생각에 격려하려고 말을 걸었을 것이다.
에어번은 왜 재떨이를 꺼내 부모에게 쏟아 버렸을까?
하임 기너트의 책에는 저 장면의 뒷이야기가 있다.
몇 주일 뒤 에이번은 그때 자신이 난리를 부린 까닭을 말해 주엇다. 그는 자동차 뒤에 앉아서 줄곧 어떻게 하면 앞자리의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아 있는 어린 동생을 없애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엄마가 착하다고 칭찬하자 에이번을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자신은 칭찬을 받을 만큼 착한 마음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재떨이가 눈에 띄었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칭찬은 때로 족쇄가 된다.
착하다는 칭찬을 들은 아이는, '계속 착해야 해.'라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부담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일부러 안 착한 행동을 골라서 한다. 계속 착해야 한다는 말의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착하다는 칭찬을 한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아이를 격려하려고 말을 걸었겠지만 그 마음속에는'이 먼 길이 끝날 때까지 계속 에이번이 착하게 앉아 있어 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아이에게 '너 착하구나.'라는 칭찬으로 족쇄를 채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산타가 집으로 찾아오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날짜가 안 맞아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 전날인 12월 23일에 산타가 와서 선물을 주게 되었다. 벌써 8살이 되어 알 거 다 아는 큰 딸이 "산타가 왜 이렇게 일찍 와?"하는데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는 산타가 일찍 온대."하고 얼버무렸다. 물론, 마음속에는, 이렇게 말해 두면 이 말이 족쇄가 되어 앞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로 살아가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가 쓴 일기를 우연히 보고, 역시 칭찬으로 아이를 조종하려 해 봤자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착하다는 칭찬을 들은 에이번은 계속 착한 채로 있기는커녕 재떨이를 엎었다. 자기가 아닌 거 뻔히 아는데 세상에서 제일 착한 아이라는 말을 들은 우리 딸 역시 착하다는 칭찬에 속지 않는다. 다만 의혹에 휩싸일 뿐.
올해 6살 되는 둘째 딸이 있다. 엄마가 칭찬으로 "아유 잘한다~ 최고야." 하면 이상하게 삐딱한 반응을 보이면서 엄마를 때리는 시늉을 하고 눈을 흘겨서 엄마가 속상해 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 선생님들과 올바른 칭찬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해서 둘째에게 물어 봤다.
"엄마가 칭찬할 때,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내가 엄청 착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하면 좋아. 내가 조금 착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하면 싫어."
"칭찬했는데 싫으면 어떻게 해?"
"주먹 펀치!"
이 작은 아이도 별 거 아닌 일로 과장되게 칭찬하면, 그 말이 자기를 조종하려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거부 반응을 먼저 보인다.
그래서 많은 칭찬 이론서에서 "잘했어, 최고야, 대단해, 멋져." 대신에, "네가 쓴 약을 다 마셨구나. 네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구나. 네가 혼자서 퍼즐을 완성했구나."처럼 아이가 한 행동만 묘사해 줘도 된다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