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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May 29. 2024

언제라도 꺼내 보세요

김경인, 한밤의 퀼트


2) 서랍들


2부 서사의 주체는 여성, 그리고 서랍을 가지고 있다. 그 서랍은 타인에 의해 (대개 남자들) 열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의적이면서 동시에 타의적이기도 하다. 뭐가 됐든 자신을 열고 보여 준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있으리라. 일전에 심보선의 글을 읽으며 좋아하는 구절이 떠오른다. 서랍을 열면 서랍은 토하는 기분이 들까. 서랍이란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담고 저장하는 곳이며 대개 숨기고 싶은 것일 수도 또는 너무나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히 넣어 두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조금 더 확장하자면 자신의 서랍이 많은 사람 그것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는 사람이 있겠고 또는 그것을 열어 보여 주거나 그 안에 소중하게 여기거나 그러고 싶은 것을 넣어 감금시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서랍이라는 서사 안에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가. 사실 시를 더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또는 내가 그랬다면 보편적 상징의 메타포나 은유가 아닌 그 너머의 것들을 읽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조금 더 생각해 보고 글을 다듬어 보기로 한다.


밤이었는데, 나는 잠을 자고 있었는데, 누가 잠 위에 색실로 땀을 뜨나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군가 커다란 밑그림 위에 바이올렛 꽃잎을 한 땀 한 땀 새기나보다, 바늘이 꽂히는 곳마다 고여오는 보랏빛 핏내, 밤이었는데, 잠을 자고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꽃을 수놓고 있었나보다,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꽃부리가 핏줄을 쪽쪽 빨아먹고 무럭무럭 자라나보다, 나는 온몸이 따끔거려 그만 일어나고 싶은데, 여자아이가 내 젖꼭지에 꽃잎을 떨구고, 나는 아직 잠에서 깨지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가슴팍이 좀 환해진 것도 같았는데, 너는 누구니 물어보기도 전에 가슴을 뚫고 나온 꽃대가 몸 여기저기 초록빛 도장을 콱콱 찍나보다, 잠이 깨려면 아직 멀었는데, 누가 내 몸에서 씨앗을 받아내나보다, 씨앗 떨어진 자리마다 스미는 초록 비린내, 나는 그만 꽃잎들을 털어내고 싶은데, 이마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진 꽃잎을 떨구고 싶었는데, 밤이었는데, 나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는데

/ 한밤의 퀼트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는 사람과 매일을 자고 싶은데 잘 수 없게 누군가 깨우는 사람 또는 누가 깨우지 않으면 종일 잠만 자는 사람들 중 어떤 삶이 더 나을까 혹은 더 괴로울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말했었지, 잠에 든다는 건 고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던 시인의 또는 그건 죽는다는 거라는 말을 동시에 떠올린다. 결국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은 깨어 있지 않은 삶은 도저히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클라멘>을 통해 '여자는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지운다 / 흰 커튼이 무표정하게 흔들리는 / 거울 속, 여자가 축 늘어진 가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모습을 보이지만 '그녀는 선반 위에 남은 시클라멘 씨앗을 / 가슴에다 털어넣고 잠이 든다' 그리고 '그녀가 뒤척인다, 몸속 심긴 씨앗들 / 싹이 튼다, 젖 몽우리 단단하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여자이지만 그녀는 시클라멘을 계속해서 키워낸다. '텅 빈 무덤 속 파고들며 물기를 빨아올린, / 심장처럼 쿵쿵 뛰는 이파리들이 / 손을 휘감고 자란다' 희생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운명일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무엇인가를, 시클라멘을, 키워 생장해 내는 모습은 여성으로서의 성장통으로 보인다.

  

어쩌면 좋아요
안개가 몸속으로 밀려와요
나 겨우 걸음마를 배웠을 뿐인데
안개가 발목을 칭칭 감아요
하루종일 지직거리는
고장난 태양 라디오에서
이제 내 이름이 흘러나오려는데
안개가 혀끝을 움켜쥐나 봐요
숨이 막혀요

어디선가 나타난 축축한 입술이
몸안 어슴푸레한 길목을 핥고 있어요
길목 앞을 서성이는 어린 나까지
돌돌 말아 삼켜버리잖아요
어쩌면 좋아요
몸속 지평선이 조금씩 지워지나봐요
누군가 안 보이는 저곳에서
내 몸에 지문을 쾅쾅 찍나봐요

나는 투명한 얼룩으로
남으려나봐요

/ 안개 속의 산책


이 시를 읽으며 내면 심리의 중압감에 대해서 떠올렸다. 안개가 나를 침범한다는 위압감과 함께, 내가 나를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데 결국 다시 안개라는, 앞이 안 보이는 곳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에 무한한 두려움을 느낀다. 다만 시인이라면, 또는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이렇게 해석했을 것이라 믿는다. 세계의 무게감과 숨 막히는 기분을 그대로 만끽해 보는 것, 어쩌면 나는 실재적인 또는 눈에 보이는 존재로 남을 수 없겠지만 그것을 바란다 하더라도 어쩌면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것 자체가 나라고 말하는 것 또한 하나의 정의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걷다보면 몸속 서랍이 덜그럭거려 나사가 빠져나간 것 같아 몸이 자꾸 비틀거려 다리가 제멋대로 달아나려고 해 부서진 채로 우리는 길 위에 쏟아졌어 나사를 찾으려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계속되고, 뿌연 목덜미와 긴 머리카락이 시곗바늘에 피투성이로 휘감기면 눈과 코도 훌렁 벗겨져 우리는 천 개의 입만 가진 뚱뚱하고 딱딱한 서랍으로 남지 천 개의 입은 한꺼번에 열리고 닫히지 떠나온 집이 찾아와 눈 부릅뜨고 샅샅이 뒤지면 입을 활짝 열어 수만 개의 열쇠를 삼켜버리다가도 엄마를 찢고 들어가면 그곳까지 쫓아와 매달리는, 하루종일 아름다운 시계소리에 맞춰 피 흘리는 서랍

 / 서랍들


개인이 가진 또는 여성이 가진 서랍에 많은 것들이 매달리고 너무나 많은 것을 담기 위해서 또는 그런 과정들을 통해서 서랍은 결국 부서지고 무너지고 만다. 쏟아져 버리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카테고리만 남게 되는 것이다. 다만, 있었던 자리만을 알 수 있는 그런 공백의 빈 공간을 응시한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런 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공허감, 또한 서랍의 주인이 맡아야 할 책무일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이 허무로 점철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독자들이 언제라도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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