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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May 22. 2024

관조와 냉정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의 시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불온한 검은 피>는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읽었다. 그때의 감상을 가장 가까운 친구와 공유하는 일은 우리만의 아주 즐거운 우정의 과정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의 서사는 이십대라는 청춘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후 구매해서 읽은 책이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와 같은 작품들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친구가 말해 주어 재판된 불온한 검은 피를 구매했었다. 허연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라면 그의 날카로움을 좋아한다. 예리하고 회의적인 그러나 그것이 축축하고 끈적한 느낌이 아닌 가볍고 날카로운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매우 잘 벼린 칼날과 같다.


부자유스럽게 날이 저문다

아무 말 없이 그대는 여기서 하루를 끝내고, 그대 여기 누워 더 이상 시퍼런 바람이 되지 않아도 되겠지. 검은 빗물이 그대가 꾸는 꿈속을 흘러 땅으로 스며들기를. 다시는 빗물이 그대의 등을 타고 아프지 않게 흘렀으면.

나뭇가지 꺾어 계곡 물에 띄운다. 남겨진 그대 숨소리 검은 강과 함께 흘러가기를. 8월의 서늘함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꿈이기를.

여기엔 그대가 남고 나는 떠나서 죽어도 끌어안을 수 없는 그리움이

또 자갈들처럼 굴러다니기를.

그렇게 또 수만 년이 흐르기를.

/ 슬픈 빙하시대 1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이 책 안에는 세상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다. 다만 추상적이고 장황한 서사 대신 단순하고 짧은, 그래서 명징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있다. 그 점이 내 마음을 늘 동요하게 만들고 시선을 끈다.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감각을 원하는 시인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저 젊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젊음의 근본적인 구성과 안에 담긴 생경함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처절한 자아의 탐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감탄한다. 자기 파괴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발판이고 원동력을 가지고 싶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이 엄청난 고통과 시련 또는 좌절과 고난이 있을 것이리라. 하지만 작가는, 화자는,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의 심연까지 파고들어 철저하게 무너진다. 그런 점이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세찬 빗줄기가 무엇 하나 비켜 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 놓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것이 있었던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

/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당신을 '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를 알았고, 시를 먼지처럼 들이마시니, 산 색깔이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나는 시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시가 마련한 숲길을 잃어버렸다. 시에 다가가지 못하던 시기의 슬픔이 곧 '호명되지 않는 자의 슬픔'이고 '대답하지 못하는 자의 비애'이고, '투신하지 못한 자의 고통'이다. 시가 마련한 길을 잃어버렸던 시대, 그 시기를 '슬픈 빙하시대'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 고독 속에 놓여 있으며, 그 고독이라는 것이 참으로 시원한 순간이 있다. 혼자 있어서 그만큼 자유로운 것이다. 운명이라는 빗줄기는 그 무엇도 비켜 가지 않는 것이다. 4연의 비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비가 누구도 비켜 가지 않듯이 운명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절대 용서하지도 않는다.

/ 시인, 반항, 직관, 푸른색 - 차창룡 (서평)


세상을 보다 상대적으로 감상한다면 더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면 큰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일에 서슴지 않는 것, 그 또한 하나의 용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나 스스로를 의심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해와 관용, 포용이 아닌 변화무쌍한 이 세상 속에서 바뀌지 않고 달라지지 않는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한 대담한 믿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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