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름의 고루한 처사가 될지 모르겠다. 요즈음 시대에 따르면 이런 주제에 진중한 고민을 하는 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은 내가 겪어 왔던 과거의 경험과 지금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시간의 총체가 들어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자극을 통해서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김연수의 소설을 읽는 것을 통해 나의 인생을 곱씹어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책의 전체적인 소설의 구성은 이야기집에 가깝다. 짧은 이야기들이 단막극처럼 이어진다. 개중에 몇 개를 꼽아 개인적인 감상을 남겨 보기로 한다.
‘두 번째의 밤’은 디스토피아의 세상이다. 공습을 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방공호에서 세상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뒤덮여 있다. 그 과정에서 한 노인이 말한다. 결국 우리가 만든 것들이 모두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일종의 지혜이며, 그 지혜가 흩어져 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에서는 세 살 배기도 지혜를 알게 된다고. 그렇게 최악의 상황, 죽음에 가까운 삶을 겪고 있는 부녀에게 그렇게 흔한 지혜를 모아 또 다른 세상을 만들게 될 수 있다고 노인은 말한다. 이것이 어떤 해답일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조금 달랐다. 전쟁과 같은 상황을 흩어진 지혜를 모아 극복하더라도 결국 세 번째, 네 번째의 밤이 올 것이니까. 그렇게 부정적인, 더 나아가 가난한 삶, 음침하고 음험한 생각, 또는 불량 학생들이 침을 뱉으며 담배를 피우는 굴다리 같은 것들을 상상한다.
‘여름의 마지막 숨결’을 통해 비폭력을 외치던 친구를 바라보는 나의 서사를 읊으며 인간이란 얼마나 쉽게 더럽혀질 수 있는지를 보게 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살아 있어?라는 질문하고 싶어 진다. 그들은 살아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살아 있음’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그 사이에’에 등장하는 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출처를 찾으러 떠난다. 그리고 낯선 땅에서 피에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처음 피에르를 보았을 때 그는 인생은 스파게티 같아서 소스와 면이 모두 범벅되어 섞여 있지만 면은 하나의 가닥을 가지고 있다는 스파게티 이론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 사는 삶의 좋고, 싫음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는 하나의 길과 같은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사람들의 삶은 통조림처럼 밀봉되어 있다는 통조림 이론이었다. 아무도 그 안에, 어쩌면 그 통조림이 내 인생이라 하더라도 나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야기 속 나는 당연하게도 ‘열어보면 되지’라고 하지만 그것을 열어보지 않는 것이 일종의 규칙이고, 그 안에는 우리의 과거가 들어있고, 그것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말로 나의 말에 답변한다. 이렇게 몇 가지 서사를 엮어 마치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거나, 과거에 대한 변화도 이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를 읽는다. 그렇게 우리는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과거와 현재의 연결성을 끊어내지 못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