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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Apr 14. 2016

꽃들의 기준

내가 뭘 알아?

 4월7일 수요일.

 비가내리기전에 찾은 꽃길. 나는 연인의 손을 잡고(ㅎㅎ), 봄을 걸었다. 좌우로 늘어선 벚나무는 그 안에 봄을 가두듯 벚꽃으로 지붕을 만들었고, 외벽은 샛노란 개나리들이 유화처럼 채우고 있었다. 꽃의 결계 안은 완벽한 봄이었고 또 하나의 원더랜드였다. 모두들 원더랜드의 마법에 취해 기분이 좋았었지. 나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벚꽃에 취해 마냥 히죽히죽 거렸으니까. 또 그날의 나의 연인은 너무 아름다웠지.(ㅎㅎㅎ)


 하지만 이 원더랜드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슬슬 해가 저물어가고, 이제 집으로 가는 차를 타러 가야할 즘에, 하루를 벚꽃으로 꽉 채워놓고도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이런 욕심 가득한 종자를 봤나. 그렇게 하루 종일 벚꽃을 보고도 벚꽃을 못 봐 아쉬움이 남은 것이다. 무슨 궤변이냐고? 잘 들어보라. 우리는 벚나무에 핀 수많은 벚꽃을 보았지만, 정작 꽃봉오리 하나를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아, 짙은 욕망이여.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욕망에 사로잡혀 버린 것을. 아쉬움이 남은 나는 지하철을 타러 돌아가는 길에도 내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키가 좀 낮은 나뭇가지 하나 없을까? 어디 떨어진  꽃봉오리 하나 없을까? 꺾기는 싫은데…’



 고리타분한 표현이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헤매던 벚꽃길이 끝나갈 무렵 나는 발견했다. 나무 등걸 사이로 피어난 벚꽃 한 떨기를. 나무 허리춤, 내 어깨나 될 만한 높이에 피어난 꽃, 세 송이. 드디어 만났구나. 서운할 뻔했어. 못보고 지나칠 뻔 했잖아.

 반가웠다. 덕분에 오늘이 좀 더 완벽해 질 수 있었으니까. 나는 꽃잎, 꽃술 뜯어보며 나의 봄을 채웠다. 아름다운 순간이었지, 서러울 정도로. 그래서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낮게 피어난 녀석 덕분에 나 지금 비록 기꺼웠지만, 과연 이 꽃은 슬프지 않을까? 밀리고 밀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이렇게 낮은 곳에 피어나 버렸는데….’

 일종의 측은지심이 들었다. 아주 잠깐은, 그리고 나 금세 화들짝 놀랐다. 나의 오만함에. 나는 고작 나의 기준으로 꽃이 높게 피는 게 좋은 것이라는 기준을 벚꽃에게 심어버린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머리 밑이 찌릿할 정도였다.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꽃은 생각도 안할 텐데, 내가 감히.

 이것도 감히 추측이지만, 아마도 꽃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우리네와는 다르게 위에 핀다는 게 승리를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위에 피는 꽃은 비록 햇볕을 좀 더 쪼일 수 있겠지만, 아래에 피는 꽃은 이렇듯 타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단지 위에 핀 꽃은 위에 핀 벚꽃이고, 아래 핀 꽃은 아래 핀 벚꽃이겠지. 그들은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하지도 않을 것이고,(물론 햇볕 탐은 좀 낼 수도 있다. 인간으로 치자면 스테이크일지도….) 정상에 있는 벚꽃이 다른 벚꽃을 내려다보고 비웃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부끄러웠다. 유치한 기준을 심어버린 내가. 또 한철 흩날리는 벚꽃보다 못한 나의 모습이. 그들은 오롯하게 자신으로써, 단지 자신으로써 피어있는데, 나는 내 스스로를 찾지 못하고, 늘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거렸으니까. 또 나는 누군가를 넘어서길 원했고, 또 그렇게 올라간 자리에서 타인을 내려 보기도 했었으니까. 벚들은 낮으면 낮은 대로, 높으면 높은 대로, 그저 자신으로써 피어있었는데 말이다. 높은 곳에 피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자신으로써 아름다운데 말이다.


 벚꽃 아래 익어가는 귓불이었다. 왜 나는 낮은 위치가 도태라고 생각했을까? 과연 낮다는 게 도태를 의미할까? 수능에 밀리고 취업에 밀려 떨어지면, 또 유리천장에 막히고 수저에 밀려 올라가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일까? 평생 끝나버린 희망인걸까? 그래도 꽃인데? 낮은 위치에 피어난 꽃도 이리 아름다운데?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단 일주일 꽃을 피워도 이리도 아름다운데?


 알잖은가? 우리가 이 찰나를 피었다지는 벚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우리가 사랑하는 벚꽃은 정상에 매달린 한두 송이가 아니라, 벚꽃 그 자체라는 것을. 모든 것은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기준일 뿐이었다.


 ‘누구보다 잘나야해.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해.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야해.’


 모두 자신다움을 잊은 채, 타의 기준에 맞춘 모습일 뿐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누군가의 머리를 짓밟고 있기에 내가 되는 건 아니었는데, 마치 순위가 나의 존재인양 친구들을 꺾어왔지. 


 아아, 더 말해 무얼할까? 염화미소라고 했던가? 나무 등걸 사이로 자라난 벚꽃은 내가 갈구했던 답을 그 작은 꽃봉오리 가득, 온전히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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