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스타X스를 왜 가는 거야?
살다보면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쟤는 알지도 못하고 지껄여.”
“아, 뭐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다 안다고 하더라니까?”
“걔가 뭘 안다고?”
인간은 모르는 일이기에 또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일이기에 함부로 폄하하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때는 육년 전 쯤, 이제 막 대학생이 됐을 때. 그때의 나는 누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삼, 사천 원이라는 큰돈을 주고, 쓰고 신 커피를 사먹는 것이다. 그것도 그 유명한 별 다방에서! 당시 레쓰x가 한 캔에 250원이었는데 삼, 사천 원이라니…. 정녕 카페인이 필요하다면 레쓰x를 여러 개 사먹으면 될 것 아닌가? 당시 하루 오천 원으로 점심, 저녁은 물론 술 한 잔까지 해결해야 됐던(그래서 거의 굶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치며 허세라고 혀를 찼다. 물론 나보다 일찍 취업전선에 뛰어든 누나는 나보다 돈이 많았으며,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자유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누나를 이해하지 않는 것 또한 내 자유라고 생각했다.(안다. 나는 편협했다.)
나는 생된장을 씹은 얼굴로 말했다.
“난 왜 돈 주고 쓴 걸 사먹는 지 이해가 안 돼. 다들 그거 맛있다고 먹는 건 아니잖아? 보여주기식 허세 아니냐고.”
자백하자면 그때의 나는 어느 정도 ‘된장’이란 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다만 그게 ‘된장녀’와는 다른 ‘된장’ 자체였다. 남녀 상관없이, 그게 허세며 사치, 된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아, 하지만 당시 우리 누나의 눈에 나는 얼마나 한심한 남자로 보였을까? 나는 단지 내가 향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취향과 선택, 신념을 싸그리 무시해버린 것이다. 누나는 분명 ‘아메리카노’라고 불리는 커피에 고유의 맛이 있다고 말했으나, 나는 그저 갖다 붙인 변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누나는 내게 다시는 커피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부끄러운 얘기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내가, 어찌 그리 무지했을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 후로 정확히 1년, 나는 친구 놈이 사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계기로 완전히 커피에 빠져버렸다. 까맣게 태운 콩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알았으며, 검은색 액체 하나에 오미자 부럽지 않은 다양한 맛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카페에 간다는 것이 다만 음료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의 분위기와 문화, 가치를 향유하는 것임을 알았다. 고작 1년 만에, 극도로 혐오하던 카페에 푹 파져버렸다. 부끄러웠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헛소리나 뻑뻑해대던 내가.
그제야 과오를 깨닫는 나에게, 누나는 그저 쉬어터진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물론 나는 반성했다. 이제는 커피의 맛을 알았고, 맛이나 분위기 혹은 행복을 사는데 삼, 사천 원의 돈이 결코 비싼 게 아님을 알았다. 나는 이제 커피에 관해서 누군가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바리스타라는 직업과, 그 직업에 몸담고 있는 누나를 존중하고 인정한다. 나는 그걸 계기로 더 조심스러워지고 깊어졌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된 걸까? 그래, 이제 알게 된 커피에 관해서는 누군가를 무시하고 폄하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나타나면 어떨까? 나는 또 나도 모르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까? 아니, 나는 분명이 휘두를 것이다. 그리고 휘두른 지도 모른 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의 내가 그러했듯이.
그리하여 나는 무지의 폭력성이 두렵다. 또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상처 줄까 두렵다. 내 무지가 무기가 될까 두렵다. 한 번 휘둘러 본 녀석의 파괴력을 나는 안다. 또한 작가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받았던 주위의, 수많은 무지의 폭력에 맞아본 나는 안다.
아니, 우리는 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무지의 폭력에 맞아본 경험이 있다. 운동을 하는 친구는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모든 개인은 모든 개인의 이유로 무지의 폭력을 당해보았다. 그리고 그 피해자인 개인 또한 알게 모르게 무지의 폭력을 재생산해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이 ‘무지의 폭력성’을 인식하길 바란다. 그리도 아픈 폭력, 어쩌면 나 또한 행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겁내길 바란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는 아주 부끄럽게 깨달을 뿐이니까.
그 시절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