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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Feb 25. 2021

거미라도 될걸 그랬어

<장조림: 꽃 없이 내려온 프로메테우스> 7

방에서 거미를 보았다.


쓰지 않는 모니터와 벽에 걸린 모자걸이 사이. 모자를 걸기 위해 벽에 걸어놓은 모자걸이 가장 끝.

「수라」에서 나올 만한 그런 작은 거미였다.

들여다보지 않으면 허공에 부양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줄을 타고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궁금해 후, 불어보았다.

살살한 숨결에도 그 작은 것은 태풍을 만난 것처럼 요동치더라.

위태로운 줄타기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딱, 하고 가만히 있었다.

참 경이로웠다. 자기의 공간을 자기 몸으로만 만드는 생물. 원한다면 거미는

나의 방 모든 구석에 줄을 쳐놓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딱 그 정도만 줄을 쳐 가만히 있었다.

나의 손바닥만 한 크기. 거미에게 세상은 딱 그 정도면 충분했던 거다.

땅과 하늘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부정이라도 하듯. 땅과 하늘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면서.

이윽고 그 외줄 인생을 애처롭다 생각했다. 여기엔 네가 먹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야.


나의 방에 들어오는 벌레라고는 나방과 모기뿐인데.

얼마 전만 해도 나방은 잊을 만하면 눈앞에 알짱거려 성가셨고, 모기도 가끔 새벽에 잠을 설치게 했지만,

어쩐지 요 근래에는 눈칫밥이 지겨웠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것들이 보이기만 하면 방 안에다 홈키파를 된통 뿌려대서 소문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거미가 먹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먹이가 나타나지 않을 거다.

그래도 거미는 멈춰있을 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쭉 기다리고 있겠지.


거미라면 소스라치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 줄 알지마는, 결국 나는 그 거미를 놔두었다.

죽을 둥 말 둥 기다리고만 있는 것보다 내가 잘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손톱만 한 거미가 뭐 어쩌겠어.

손톱만 한 말을 삼킨다고 어떻게 되지도 않는데.

    



며칠 뒤, 내 방에 불쑥 나타났던 그 거미는 사라졌다. 벌써부터 그리운 마음이다.

나무로 만든 모자걸이 아래에 제 몸에서 난 실로 집을 만들어 줄타기를 하던 거미.

이제는 그것이 남겨놓은 거미줄만 남아있다. 어디로 간 걸까.

아침에 일어나 환기를 하려 창문을 열었을 때, 창가에 짜 놓은 거미줄이 보였다.

너는 정말 창밖을 나서버렸나.

아니면 아직 내 방 어딘가에 또 집을 짓고 숨어있는 걸까.

문득 내 몸에서 자라나는 것은 무엇인가 떠올려보았다.


손톱 발톱 머리칼.


어쩐지 뾰족한 것들뿐이다. 그래서 모난 삶이었을까. 창가의 거미줄을 보다가 그 창턱에 깔린 먼지를 보았다.

그래 언젠가부터 내 방은 어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이미 꽤 오래된 일이었다.

바깥에서 혹시라도 쓸 일이 있을까 사두었던 물티슈를 한 장 뽑았다.

창턱 한쪽 끝에 얹고 반대쪽까지 쓱 쓸었다. 한 장만으로 해치울 만큼 먼지는 가벼웠다.

정말 먼지에 불과했다.

고작 이런 것을 왜 여태 놔두었을까. 다음에는 책장으로 마음이 갔다.

책장에서 무얼 꺼낼 때마다 나풀거리던 먼지 조각이 생각났다.

나는 책들이 양보해주고 있는 책장의 여백을 들여다보았다. 회색빛이 나는 눈밭이 얇게 깔려 있었다.

이번에는 휴지를 몇 칸 뜯어 먼지를 쓸었다. 물기가 책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다.

책들을 들어 책등 밑에 숨은 먼지도 잘 쓸었다. 그리고 다시 책장에 먼지가 앉는 데에

며칠이 걸리는지 가늠해보았다. TV에서 보았던 것처럼 손끝으로,

다시 책들이 양보한 여백을 쓸어보는 식이었다. 작정하고 한 건 아닌지라 정확한 일수는 모르겠다.

어림잡아 사흘은 되는 것 같았다. 다시 쌓인 먼지를 쓸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거미가 머물고팠던 자리를 이렇게 치우는 게 아닐까.


거미는 언젠가 자기가 줄타기 하는 거미줄마저도 내가 치워버릴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던 거다. 창턱의 먼지를 쓸다 무심코 거기 있던 거미줄을 치워버린 것이 떠올랐다. 미안했다. 이 방에서 뭐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는, 오직 치우기만 할 줄 아는구나.

먼지는 책장에 있는 것만 치울 걸 그랬다. 창턱에 모자걸이에 있던 거미줄은 놔둘 걸 그랬다.

적어도 그랬다면 돌아오리라고 기대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직 자리를 놔두었으니 돌아와도 괜찮겠다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어제 면접이 끝나고 집에 가려니까 눈이 쏟아졌다. 도로가 마비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사당에서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 기다리는 줄이 정류장에서 신호등까지 이어졌다.

길가에 자리한 노점의 불빛이 주황빛으로 피었었다. 그게 참 따뜻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푹 찌르고 서 있었는데 버스 줄 옆에서 연인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아주아주 작고 귀여운 눈사람이었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두었다. 휴대폰에 눈이 달라붙는 게 마음에 걸렸다. 눈이 내리는 걸 보자마자 사진을 찍었을 때 한 번 당했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 사진을 찍어 내걸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당신 이름 세 글자를 내 삶 맨 앞자리에 두었다.


결국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계단을 내려갔다.

스크린도어 너머로도 눈발이 들어섰다. 휴대폰을 다시 만지다가 액정 화면에 눈이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그게 녹으니까 무지갯빛이 되었다. 당신한테도 보여주고 싶었다. 내 몸에서도 이런 게 자라났으면 했다.

그렇담 거미를 부러워하는 일도,

거미가 있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도 없었겠지.

     

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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