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아침, 팬케이크를 굽다가
이혼할 순 없잖아.

결혼 20년 차 부부의 전쟁 같은 휴일 아침 풍경

by 임지원

"그때, 왜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나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나도 그렇다. 상처받은 말은 기억이 나는데, 왜 그렇게 싸움이 커졌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아직도 많이 싸우며 산다. 신혼 때에 비해 횟수가 줄었고 어떤 폭발력, 그런 건 많이 순화되었지만 나는 은근 성깔이 있고, 남편은 내재된 가부장적 DNA가 어떤 순간 폭발하기도 하니 그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된다. 바로 어제, 우리는 오랜만에 크게 싸웠다. 지금 내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다.


이 불행의 시작은 일요일 오후 가족이 함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네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 장을 보다가 시작됐다. 큰 딸이 내일 아침 자기가 팬케이크를 굽겠다고 한 것이다. 마침 휴일이기도 하니 그러라고 하고 카트에 팬케이크 가루가 담긴 봉지를 던져 넣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정작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은 아침잠이 많은 관계로 일어나지 않고, 새벽 기상이 주 특기인 둘째 아이가 안방으로 와 엄마 아빠를 들볶는다. 배고프다고, 당장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자고.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휴일 아침이지만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데 어떡하냔 말인가! 아내는 마흔 끝, 남편은 쉰 초입에 서있는 우리는 중년 부부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겨우

정신을 차리며 주방으로 갔다. 팬케이크의 기획자이지만 일어나지 않는 큰 딸에 대한 불만을 구시렁거릴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한 팀처럼 보였다. 분명 그랬다. 팬케이크 가루에 우유와 계란을 넣고 휘휘 젖는 아이 표정이 얼마나 밝던지, 마치 늦둥이를 낳으면 중년 부부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무슨 출산 장려를 위해 제작된 캠페인 영상을 보는 것 같다. 나도 마음이 따듯해지며 이런 게 행복이지, 사는 맛이지! 그러고 있는데, 어? 좀 이상하다. 반죽을 부은 프라이팬이 얼핏 봐도 아주 건조한 거다.


"어?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야지 아님 버터라도 한 덩이 던져 넣든가... "


남편은 아니란다. 자신은 예전부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팬케이크를 구워 먹었다고 한다. 순간 진짜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놔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니, 이거 프라이 팬이잖아! 프라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거야? 기름 안 두르고 프라이팬에

요리하면 딱딱하게 될걸? 기름이나 버터가 들어가야 촉촉하고 고소하지!"


별 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남편이 고집을 부린다. 고집을 부리는 꼴이 보기 싫어 짜증이 난다. 나는 부어 터진 목소리로 구시렁구시렁 몇 마디를 보탰다. 그 순간, 남편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바로 한숨을 쉰 것이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남편의 한숨. 마치 나 진짜 짜증 났거든 속 터지거든 그러니까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바로 그 한. 숨. 나 역시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아니 내가 엄마로, 아내로 우리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만들고, 차린 지가 몇 년인데 그 프라이팬에 기름을 좀 두르라는 몇 마디 지적에 한숨을 쉬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동안 내가 컴퓨터나 기계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남편에게 지적당한 일들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놈의 노트북 업데이트 안 했다고 지적, 바탕화면에 폴더를 너무 많이 만들었다고 지적, 충전을 너무 했다고 지적, 배터리 방전된다고 지적! 그렇게 늦둥이 출산장려 캠페인 영상처럼 따듯했던 주방이 한순간에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언성이 높아지자 위험을 감지한 큰 아이가 주방으로 뛰어나와 팬케이크 봉지를 찾아 거기 적힌 조리방법을 소리 내 읽었다. 대기업이 알려준 조리방법은 기름을 살짝 두르고 닦아낸 후 구우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기름을 두른다'만 들렸고, 남편은 아마도 '닦아낸 후'만 들렸던 모양이다. 내가 급히 버터를 잘라 팬에 넣자 남편은 정색을 하며 뒤집게를 내려놓는다. 자신은 이 팬케이크를 먹지 않겠단다. 자신은 이미 아빠로서 너무 잘하고 있는 상태인데, 왜 참견을 하냐고 큰 소리다. 나는 왜 요리라는 내 전문 영역에 대한 배려가 없냐고 더 큰 소리로 대응했다. 큰 아이가 중재가 이어졌는데, 웬일로 아빠 편을 드는 거다. 나에게 들은 잔소리가 떠오른 걸까? 그러면서 아빠는 지적당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거다. 아니 그게 무슨 논리야? 지적하는 사람 따로 있고, 지적당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거야? 기분이 더 나빠지려고 했지만 내가 여기서

딸에게까지 성질을 부리며 나를 고립시킬 필요까지 있게나 싶어 참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버럭 한다.


"그러니까 네가 일찍 일어나서 팬케이크를 만들었어야지!"


잠시 정적이 흐르고, 큰 아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금방 후드득 떨어졌다.


"... 아빠가 지금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지금 아빠 편 들어주고 있는 거 몰라!"



내가 좋아하는 수필집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들에게], 거기 보면 불행한 남자에 대한 내용이 있다.

불행한 남자는 어떤 원인으로 불행할까? 작가는 우선 운이 없는 남자가 불행하다고 말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할머니 작가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으로 불행한 남자는 이탈리아 말로 '오우모 디 프린치 피오(Uomo di Principio)'라는 표현을 빌려 '원칙에 충실한 남자'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걸 칭찬으로 말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남자를 불행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로 든 이야기가 너무 재밌다.


한 남자가 직장 동료인 어떤 여성에게 우정을 느끼고 직업을 통해 생겨난 이 완전한 우정에 확신을 갖게 된다. 아내는 남편의 이 관계에 불안함을 느끼고 만나지 말아 달라 애절하게 부탁을 하지만 남편은 끝내 그 부탁을 거절한다. 완전한 우정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내는 차라리 그녀와 같은 침대에 누우라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이 생각하는 완전한 우정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거절한다. 그녀와의 완전한 우정과 침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까. 어찌 보면 논리적으로 볼 때 남편이 우세하기도 해 보인다. 하지만 아내는 논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이기주의를 남편에게서 발견한다. 원칙적으로 맞아 보여도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원칙과 논리에 충실하게 맞으면 자기 행위는 정당한 것이고 그 행위를 바꿀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결국 이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결국 아내의 요구로 이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1년 정도 지난 후, 자신이 생각했던 이 완전한 우정이 평범한 남녀 관계였다는 걸 깨닫는다. 비로소 그녀와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원칙에 충실했던 이 남자에게 남은 것은 '플라토닉 한 괴상한 관계뿐'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나는 공감을 하며 고개를 마구마구 끄덕이다 턱을 가슴에 부딪히기까지 했다.



아마도 남편은 휴일 아침 자신이 늦둥이 딸아이와 기름 없이 건강한 팬케이크를 굽는 달콤한 아빠라는 원칙에 심취했을 것이다.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 없는 완벽한 상황이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너의 원칙 중 틀린 게 있다고 말한다. 그의 원칙은 공격을 받았고, 그는 절대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완벽한 원칙이니까. 하지만

그에게는 밥 수발 20년에 이제 인정받을 것도 대우받을 것도 없는 중년 아줌마의 애환 같은 걸 배려할 만한 그 무엇이 없었다. 하긴 간장게장을 해줘도 물어봐야 맛있다는 말이 나온다. 숙성 둘째 날 또 게장을 식탁에 올리면 표정이 말한다. 짜다고.


"왜 짜?"

"그러게 좀 짜네. 난 어제가 낫다."


아내의 음식에 대해서도 맛없는 건 솔직하고 진실되게! 맛없다고 말을 해야 한다는 어떤 원칙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것이다. 진실이라는 단어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간장 게장을 만든 날, 나는 톱밥 속에서 몸부림치는 꽃게를 상자째 냉동실에 넣었다. 30분쯤 지나 꺼내 씻으려는데 아직도 버둥거린다. 사방에 톱밥이 날리고 꽃게의 집게다리가 내 손을 깨물려고 달려든다. 어찌나 무서운지 그래도 힘을 내, 눈을 부릅뜨고 버둥대는 꽃게를 톱밥 상자에서 꺼내 거대한 김치통에 마구 던져 넣고, 다시 냉동실을 넣었다. 30분 알람을 맞추고 그 사이 간장을 끓였다. 다시 냉동실에 넣어둔 꽃게를 꺼내 칫솔로 박박 문질러 닦는데 아직도 꽃게들이 버둥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싱싱한 거야. 정말 울고 싶었다. 꽃게 열댓 마리를 주방에 서서 닦는데 진짜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고, 버둥대는 꽃게 다리에 비린내 나는 물이 얼굴에 막 튀고, 제일 두꺼운 고무장갑을 꼈는데도 손 이곳저곳이 꽉꽉 찝힌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뭔가를 파괴하고 있는 듯한, 좀 더 정확하게는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까지 불편했다. 그걸 참고 하루 5시간 꼬박 사투를 벌이며 만든 나의 꽃게장을 먹으면서, 고작 '맛있다'와 '짜다'? 끝! 이게 고작 남편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원칙인 건가?


큰 아이의 눈물이 멈추고 나의 분노가 불붙자 남편이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분명 자신이 오늘 아침 자신이 너무나 완벽한 아빠였다는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과를 한 이유는 딸을 향해 발사한 잘못된 분노 때문에 더 이상 어떤 논리도, 원칙도 먹히지 않을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의 잘못이 100이고 나는 0이라는 건 아니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팬에 구운 팬케이크를 뻑뻑하게 씹어 먹었으면 될 일이었다! 사실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남편이 매 순간 멋진 남자이길 바란다. 유연하고 유머러스하면 좋겠다. 종종 그런 적이 있기도 하다! 딸이 그 조리법을 읽어줬을 때, "그래? 기름을 넣긴 넣는 거구나. 내가 틀렸네. 너 억울했겠다!"라고 나에게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나 역시 "기름을 닦는구나, 뭐 나도 반만 맞았네!"라고 말했다면 좋았겠지만, 그의 얼굴, 마치 나 지금 원칙에 충실하고 있는데! 하는 자부심 폭발하는 표정을 보는 순간 그냥 지나 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고, 이 세상 모든 아내를 대표해 이 싸움에서만큼은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열망에 불타고 말았다. 솔직히 신혼 초에는 이런 경우 대부분 나는 울고, 남편은 화를 내다 자버리거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그리고 내가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돈을 못 벌게 되면서 솔직히 더 많이 참았다.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종종 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래 봐야 푼돈이고, 솔직히 지금도 남편이 나의 이런 지랄 맞은 성격을 탓하며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막내 낳고 하던 일 그만둔 지 십 년이 넘었다. 갱년기에 이석증까지... 힘든 일도 못하는 나와 돈 들어갈 일만 남은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까? 이번 부부싸움은 딸의 개입(?)으로 나에게 유리하게 수습이 되었지만, 앞으로 계속 그럴 순 없는 일이고. 아내와 남편이 함께 산다는 게 참... 고단하다. 고단해.

브런치_플라맹고_1.jpg 딸이 그려 준 나의 새로운 이미지. 마음에 든다. 20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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