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물

내가 글을 쓰는 이유

by 임지원

식탁에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두 딸아이를 바라본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큰 애는 내 키를 넘어선 지 오래고, 늦둥이라 불리며 집안에 강아지 취급을 받던 귀염둥이 막내는 사춘기. 심지어 나를 넘어서는 덩치다. 두 아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이 사람 둘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고? 신기하다. 나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사실은 그 긴 세월을 돌아보면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힘들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엄마는 경력직이 아니니 당연히 모든 상황이 당황스럽고 낯설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엄마가 되면 바로 엄마의 역량을 갖추는 게 당연한 듯 세상은 나에게 슈퍼맘을 강요했다. 심지어 나 스스로 슈퍼맘이 되려고 발버둥을 쳤다. 말이 안 되는 상황. 이 모순 속에서 나는 종종 돌덩이 같은 죄책감을 내 명치에 달고 살았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늘 내 발목에 족쇄처럼 매달려 있었다.


나의 출산은 2000년과 2011년... 긴 간격을 두고 두 번 일어났다.

1993년부터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했고, 결혼을 한 1999년까지 지겹다 하기 싫다 투덜대며 버티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결혼을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한 방송일이 예전보다 잘 풀리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첫애를 낳고 주저앉고 말았다. 첫 아이가 지나치게 예민했기에 겨우 모셔온 육아도우미가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는 간호사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경력직 육아전문가가 포기한 아이를 엄마가 처음인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 그런 내가 육아라는 걸 잘했을 리 없다. 다시는 절대 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거 같다. 육아는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이라는 단어와 멀어졌고, 나의 이런 정신력의 승리였는지 의사도 나에게 당신은 난임이라고 말해주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11년 후 갑자기 난임을 극복했다. 운동을 열심히 했고 토마토... 너무 많이 먹었다. 하여간 나는 둘째는 임신하며 겨우 다시 시작한 일을 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서른아홉 노산이 원인이었는지 나의 임신은 안정되지 못했다. 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하다 결국 입원해 한 달을 누운 상태로 버텨 27주 만에 천팔십 그램의 연약한 아이와 만났다. 그 후 13년은 첫애를 키워본 육아 경력직으로 늦둥이 막내 양육에 나의 마흔을 고스란히 바쳤다. 그리고 이제 쉰... 휴... 어린 시절 내 꿈은 작가였다. 책을 읽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나를 위해 일기를 쓰며 꿈을 키웠다. 국문과에 입학한 이후엔 방송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방송작가 교육원이란 곳에서 공부하며 취업을 준비하다가 SBS예능국 공채작가(3기)로 합격해 꿈을 이루었다.

중간중간 구멍도 있지만, 어쨌든 쓴 시간을 이어 붙이니 거의 18년 정도 된다. 물론 문학으로 평가받을만한 글은 아니어도 방송국에서 회사에서 내 방에서 많은 잡다한 글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 경력을 넘어선 나의 육아경력. 엄마 경력이 24년. (놀랍군!) 엄마로 살아가며 기가 막히게 행복하고, 눈물이 쏙 빠지게 감사한 순간도 많았지만, 소소하게 억울하고 속상하고 버겁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아마도 쓰는 게 익숙해, 그 생각 그 느낌들을 글로 남기게 됐다. 지금 엄마로 살아가는 당신, 혹시 오래전 나처럼 명치 아래 돌덩이 같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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