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후 3시에 운다

설거지하며 한숨 쉬는 당신을 위해...

by 임지원

분주한 아침 시간이 지나가면, 식탁은 엉망진창이다. 취향을 존중하다 보니 누구는 밥, 누구는 빵,

아직 자고 있는 누구까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숙제가 아침 한 끼다.


가스레인지 화구 위엔 기름 묻은 프라이팬, 주방 곳곳에 각종 컵들, 잼 묻은 숟가락, 김치 묻은 젓가락 등

복잡한 설거지 꺼리가 한가득이다. 살림에 출퇴근이 없다보니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주방으로 가 업무를 시작한 것도 아니다. 당연히 내 모습도 엉망이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선 나는 문득 생각을 한다. 이왕 하는 일인데 이런 꼴로 하기보다는

좀 더 갖추고 시작하자! 그렇게 이미 소매를 포함해 이곳저곳 젖어버린 후줄근한 잠옷을 벗고 세수를 하고

일상복을 입으며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래, 이것은 일종의 출근이다! 하루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싱크대에 서서 ... 결국 설거지를 한다.


하루 종일 나는 저 싱크대 하수구와 얼마나 눈을 맞추고 사나? 문득 우울한 마음이 찾아오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삼키며 하수구에 주방세제를 촥촥 뿌려 우울한 마음까지 깔끔히 닦아낸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보고 지나친 세탁물 바구니가 떠오른다. 설거지를 끝내자 세탁물 바구니를 가져다 분류를 해 가장 많이 모인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이제 좀 쉴까 싶어 소파를 향해 몇 걸음 발걸음을 옮기면 느껴지는 버석버석한 마룻바닥.

뭔가가 발바닥을 콱 찌른다. 너무 아파 악소리를 내고 유리 조각인가 싶어 조심스럽게 만져 보니

말라비틀어진 밥풀이다. 급히 청소기를 든다. 방마다 들어가면 청소기 돌리기 전 정리할 것들이 눈에 띈다.

바닥의 아무렇게나 버려진 휴지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곳곳에 널린 물건들에 제자리를 찾아준다.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청소기 돌리기는 생각보다 길어지고 그 와중에 흙이 마른 화분에 물까지 주고 나면

허리가 아파온다. 몇 시나 됐나? 싶어 시계를 보면 벌써 점심시간이다. 줌 수업 중 점심 식사까지 먹어야 하는 초등학생 둘째 아이가 튀어나와 배가 고프다며 당장 밥을 달라고 강아지처럼 뛰어다닌다. 급히 주방으로 와 다시 시작하는 점심 식사 준비. 그나마 어제 먹던 국이나 조림 반찬 등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냉장고 야채칸을 뒤져 나온 당근 표고버섯 그런 걸로 볶음밥을 만든다.

큰 접시에 김이 솔솔 나는 볶음밥을 올리고 옆에 시판 짜장 소스를 데워 붓는다. 익숙한 중식당 냄새가

거실 가득 퍼지면 아이들은 부르지 않아도 달려온다. 행복한 마음이 든다. 함께 밥을 먹는 내내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한다. 어떤 날은 거실로 들어오는 바람도,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의 구름도 완벽하다. 행복하다.

지금 나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감사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점심 설거지를 돕겠다는 큰 딸을 방으로 들여보내며 너는 너의 일을 하라고, 그래서 꿈꾸는 것들을 이루라고 말해준다. 너는 엄마처럼 멈추지 말고 끝까지, 뜻대로 달려보라고. 그렇게 아이 둘을 각자의 방으로 들여보내면 짜장 소스가 여기저기 발려 엉망이 된 식탁이 나를 기다린다. 아이들과의 대화가 너무 길어졌던 모양이다. 이미 말라 식탁에 딱 달라붙은 짜장 소스... 빨리 닦아 낼 걸. 후회가 밀려온다. 불쑥 차 한 찬이 생각난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물을 끓여 차를 한 잔 만든다. 루이보스티 티백을 투명 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왠지 빨간 연기가 컵 안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차가 우러난다. 뜨겁다. 조금 식기를 기다린다. 문득 세탁 종료음이 아까 울렸던 게 생각이 난다. 저렇게 두면 옷들이 구겨지고 못쓰게 될 거 같아 얼른 일어나 큰 바구니를 들고 세탁기로 간다. 세탁이 끝난 뺄래를 담아 건조기가 있는 베란다까지 가지고 가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힘을 내 건조기로 가져가 우르르 쏟는다. 몇 개의 티셔츠는 이대로 건조기에 넣어 돌리면 엉망이 될 게 뻔해 보인다. 몇 초 정도 망설이지만 결국은 반듯하게 펴서 말리면 좋을 옷을 골라낸다.


빨래를 널고 잠시 베란다를 비추는 해를 보니 벌써 두 시는 된 듯하다. 마음이 바빠진다. 건조기를 돌려놓고 얼른 다시 식탁으로 와 어느새 식어버린 빨간 루이보스티 차를 마신다. 저 말라붙은 짜장 소스를 어떻게 닦아낼지 궁리하며 식탁을 치운다. 각종 식기와 컵들을 싱크대로 옮기고 식탁엔 물 스프레이를 뿌려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번 주 브런치에 올릴 글에 대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집에 대해. 그리고 내년 2월쯤 찾아올 방송사의 극본 공모전에 대해서도... 어느새 설거지와 정리가 끝난다. 나는 아침과 점심 두 끼 숙제를 끝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차 한 잔도 제 때 즐기지 못하고 매달린 살림살이다. 하지만 잠시 깨끗해 보이는 이 주방은 5시부터 다시

엉망이 될 것이고 저녁 식사 준비가 시작되고 나면 먹고 치우고 또 10시까지 또 나는 여기 서서 뭔가를 정리하고 치우고, 결국은 설거지를 하고 있겠구나 싶어 한숨이 나온다.


오후 3시가 되면 실감하게 된다. 밥 차리는 일상이 얼마나 나를 옥죄고 있는지...




오늘 아침엔 불쑥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동네 새로 생긴 빵집의 크로와상을 사러 아이들만 집에 두고 혼자 집을 나섰다.

차로 가기엔 가깝고 걷기엔 좀 먼 그곳을 향해 걷던 중, 중학생 딸의 등교를 위해 나온

동네 지인을 우연히 만나 동행을 하게 됐다.


"언니, 저 구몬 선생님으로 일하기로 했어요!"


2년 전 즈음엔 동네에 생긴 카페에서 파트 파임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설레하던 그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 스튜어디스로 일하던 그녀는 출산 이후 육아를 담당해줄 누군가가

없어 결국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의 삶을 선택해 살아왔다.

나 같은 인간은 상상도 못 하게 우수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그녀는 육아를 하는 와중에도

바리스타 자격증에 제빵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건 체질이 아니고

혹시 기회가 오면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때 그녀는 둘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조금 만들어진 시간에 바리스타 자격증으로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은 구몬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또 새로운 소식을 나에게 전한다. 아이들이 제법 컸으니 이제부터는 열심을 다해 뭔가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녀는... 아름답다.


문득 그녀도 나처럼 오후 3시쯤... 비슷한 절망감에 빠졌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살림만 하는 건 체질이 아니라고 했던 건 아닐까.


오후 3시가 되면 오늘도 부질없이 아까운 시간을 다 써버린 거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깨가 오그라든다. 가슴이 답답하고 깊고 무거운 한숨이 나오고 또 나온다.

그래도 분명 행복했는데...


김 나는 볶음밥을 접시에 담을 때, 기름내가 풍기는 식탁으로 아이들이 달려올 때,

또 아웃렛 매장에서 솜사탕을 파는 수레에 쓰인 [꼬모 씨엘로]를 본 큰 딸이

내 귀에 속삭일 때.


"엄마 씨엘로가 무슨 뜻인지 알아? 스페인어로 하늘, 꼬모는 처럼!

[꼬모 시엘로]는 '하늘처럼'이란 뜻이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는 딸의 눈에 아는 거 하나가 얻어걸린 모양이다. 오~ 그게 그런 뜻이구나!

알려줘서 고맙다. 너무 고마워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너만큼은 엄마가 느끼는 3시에 절망감 같은 건 영원히 모른 채 스페인이든 어디든 훨훨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


사랑도 결혼도, 엄마가 된 것도 다 좋다. 가족이 있어 정말 행복하다.

그런데도 왜 오후 3시만 되면 한숨이 나올까?...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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