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계약은
느닷없이 종료된다.

또 한 번 경단녀.

by 임지원

크리스쳐니티 투데이 코리아(CTK) 3월호에 실릴 내 원고를 편집장님에게 메일로 보낸 날이

지난 2월 9일이었다. 고민을 많이 하면서 쓴 글이었다. 나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에 대한 안타까움을 최대한 뾰족하지 않게, 절절하게 담고자 노력했다.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 후, 편집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 글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과거 이 잡지에서 미국에서 LGBT를 대상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님 관련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기에 괜찮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의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톤 자체가 너무 높아 어쩌면 "죄송하지만 이 글은 우리 잡지에 실릴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런 답변이 올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거절될 수도 있을 거라는 떨리는 마음으로 글을 보냈는데 마음에 든다는 전화까지 받았으니 얼마나 기쁘던지. 게다가 너무나 오랜만에 맛보는 사회적 인정이었다.

전업 주부의 삶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그것이 채워진 거다.


며칠 동안 붕떠 발이 마루에 닿는 것 같지 않았다.

틈만 나면 콧노래를 부르며 세상 이보다 행복할 수가 있나 싶은 심정으로 신나게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그러던 중,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했다.

3월호 인쇄를 하던 중 작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다. PDF 파일까지 수정했는데 중단이라니.

이유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누적된 재정적 부담... 그런 것 때문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온라인판은 유지하고, 앞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한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는데

지난주부터 홈페이지 마저... 문을 닫고 말았다.

나보다 더 힘들 관계자분들에게 자세한 사정을 물을 수도 없고...


나는 또... 경단녀가 됐다!! 프리랜서의 운명이겠지만, 하던 일이 종료되는 순간은 항상 아. 프. 다.


IMF 땐 SBS 방송국 사장님이 현재 방송되고 있는 오후 4시 데일리 생방 프로그램을

폐지한다고 사내방송을 했다. 나는 그날 짐을 싸서 그대로 집으로 왔고, 한동안 다시 방송국에 갈 일이 없었다. 이후 다시 복귀했을 땐 함께 코너를 찍게 된 완전 초보 조연출과 합이 나빠 갈등 끝에 그만두게 됐다.

PD는 잘리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문제는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기획자로 회사를 다닐 땐 재택근무를 하던 아줌마 작가가 나 말고 한 명 더 있어 둘이 즐겁게 협업도 하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워크숍에 참석하면 밤새 수다를 떨며 워킹맘의 고충을 함께 나누곤 했는데

갑자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 팀장이 회사 1층에 있는 일식당으로 우리를 불러 밥을 사주더니

오후에 네이트온(그땐 카톡이 아니라 네이트 온)으로 두 사람 중 누가 그만둘지 알려주겠다고 말을 했다.

뜨헉. 모르겠다. 그날 되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밥을 먹은 그 일식당의 느낌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오후에 그만두라는 연락을 받은 건 나였다. 기분이 너무 나빠 엉엉 울었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살아남은 그 작가분도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며 함께 그만둔 것이다. 이런 것도 일종의 연대인가? 그 와중에 감사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늘 불안한 고용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탓인지 나는 일이 잘 풀려도 영원히 그 페이스가 유지될 거 같은 기분은 잘 들지 않는다. 언제나 프로그램은 사라질 거 같고, PD와 불화가 생길 거 같고, 회사는 어려워질 거 같고... 내가 잘릴 거 같고... 그렇다.


그래도 암울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깊은숨을 내쉬며 그 마음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옆에 있는 낯선 누군가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기도 했다. 신께 기도했다.


"완전히 끝은 아니죠? 나 이대로 폭삭 망해서 다 끝장나는 건 아니죠?

어디 숨 돌릴 구멍 하나... 준비해두신 거죠? 그런 거죠?"


오늘 아니 어제, 6월 14일은 내가 또 한 번 경단녀가 된 날로 정해야겠다. 기념해야지. 불행도 기념하면 어쩌면 추억이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어쩌면 이젠 정말 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한 마음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오늘 밤 나의 기도는 더 간절할 거 같다.


keyword
이전 05화엄마는 오후 3시에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