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적인 독후감 한 번 올려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글렌웨이 웨스콧은 1901년 미국에서 태어나 1925년 유럽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1987년에 사망했다. 이 책의 배경은 1920년. 발표는 1940년. 그러니까 완전 옛날 소설인데,
민음사에서 이 책을 2018년에 출간했다. 사이즈도 작고, 분량이 100페이지 정도라 진짜 조그만 핸드백에 넣어도 티가 안 나게 생긴 책, 제목은 [순례자의 매]다. 등장인물도 몇 명 안되고, 배경도 거의 한 곳에서 일어난
여름 한 나절 동안의 이야기.
주요 등장인물은 프랑스의 큰 성을 상속받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상속녀와
그녀의 미국인 친구(일단 남자다), 그리고 그들을 우연히 찾아온 한 부부.
화자는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한 미국인 친구다.
그는 예리한 시선으로 이 여행자 부부를 기가 막히게 상세히 묘사한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느낌을 받는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도 무지막지하게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처음엔 이것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지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스며든달까?
기사가 운전하는 다임러 자동차를 타고 유럽을 여행 중인 이 부부의 모습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아내가 기르는 매다. 그녀의 손목에 매가 앉아 있다.
그녀는 매를 사랑한다.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다.
마치 아주 상징적이고 고고한 것을 추구하듯 매를 찬양하는 그녀. 하지만 매는 동물이고, 자연이다.
배설의 행위와 탈출을 시도하며 상황을 어지럽힌다. 남편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왠지 그녀의 매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바로 이 부부가 보여주는 이런 '균열'이 재밌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틈이 벌어진다. 그렇게 결국 엉망진창이 될 그 마지막을 향해 달리다 보면
몇 번의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격렬하게 공감하며 책을 덮게 된다.
마지막에 미국인 친구는 상속녀 친구에게 말한다.
"알렉스, 절대 결혼하지 마!"
작품 중 미국인 친구가 결혼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결혼 생활에서는 모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고통을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하는 놀라운 양의 용서가 필요하다. 사랑에 만족이 주어지면 남은 삶의 큰 부분은 그 만족을 위한 지불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분할식 지불. 그것이 컬렌 부부의 사소한 풍경들이 보여 준 확실한 교훈이었다.'
[순례자의 매] p89
처음엔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읽기 시작해 이 소설의 작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예감했다. 이 작가는 여자다!
그리고 여자가 아니라면 부부 사이에 미묘한 감정, 주변인과의 삼각관계 같은 심리적인 부분을
저렇게 상세히 묘사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근데 이상한 건 여성 작가가 결혼을 주제로 소설을 썼는데 왜 이렇게 명확한 페미니즘이 아닌 거지?
그 시절은 지금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할 거 같은데...
궁금함을 풀기위해 검색을 해보니 무슨 일이야? 남자였다!
책 날개에 적힌 작가에 대한 소개에 답이 있었다. 이 작가는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서 그 성의 주인인 상속녀와 진짜 친구 사이였던 거다!
매를 기르는 아내는 계속 상속녀와 화자 사이에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작품 속에 화자가 동성애자라는 내용은 없다.)
어쩌면 내가 이 소설을 엄청 색다르다고 느낀 지점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동성애자 눈에 보인 부부의 모습.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방하며 무분별하게 이어지는 삼각관계 속에
그 어떤 인물과도 연결되지 않은 자연인의 상태로 확실한 관찰자의 시점이 될 수 있었던
그 지점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매에 대한 묘사가 정말 대단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옆에 기름이 반질반질 흐르는 매가 날갯짓을 하며 푸드덕거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 작가는 매를 안다. 정말 안다. 확실히 안다! 소설가가 무언가 쓰기 위해
얼마나 알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곳곳에 숨겨진 위트 넘치는 문장들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이 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문학 작가였다. 하지만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경고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희망은 쓰고 뜨겁고 안절부절못하는 경험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질 터였다. 성공하지 못한 예술가는 무관심의 대상이 되고 자존심과 괴로움 때문에 다시 날지 못하고 억눌린 영감을 안고 지루해서 죽을 것 같은 상태로 기다린다.'
[순례자의 매] p32
뼈 맞은 기분이 이런 걸까? 씁쓸했다.
분명 본인이 작가로서 느낀 창작의 고통과 부담을 적어 둔 게 틀림없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남겼는데도 이런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는 게 납득이 되면서도
왠지 납득하기 싫다. 결국 작가의 삶은 고통뿐인가?
유튜브로 본 건데, 김영하 작가가 어떤 강연에서 툭 던진 말이다.
정확한 문장은 아닌데, 내용은 '작가는 글만 안쓰면 최고의 직업입니다.'
분명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초반 복잡하고 지루한 묘사와 모호한 느낌에 대한 장황한 설명,
그 모든 것을 견디며 마지막 결론에 이르니 진짜 힘든 등반 끝에 정상에 올라가
야호를 한 번 크게 외친 듯 머리가 확! 깨어나는 기분이 든다.
이게 독서의 맛이었지... 이제야 생각이 나는 군!
이 소설을 나에게 권한 건, 대학생 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여기 쓸만한 건
엄마가 책을 너무 읽지 않고, 문해력 마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솔직히 내가 요즘 책을 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엄마의 말뚝을 읽고 연달아 박완서 작가님 책을 열심히 읽다가 슬그머니
마거릿 애트우드의 단편집 [도덕적 혼란]으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좌절하고 말았다.
단편 하나 정도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작품은 솔직히 아무리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아
머리가 멍해지고, 눈도 안 보이고, 졸리고, 막 짜증이 났다.
결국 어려서부터 책 귀신이라 불렸고 결국 국문과에 진학한 딸에게
'네가 한번 읽고 얘기를 좀 해봐라' 했더니 아이는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 할머니 최고라며
모든 작품이 너무 재밌다는 거다.
결국 나는 읽지는 못하고 딸의 설명을 들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뼈를 때리는 유머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고찰, 그리고 우리 주변에 고착화된
나쁜 그것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 브라보!!!
그렇게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이후 난... 너무 슬퍼졌다.
오래전엔 엄마인 내가 많은 것을 설명해주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딸은 엄마가 너무 책을 읽지 않아 이렇게 됐다며 질책을 하더니
가끔 이렇게 책을 갖다 주며 읽으라고 한다.
그렇게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었고, 그다음 [순례자의 매].
아마도 이 책은 엄마의 바닥난 인내심을 고려해 얇은 분량으로 고른 모양이다.
"너 이 책 읽고 엄마한테 권한 거야?"
"앞에만 조금 봤지. 근데 진짜 다 읽었어?"
"엄마 진짜 힘들게 읽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딸을 위해
딸이랑 멋진 독서토론을 좀 하고 싶어서 온 몸을 비틀며 끝까지 읽었지."
"올~~"
힘들게 회복한 문해력이 다시 고갈되지 않도록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작품은 [명상 살인]이다. 카르스텐 두세라는 독일 작가가 쓴 소설인데
먼저 읽은 딸이 재밌다고 한다. 나의 문해력이 감당할 수 있는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