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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Feb 23. 2022

소설 [명상 살인]에 담긴  요즘 가족 트렌드.

*스포일러 없음

 이 소설의 주인공은 40대 남자 변호사다.

그는 사랑스러운 딸(2살)과 아내의 멋진 아빠, 남편이 되고 싶다.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고,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는 좀처럼 그 일이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아내의 제안으로 12번의 명상수업을 받고

단순하고 침착하게 자신의 행복과 평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해나간다.  

그렇게 그는 명상을 하고 살인을 한다!  

 


살인자 프리패스, 사이코 패스?!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이거나,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해 살인자가 된 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그냥 그런 가보다 하면서 봤는데, 문득  

어마어마하게 끔찍한 일을 해야 하는 살인자의 서사에 대해

너무 고민이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이코패스라는 데 뭐가 더 궁금해? 그런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살인자가 어디서, 어떻게 잡히는지만 궁금해하라고?  

범인을 찾는 형사가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결국 살인자가 살던 방을 찾아낸다,

그곳은 지저분하고 음습하며 반드시 종교 관련 용품이 몇 개가 놓여 있다.  

마치 그것이 엄청난 살인의 동기가 된 듯 이거야!! 이거였어!! 하면 끝이라고?

이런 궁금증을 가진 나에게 이 소설이 답을 주었다.

살인자에게도 이런 깜찍한(끔찍한 이 아니다!)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경이로운 아이디어다.   

말도 안 되는 귀여운 이유로 살인이 일어났는데, 나는 그것을 납득했다.  

그가 저지를 다음 살인보다 더 궁금했던 건 그가 과연 좋은 아빠, 남편가 될 수 있을까? 였다.

그리고 그가 정말 좋은 아빠가 되길 응원했다.

  

심지어 까탈스런 아내가 살인자 남편에게 던진 과제는  

복수? 질투? 돈?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딸아이의 유치원 입학'이었다.

"아빠로서 유치원 문제를 해결해!"

살인자와 유치원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그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결국 그가 그 문제를 엄청나게 신박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해결했을 때

드디어 나의 웃음 폭탄은 빵! 터져버렸다.  

왠지 오래 묵은 나의 어떤 트라우마... 까지는 아니고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16년 전인가? 큰 아이 유치원 입학을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자 안에 담긴 탁구공을 뽑았다.

주황색을 뽑아야 하는데 흰색을 뽑았는지, 흰색을 뽑아야 하는데 주황색을 뽑았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내가 뽑은 탁구공은 실패였다. 어리둥절한 딸아이에게 엄마가 뽑은 그 탁구공의 의미를

설명하며 눈물을 쏟았다. 동네 유치원 이곳저곳을 방문했다.  

대기표라는 걸 받고 굽신굽신 인사를 하며 나왔는데

그 종이엔 28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연락은 없었다. 절망했다.

탁구공만 봐도 그 순간이 떠오르고 그날 흘린 나와 아이의 눈물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나 왜 속이 뻥 뚫리지?


이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인가? 글로벌 시민으로 어린아이 한 두 명을 키워봤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경험했을 유치원 입학 문제를 이렇게 통쾌하게 해결한다고?

살인이면 어때? 폭력이면 어때! 이건 그냥 텍스트일 뿐, 소설이잖아!

난 무조건 그를 응원할 거다!!



이런 남편이 글로벌 트렌드!

이게 정말 재밌었던 건데, 이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을 저지른 그가!

아내한테는 쩔쩔맨다. 그게 그렇게 웃기다. 그가 아내한테 반항 비슷하게 뭔가 할 말을 하는

장면이 있긴 있는데 그것은 소설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이다!

  

가끔 남편에게 너무 큰 소리를 내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 심한가? 아내로서 선을 조금 넘고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남편보다 내 성격이 더 외향적이고 강한 편이긴 하다. 그렇다고 늘 내가 큰소리를 치는 건 아니다.

어쨌든 내 목소리가 더 큰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인데, 요즘 특히 그렇다.

아무래도 팬데믹이 끝없이 길어지고 외식은 힘들어진다.

그래도 먹는 건 먹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식탁을 차리는 내 역할이 날로 날로 중요해진다.

중요한 사람 목소리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자녀가 자라 성인이 되어 아빠를 딱 바라보고 있으니 그 시선을 어쩔 것인가?

아빠도 어쩔 수 없이 이미지 관리라는 걸 하게 된다.   

미디어에서 '딸바보'라는 이미지를 부추긴 것도 한 몫했다고 본다.

그 모습이 좋아 보이니 점점 자신을 그렇게 바꾸는 듯 보인다.  

자연스럽게 집집마다 따듯하고 다정한 아빠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놀이터에서 아이를 함께 키운 육아 동지 단톡방에 젊은 엄마가

사진을 하나 올렸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을 목마 태운 아빠의 모습.

심지어 웃고 있다! 역시 젊은 아빠는 다르다.

세상에 얼마나 귀여우면 열 살이 넘은 딸아이를 목마까지 태운단 말인가!

이미 중년인 우리 부부가 했다간 목이 어떻게 될지, 어깨가 어떻게 될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다.

그 젊은 아빠의 행복한 얼굴에서 새삼 달라진 요즘 가족의 풍경이 보였다.   

이 소설에도 확실하게 21세기적인 그런 아빠의 모습이 아주 리얼하게 담겨있다.  

그렇지! 요즘 남자들은 이렇게 살아야지! 이게 트렌드지!


"모르셨다면 지금부터는 아셔야 할 거예요! 이게 글로벌 트렌드거든요!"



요즘 힙스터들 스마트폰에는 명상 앱이 기본?  

요즘 자기 계발 좀 해본 사람들에게 명상이 필수라고 한다.  

모닝 루틴 하는 MZ세대들에게도 명상은 기본이라고 들었다.

솔직히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명상보다 기도를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명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중년인 나에게도 매우 유익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의 기도가 멈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할머니 걱정 마!)


할 일은 늘 넘친다. 늘 다 하지 못한다. 할 수 없는 일은 더 많다.

못하는 일도 많다. 나이는 들어가고, 시간은 없고, 마음은 조급하다.

진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이 복잡한 마음의 넘실대는 풍랑을 명상으로 가라앉히고 하나씩 천천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실행하면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무엇보다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 싶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니 가능할 거 같다!

명상을 통해 끔찍한 살인을 해내고, 얽힌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를 숲이 있는 유치원에까지 입학을 시켰다면, 정말 뭐든 못할까 싶다.

자기 계발서 같은 소설인지 소설 같은 자기 계발서인지... 암튼 신박하다!       


어제 분노 명상을 해봤는데, 효과가 있었다.

"분노에 찬 나 자신을 바라보세요, 나의 분노가 탄 자리, 남은 재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분노가 당신의 몸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세요!"    


나도 이제 명상하는 사람이다! 하하하  



문해력 탓이 아니었나?

독일에서 변호사이면서 방송작가로 코미디 상을 수상했다는 이 소설의 작가는

[명상 살인]으로 2019년에 데뷔를 했다고 한다.

이후 이 작품은 독일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했고 이후 2년 동안에도 높은 순위를 유지했단다.  

그리고, 그 인기에 힘입어 2편 3편까지 출간. 와우!


내 생각에 이 작가는 노벨문학상? 멘부커 상? 그런 상을 받고 싶은 거 같지는 않다.

진지하게 인간의 내면, 욕망... 암튼 그런 것을 탐구하고 매진하여

어떤 문학의 금자탑을 세우기보다 

세련된 유머와 재미가 가득한 블랙 코미디로 독자의 낄낄대는 웃음을 유발하고 싶고,

너도 그랬지? 나도 그랬다!! 이런 일상적 공감을 얻고 싶은 거 같다.

나는 특히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너무너무 부러웠다!


확실한 건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할리우드? 어디서라도

이 엄청나게 재밌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그냥 두지 않을 거라는 것.

암튼 누구라도 어디라도 빨리 영화로 만들어주세요!! 너무너무 재밌으니까!


(누군가를 비난할 의도는 없는데) 이렇게 빨려 들어가듯 폭풍 독서를 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은 후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와! 소설 읽고 박수를 치다니... 그런 순간이 내 평생 있기는 했나?

물론 좋은 소설을 읽고 행복해지고, 평안해지고, 머리가 띵하고, 눈물도 펑펑 흘리고...

가지가지 다 해봤지만 박수 친 건 진짜 처음인 거 같다.


의외로 이 소설, 육아와 살림에 지친 주부에게 취향저격이다.

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잠깐 빠져나오고 싶을 때,

사라진 문해력을 찾고 싶을 때,

갑자기 현관으로 갱년기가 들어와 착하고 진지한 것에 염증 같은 게 느껴질 때,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요즘 가족의 트렌드가 궁금할 때, 꼭 한번 읽어보시길!


남편 교육용으로도 딱 좋아요!   


  

세계사...나 이 출판사와 아무 상관없는데... 열심히 홍보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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