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의 기쁨

행복하고 싶은 중년의 당신을 위해 씁니다.

by 임지원


내가 감기라는 지옥문 앞을 서성이며 운동을 중단한 사이, 헬스장의 계절이 바뀌었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도 들어오지만, 종종 후끈한 바람도 느껴진다. 그렇다고 한 여름은 아닌데 이 작은 변화가 크게 다가오는 건 러닝 때문인 거 같다. 달리기 시작하고 5분, 10분만 지나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눈가의 땀이라도 닦아줘야 계속 달릴 수 있다. 수시로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낸다. 물도 마시고 싶어 진다.

예전엔 물병에 반 정도 얼음물을 가져가도 남겨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주부턴 한 병 가득 담아가는데, 집에 오면 빈통이다. 그리고 40분 연속 달리기는 무리다. 월요일에는 최대한 20분을 달린 후 속도를 늦추고 얼굴과 목에 흐른 땀을 닦고, 물도 마시고 숨을 고른 후 후반부 러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38분쯤 지나며 이제 그만 뛰자 마음먹었는데, 마침 시작된 스포티파이의 추천곡이 'It's Raining Men'. 놀랍도록 용맹한 가락에 좀 더 뛸 마음이 생겨 늘 뛰던 40분을 채우고 1분 20초나 더 뛰었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STOP버튼을 눌렀다. 이 순간이다. 러닝의 기쁨이 파도치듯 내 몸을 감싸는 바로 그 순간. 러닝머신 LCD창에 나타난 오늘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후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니 땀이 줄줄 흐른다. 상쾌함과 자신감이 내 안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감기 바이러스와 싸우며 헬스장에 오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있을 때 내가 우울했던 이유를 알겠다. 나는 왜 중년이 지나 러닝의 기쁨을 알게 됐을까?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알게 됐다는 건 정말 다행이다. 불현듯 10개월 전, 운동화를 챙겨 헬스장으로 내려왔던 그때로 돌아간다.


운동 시작하고 초반에는 뛸 생각도 못했고, 걷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가끔 내 옆 러닝머신에서 그 시절의 나처럼 걷고 있는 러닝 동지를 만나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걷고 있는 이 상태가 너무 지겹고 1분도 길고, 2분은 더 길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나? 그랬다.

생각해 보면 발목 돌리기 같은 기본적인 준비 운동도 없이 걷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발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체중도 만만치 않으니 무릎도 당연히 아파온다. 어쩌다 시큰시큰하다. 점점 옆구리까지 결린다.

그렇게 억지로 걷고 나면 몸이 너무 고단했다. 그래도 그걸 견디며 또 헬스장으로 내려간 건 그나마 느낄 수 있었던 작은 성취감 때문이었다. 쉰을 지나며 체력과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걸 느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늘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재미도 보람도 없고, 더 힘들었던 건 이 지루함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무엇보다 다시 예전처럼 쓰는 걸 일로 할 수 없다는 게 명확했다. 공모전에 도전했지만 내 글은 선택되지 않았다. 그나마 엄마로서는 어느 정도 잘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육아라는 게 아름답기가 참 힘들다. 큰 애가 대학에 합격하고 뒤늦게 사춘기가 오는 바람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막 사춘기가 시작된 막내의 고집도 대단했기에 난 종종 성이 났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힘든 걸 하고 있지만, 인정을 받을 데가 있나? 누가 월급을 주길 하나? 오히려 모든 것이 내 잘못 같기만 했다. 일부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 큰 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나갈까 걱정만 하는 나 자신이 비루하게 느껴졌다. 어디 속 터놓을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기도 했는데, 중년이 되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힘들다 힘들다 소리 한 두 번은 할 수 있지만, 계속하면 안 된다는 걸. 그 가까운 사람도 힘든 일이 많고, 어쩌면 내 힘듦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잇값도 무시 못한다. 마음은 스물 초반 치열하게 방황하던 때랑 다르지 않은데 겉모습은 세상 이치를 다 깨달아 알고 있어야 할 거 같다. 오래전 봤던 만화 영화가 떠오른다. 호호 아줌마. 내가 바로 누군가의 소원도 들어주고 인생을 통찰해야 할 아줌마가 됐는데 여전히 아이처럼 속을 끓이고 있으니... 그럴 때 아무 생각 없이 헬스장에 내려가 지루하게 걷고, 고단해지는 게 좋았다. 그 고단함이 오히려 약이 되어 날 재우기도 하고 웃음 짓게 했다.


나에겐 아직 엄마로서 지루하게 감당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초등학생인 막내의 육아가 끝나지 않았고, 입시는 시작도 안 했다. 나이 들어가는 남편에게 건강식도 만들어줘야 한다. 공부하느라 바쁜 큰 애의 시간을 아껴주기 위해 종종 운전도... 이런 판국에, 스페인 순례길도, 제주도 한 달 살이도, 황혼 이혼도, 다 말이 안 된다. 모든 걸 무릅쓰고 판 갈아엎을 거 아니면 일단 뛰고 볼 일이다. 종종 행복해지는 내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끝까지 완주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달렸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KakaoTalk_20230517_202131677.jpg 우연이가 그려준 러닝 하는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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