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러닝, 행복한 수다

러닝도 동지가 필요하다!

by 임지원

석가탄신일 대체 휴일로 월요일까지 주말 특근이 이어졌다.

오늘 막내가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라 어제 급히 옷을 사러 나갔는데, 아동복에는 우리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가 없고, 그렇다고 성인의 옷을 입히는 건 어정쩡해 적당한 옷을 사기 힘들었다. 운동화는 금방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마저도 아이와 의견이 맞지 않아 나는 몇 번이나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빨리 말해주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많이 했다. 아이도 힘든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결정할 수 없는데 결정을 하라고 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전에 시작한 쇼핑은 오후 4시나 돼 끝이 났다. 마라톤급으로 많이 걸었지만, 이건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다. 쇼핑몰 두 군데에서 찾지 못한 옷을 결국 zara kids 매장에서 찾았다. 13-14세 , 164cm 사이즈의 아동복은 정말 귀하다.

일반 사이즈로 160 정도 되는데, 대부분 아동복은 160까지 가지 않고 최대 155까지만 나오기 때문에

키와 몸이 확 커버린 우리 아이의 경우 입힐 옷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자라 키즈 매장으로 갔다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텐데, 남편의 옷과 내 옷도 함께 살 수 있는 쇼핑몰을 가는 바람에 고생을 자초했다.

참 이상하다 몸은 비슷하게 움직인 거 같은데, 쇼핑은 털리는 느낌이고, 러닝은 채워지는 느낌이다.


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꼭 달려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달리기 싫기도 했다. 3일을 쉬면 이렇게 되는구나! 몸이란 게 참 정직하다. 그 사이 나태해진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연습을 며칠 쉬어버리면, "어렵쇼, 이제 그렇게까지 힘쓸 필요는 없어졌구나. 아, 잘 됐다"하고 자동적으로 판단하여 한계치를 떨어뜨려 나간다.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114



오랜 시간 공 들여 겨우 달리는 사람이 됐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게다가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종종 좀 더 빨리 시작했다면 좋았을 걸 그런 생각도 한다. 나태해진 몸아 정신 차려! 넌 운동일지를 쓰는 아줌마의 몸이야!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바로 헬스장으로 갔다. 오늘부터는 시간이 아니라 거리로 기록을 남길 예정이다. 목표는 6km. 시간은 내 속도에 달렸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러닝 음악, 러빙 스푼풀(The Lovin' Spoonful)의 데이드림을 들으며 곡이 끝날 때까지 공들여 발목과 무릎을 돌렸다. 그리고 조금 걷다가 속도를 9.1까지 올려 달리기 시작, 금방 몇 곡이 흘러가고 땀이 폭발하며 흘려 타월로 몇 번이나 닦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피식 또 웃음이 터졌다. 음악이 느려서 그런 가? 머릿속에 더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요가 생각이 났다. 요가를 하고 뛰면 훨씬 잘 달릴 수 있을 텐데, 주부로 3일을 살다가 달리니 너무 힘들다! 그런 생각. 다리가 무거웠다. 러닝이 너무너무 좋은데, 러닝을 신나게 하려면 요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요가를 러닝 아래 놓을 순 없는 일이다. 요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특히 사바아사나. 온몸을 비틀고, 들고, 버티며 난리법석을 떨다가 갑자기 털썩 드러누웠을 때 찾아오는 고요함과 편안함을 어떻게 러닝과 비교할 수 있나!

요가와 러닝, 러닝과 요가! 너희들이 강물에 빠지면 난 무얼 먼저 구해야 할까?

의식의 흐름이란 게 참 희한하게 흘러간다. 요가와 러닝을 강물에 빠트린 게 재밌어 웃고 있는데, 바로 옆 러닝머신에 같은 동에 사는 젊은 엄마가 올라온다. 그 순간 눈까지 마주쳐 우리는 씽긋 눈인사를 나누고 같이 달렸다. 혼자 달릴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따뜻한 눈인사 때문이었을까? 20분이 지나며 속도를 늦추고, 땀을 닦고 준비해 간 얼음물을 마시며 조금 걷다가 좀 더 화끈한 에너지가 필요할 거 같아, 제니퍼 로페즈 언니와 싸이가 있는 기존의 운동 음악 리스트로 바꾸고 또 달렸다.

5.30. 오늘의 내 러닝 기록













하체 근력 운동을 몇 가지 추가하고 일명 덜덜이라 불리는 진동 운동기구에 올라가 몸을 풀고 있는데, 이 동네로 이사와 만난 십 년 지기이며, 아이를 함께 키운 놀이터 동지였다가 이제 러닝동지까지 된 지인이 날 보며 웃는다. 아, 반가워라!


"나 오늘 헬스장 왔는데, 금요일에 쓴 요가매트가 헬스장 옷장에 있잖아,

러닝머신에 올라갔더니 내 물병이 꽂혀 있잖아, 내 정신머리 무엇?"


지인이 깔깔깔 웃는다. 우리는 아이들 졸업사진 준비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남편이 직장 동료를 통해 알게 됐다며 대덕동에 있는 추어탕집에 날 데리고 갔다. 몇 번 먹었는데, 기가 막힌다. 사장님 님 손목에 두툼한 금팔찌가 이 식당의 인기 여부와 재정 상태를 말해주는 듯했다. 어느 날 문득 나의 놀이터 동지이자 러닝동지인 그녀가 생각나 그 식당에 데리고 갔다. 30분 정도 운전을 하며 갔는데, 왜 그랬는지 옆에 앉은 그녀에게 나의 할머니 이야기를 하게 됐다. 국물이 찰랑찰랑했던 할머니의 이북 김치, 다듬이질 한 하얀 광목으로 둘러싼 할머니의 목화솜이불, 할머니의 한복 바느질, 그리고 직접 만드신 수의를 입고 떠난 할머니의 2년 전 장례식... 그땐 말을 못 했는데, 지금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요."


러닝은 즐겁고, 수다는 행복하다. 인생이 술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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