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토요일, 그 아줌마 운동일지
수요일
날이 더워지면서 냉골 같던 강습실 바닥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진다. 찬기에 몸이 오그라들던 느낌이 기억도 안 난다. 자연스럽게 요가 전 러닝을 하지 않게 됐다. 게다가 여름 러닝은 잠깐이어도 체온을 급 상승시킨다. 금방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흐르기도 해, 명상에 도움이 안 된다. 요가는 명상과 함께 시작한다. 물소리가 시작되고 천천히 호흡을 마시고 뱉고 그렇게 머리를 텅 비워야 하는데, 난 그게 그렇게 힘들다. 왜 생각을 멈출 수 없는 거지? 차라리 러닝을 할 땐 그런 일도 일어난다. 물론 초반엔 몸도 무겁고 다리도 뻐근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막 밀려오지만, 점점 달리는 동작에 몸이 적응하면 그 규칙적인 움직임이 의식 없이 일어나면서 어느 순간 생각이 없어지고,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달리기 시작하고 처음 1km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마지막 5km 지점부터 6km까지는 훅 지나가기도 하니까.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 안 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도 그랬다! 명상하러 인도에 간 줄리아 로버츠가 인테리어 공사 생각등 여러 가지 생각이 폭발하며 불안한 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고통(?)스러워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런 에피소드가 영화에까지 나왔다는 건 명상이란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일 거다. 특히 오늘 명상이 말도 안 되게 힘들었던 건 요가 시작 5분 전에 막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착각으로 벌어진 사소한 사건이었음에도 난 많이 긴장한 상태로 선생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통화가 끝나고 시계를 보니 9시. 마음은 복잡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게 준비물을 챙겨 달렸다. 명상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도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하니 조용하다. 명상 중인 거다. 조용히 들어가 매트를 펴고 앉았지만 호흡이 거칠었다. 숨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늘 2,3분 전엔 도착해 강사님과 한 두 마디 스몰토크도 나누며 여유 있게 요가 수업에 임했었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요가 시간을 시작부터 망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정신으로 요가를 했는지 모르겠다. 최대한 아무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데도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밀려왔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큰 애 키울 때도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왜 내 아이들은 가끔 황당한 실수를 하는 걸까? 많이 놀라신 담임 선생님의 말투와 목소리가 내가 큰 애를 키울 때 했던 바로 그 리액션이었다.
"아니, 그럴 애가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왜?"
"그러니까요 선생님, 도대체 어떤 나사가 빠지면 그런 실수를 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선생님은 이해하시기 어렵겠지만, 제 생각엔 정말 사소한 실수로 일어난 일이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도 이해를 하신 듯했다. 어쨌든 머리가 복잡했다. 늦게 합류한 나를 배려해 명상 시간이 평소보다 길었다. 하지만 난 끝내 몰입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요가는 몸으로 하는 요가예요, 몸으로 하는 수행이 되면 다음으로 명상 요가를 할 수 있어요."
강사가 우리가 하는 요가에 대해 설명을 했다. 나는 문득 궁금함이 생겨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명상 요가가 더 어려운 거예요?"
"그럼요! 몸 수행이 돼야 명상 요가가 가능하거든요."
"바보 같은 질문이긴 한데... 그럼 명상 요가의 움직임이 더 어렵고 힘든 건가요?"
"아니요, 명상.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네? 가만히 앉아 있어요?"
"1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어 보세요, 엄청 힘들어요. 5분도 못하죠.
어려운 몸 수행을 힘들게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요.
그래야 비로소 명상 요가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아...!"
몸 수련이 고되야 비로소 고요해질 수 있나 보다. 사바아사나만 해도 그렇다. 동작이 힘들수록 사바아사나의 기쁨도 크다, 까무룩 무의식의 상태로 들어가기도 한다. 힘이 남아 있는데 사바아사나를 하면 왠지 불편하다. 아직 힘이 남았는데 벌써요? 그런 느낌! 담임 선생님과의 전화통화 이후 마음이 널뛰는 바람에 명상에도 집중을 못했고, 수련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서 사바아사나까지 찝찝하게 끝났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 요가는 에어로빅이랑 비슷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상과 요가, 그리고 수련이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해 본 순간... 이렇게 또 깨닫는다.
다행히 헬스장에서 같은 반 학부모이자 러닝동지인 지인을 만났다. 우리 아이의 실수 사건과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괜찮다고 걱정 말고 얼른 뛰기나 하라는 지인의 말에 웃음이 터져 복잡한 마음이 좀 사그라들었다. 러닝은 6km를 채웠다. 초반에 조금 힘든 거 말곤 이제 러닝을 즐긴다. 스포티파니의 추천곡으로 리키마틴의 Livin'la Vida Loca가 추가됐다. 화려한 리듬과 선율에 발걸음을 맞춰 달리니 신바람이 난다. 힘든 줄도 모르겠고, 그냥 무아지경이다. 하루에 6km, 내가 정한 분량을 채우고 stop버튼을 눌렀다. 머리는 상쾌하고 가슴은 뿌듯하다. 그냥 기분이 너무 좋다. 그래, 애들이 크면서 그럴 수 있지, 종례 마치고 책가방 메고 운동장으로 가 마지막 6교시 체육 수업을 받는 아이들, 많겠지! 대부분 그렇겠지! 하지만 책가방 멘 김에 그냥 집으로 오는 아이도 있을 수 있지 않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목요일
운동을 가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에어팟을 끼고 전화를 받은 후, 헬스장으로 가지 않고 거실에 있는 숀리 자전거에 올랐는데, 통화를 끝내고 보니 40분을 돌렸다! 자전거 40분 돌리기 쉽지 않은데, 앞으로는 전화통화할 땐 무조건 자전거 돌려야지! 마음먹었다. 일을 하는 친구라 왠지 그 친구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더 값지게 느껴진다. 왠지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생긴다.
실내 자전거 얘기가 나온 김에 숀리 자전거에 대한 추억 한토막.
#. 엘리베이터 안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 아빠의 손에 재활용품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려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중년 여자 1이 재활용품이 담긴 큰 비닐봉지를 들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다.
잠시 후 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역시 중년 여성 2가 숀리의 실내자전거를 힘들게 끌고 들어온다.
중년여성 1 어머, 안녕하세요~
중년여성 2 안녕하세요~
중년여성 1 숀리 자전거, 버려요?
중년여성 2 네... 먼지만 쌓여서... 버릴라고요. (웃는)
중년여성 1 우리 집에도 있는데... 전 가끔 해요 가끔. (웃는)
아들 아빠 우리 집에도 저거 있었는데, 버렸지?
아빠 ...
*중년 여성 1이 나다.
숀리는 이렇게 재벌이 된 건가? 우리 동네에 숀리 자전거가 몇 대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자전거를 40분 돌리고 나니 다리 근육이 뻐근해 한참 동안 발목, 무릎을 돌린 후, 러닝 시작. 그리고 6km 목표 달성. 정말 이러다 마라톤 대회 나가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나의 운동일지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면
마라톤 대회 참가는 필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출전했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 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그 유명한 철인 3종 대회까지 나간다면, 나 진짜 출간작가 될지도 몰라! (들리시나요? 김칫국 마시는 소리가!)
금요일
요가 시작 5분 전에 들어갔는데, 얼핏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강습실 뒤 쪽에 서 있었다.
왜 그랬는지 문득 강사님의 남편인가?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생각만 했는데 말해버린' 증상에 대해선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 나만 그런 줄 알고 말했는데, 내 또래 중년 여성들 대부분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맞아! 맞아!"
"강사님, 남편이세요?"이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상황을 생각하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얼핏 중년으로 보였던 남자분은 다시 보니 노년에 가까웠으니까! 잠시 후 역시 노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같은 동에 사는 언니가 왔는데, 벗은 신발을 신발장에 넣으며 한마디를 툭 던지는 거다.
"어머, 청일점이 나타나셨네!"
언니의 이 말 한마디에 왠지 모르게 경직됐던 분위기가 탁 풀렸다. 나도 고개를 돌려 인사를 했다. 강사는 오늘이 6월의 첫 시간이고 새로운 수련생이 오셨으니 오늘은 너무 힘들지 않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나만의 자세와 방향을 찾아서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내 생각에 그 남자분은 요가가 별거겠어? 그냥 하면 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등록을 한 거 같았다. 말투나 분위기가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솔직히 그 연배의 남자분이 요가 등록을 할 정도면 조기 축구 안 했을 리 없고, 해병대나 산악회, 어쩌면 그 이상도 다 섭렵하셨을 거 같다! 수련이 시작되자 나는 내 동작에 집중하느라 그분을 쳐다볼 이유는 없었지만, 의외로 그분이 아! 힘드네 하며 한숨을 내뱉은 첫 순간은 기억이 난다. 바로 발가락을 쫙 펴라는 강사님의 지시 이후였다. 발가락을 손가락 펴듯 쫙 편다. 그리고 다음으로 엄지만 앞으로 뻗는다!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다리를 뻗고, 팔을 뻗고, 그런 것들은 대충 흉내라도 낼 수 있었지만 발가락을 펴는 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불가능한 동작이었다. 나도 요가 첫 수업 때 안 된 동작이다. '안따라반다'라는 동작인데, 엄지발가락을 앞으로 뻗으면 다리 안쪽으로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난 발가락이 펴지지 않았고, 엄지발가락만 앞으로 뻗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자꾸 힘을 주니 발가락에 쥐가 나며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던 순간이 기억났다. 내 발가락이 내 맘대로 안 되다니! 얼마나 당황을 하셨는지, 아주 끙끙 소리를 내신다.
나는 이제 두 달째 수련이다. 자세가 많이 좋아졌다며 같이 수련하는 언니의 칭찬도 들었다. 내 느낌도 그렇다. 예전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내 몸에 철사가 들어간 듯 단단하게 느껴진다. 언니는 노년이지만 오래전에 요가를 몇 년 동안 했던 터라 동작이 유연하다. 종종 의외의 동작을 아주 잘 해내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나보다 젊은 엄마는 근력도 좋고 수련도 오래 한 터라 나와 언니가 하는 동작에서 늘 한 단계 더 어려운 동작에 도전한다! 이렇게 세명의 여성들이 팔, 다리와 발가락을 쭉쭉 뻗으며 어려운 동작을 해내는 가운데, 안 펴지는 발가락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 남자분의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솔직히 재밌었다!
사바아사나까지 끝나고 모두 일어났는데, 그분이 인사도 없이 휘리릭 밖으로 나가신다. 다음 강습에 오실까? 모르겠다. 발가락 펴기 연습을 하시면서 다음 강습을 준비하실지, 아니면 강사님에게 수업료 환불을 요구하며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실지! 수업료 환불은 강좌가 시작되면 불가능하다고 안내문에 나와 있는데... 과연 그분의 선택은? "아이~ 궁금해! 아이~ 궁금해!"
요가를 끝내고, 러닝을 하러 헬스장에 갔는데, 왜 그랬는지 양말 챙기는 걸 깜박했다. 대충 러닝화만 신고도 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km를 달리고 나니 도저히 안 되겠는 거다. 바닥이 미끌미끌하고 축축해졌다. 괜히 무리하다 넘어지거나 하면 큰 일이다 싶어 바로 stop을 눌렀다. 러닝에 양말이 이렇게나 중요했어? 그동안 러닝화만 이쁘다 기특하다 했는데, 그 소릴 들을 때마다 우리 양말이 얼마나 서운했을지... 양말아, 미안!
주말에 집에 오는 큰 애에게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냐고 톡으로 물었더니, '연어'라는 답이 왔다. 주말맞이 엄마 특근을 위해 바로 코스트코를 향해 차를 몰았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니 할 일이 태산이다. 양고기도 썰어야 하고, 연어도 소금 뿌려 두었다가 식초 물에 담가 준비해야 하고, 당장 먹을 샌드위치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오늘 아침은 우리 4인 가족이 모두 식탁에 앉는 날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30분인데, 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가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을 거 같아, 바로 운동복을 챙겨 입고 헬스장부터 갔다. 어제 채우지 못한 4km! 이 러닝 빚을 갚기 위해. 그런데, 4km만 달려도 된다! 는 사실에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편안하지? 혹시 6km는 나에게 부담스러운 거리인가? 물론 달리다 보면 분명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고 2km 지점까지는 솔직히 힘들다.
그 고비를 넘기면 6km까지 쭉 달릴 수는 있다. 그럼 나와 약속한 하루 6km를 다음 주부턴 4km로 바꾸고, 4km 지점에서 더 달릴 수 있으면 6km까지 달리는 걸로 원칙을 바꿔볼까? 이러나 저러나 결국 6km를 달릴 거 같긴 한데, 시작하는 마음의 부담을 줄이는 게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미가 있을지 궁금하다. 목표는 어제 못 달린 4km 달리기였는데, 막상 4km가 채워지자 좀 더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8시 10분이 지났다. 아침 준비를 시작해야 할 거 같아, 얼른 러닝을 멈추고 집으로 와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