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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유튜버지만 괜찮아

내 인생의 완벽한 BGM을 부르는 가수 성시경

by 임지원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은 대략 5시에서 6시 사이다. 건조한 양쪽 눈에 인공눈물을 한 방울씩 넣어주고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다. 동쪽으로 난 주방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왠지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힘을 내라는 응원의 메시지인가? 오늘이라는 나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는다.




중년엔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니 먼저 냉장고 문을 열고 달걀을 꺼낸다. 손바닥 만한 찜기에 달걀을 올려놓고 뚜껑을 닫는다. 타이머를 맞춘다. 완숙을 만들어주는 15분 칸까지는 안 가려고 집중해 본다. 노른자가 완전히 익은 달걀은 고집불통 같다. 젤리 같은 노른자가 되길 바란다. 냉장고를 열어 사과도 꺼내고 오이도 꺼낸다. 잠깐 숨을 고르며 충전기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이 아침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골라본다. 이상하게 결정이 안 될 때 난 성시경의 노래를 선택한다. 큰 기대 없이 익숙함에 이끌린 선택이지만 일단 노래가 시작되면 아, 그래 역시 성시경이지. 언제나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함을 느낀다. 줄줄 외우다시피 하는 가사라 자연스럽게 열창이 시작된다. 잠시 후 막내가 문을 열고 나온다.


"엄마 시끄러워. 또 성시경이야?"


14년 전 막내를 임신하고 조산집중관리실에서 누워있을 때에도 거의 매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시끄럽다니! 넌 그러면 안 되지! 엄마 제일병원에 누워있을 때 너 엄마 뱃속에 있었잖아. 너도 같이 들었어. 엄마 성시경 좋아하는 거 몰라?

"근데 먹방 유튜버가 돼서 속상하다며? 전에 그렇게 말했잖아."

아니 매일 속상한 건 아니고, 가끔 속상했다는 거지. 그걸 왜 기억했어?

"엄마가 여러 번 말했으니까 기억했지."

그랬나? 하여간 애들 앞에서 냉수도 못 마신다. 열창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내가 쓴 어린이 소설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다는 출판사의 메일을 가족이 다 함께 간 식당에서 확인했다. 벅찬 감정을 억누르며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성시경 노래를 들었다.

‘햇살은 우릴 위해 내리고...’


희재라는 제목의 노래다.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웅장하면서도 애절한 느낌이다. 방금 전 기다리던 메일을 확인하고 기뻤던 순간도 잠시, 왠지 모를 불안으로 요동치는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났다.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눈물이 났다. 14년 경단녀의 한이 풀리는 순간인데, 우리 지원이, 우리 강아지 노래를 부르던 할머니와 이 기쁨을 나누지 못해 슬픔에 젖고 있다. 왠지 또 드라마틱한데...


"엄마 또 울어?" 하여간 막내는 그냥 넘어가 주는 법이 없다.

그러게. 할머니 생각나네. 할머니 돌아가실 때 엄마 걱정했을 거 같아. 엄마 출판사랑 계약하는 거 할머니가 알면 진짜 좋아하셨을 텐데. 할머니 보고 싶다.

"그런데 엄마, 할머니가 엄마를 총채로 때리고, 예쁜 옷도 못 사게 해서 미웠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가끔 미웠다는 거지. 엄마가 고집을 많이 부리고 말을 안 들었어. 할머니 속 썩였어!

하여간 애들 앞에선 무슨 말을 못 한다. 눈물이 쏙 들어가네.


종종 찾아오는 내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엔 성시경, 그의 노래가 필요하다. 주인공이 된 나를 빛나게 할 완벽한 BGM. 그러니까 먹방 유튜버가 됐지만 괜찮아!






style_60d57fc23f951.jpeg 이 사진은 VOGUE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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