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서에 사인을 했으니 더 이상 회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신임대표와 협의 후 퇴사일까지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로 한 첫날, 새벽 5시도 안 된 이른 시각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권고사직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며칠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먹는 점심 한 끼 외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몇 잔 마시는 게 다였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마치 연인과의 예상 못한 이별에 상실감을 주체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의 사직권유를 받아들였고, 합의를 거쳐 사직하기로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되돌릴 수는 없다.
권고사직서에 사인하기 전, 답답한 마음에 노무사들이 올린 유튜브를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권고사직'을 검색했더니 마음을 다독이는 콘텐츠들이 함께 뜨기도 했는데,
권고사직을 당했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선택에서 오는 피로감이 얼마나 큰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그러다 우연히 김미경 강사님의 유튜브 방송을 보게 되었다.
나의 롤모델이면서 대다수 어른이들의 멘토 김미경 강사님도 일이 잘 안 풀릴 때가 있었다고 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내 맘 같지 않을 때 누워있지 않았고, 일찍 일어났고, 일어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누워있는 일인 내가 왜 그동안 작은 문제도 쉽게 해결하지 못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정작 해야 할 일,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은 시작도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상을 보고 불현듯 더 이상 하루를 누워서만 보내지 말자, 때가 되면 일어나고, 오늘 하루에 할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것이 독서가 될 수도, 스터디 모임에서 주는 과제 제출 작업이 될 수도, 이력서와 자소서 한 줄을 채우는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작게는 일어나자마자 물 마시기와 비타민 먹기, 매일 하기 귀찮지만 그냥 두면 찝찝한 설거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지금 당장 눈뜨자마자 할 수 있는 일부터 잠자기 전에 할 수 있는 일까지를 하나하나 적고 그대로 실천하니 누워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회사와 이별을 했다는, 아니 일방적으로 내가 쫓겨났다는 생각이 들지도 더 이상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생활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었던 원인 모를 불안감이 낮아졌다.
또 시작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쉬이 결과가 나온다는 굉장히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불확실한 내일의 막막함을 타계할 방법을 몰랐던 내가 매일 확인하던 것은 무료 사주 어플이었다.
결과는 늘 놀라우리만치 잘 맞아떨어졌었는데, 이번에도 나에게 직장과 업무의 변동이 있을 것이라 했고, 언제나 그렇듯 나는 내 주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성공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
항상 말도 안 되는 점괘라고 생각했지만 성공한다는 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괜히 마음이 평온했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 이어도 시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할 일을 하나하나 마무리 지을 때마다 나는 잘 될 거고, 나는 성공할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걸었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될 거야.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볼 거고, 더 좋은 곳에서 일하게 될 거야.'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며 매일 밤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도 함께 일했던 팀장님과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다.
회사가 어떤지 물어보면 팀장님은 그냥 매일이 똑같고, 별일이 없다 했다.
나는 어떠냐 물어오면 매일이 바빠 죽겠다고, 할 일은 많은데 몸은 하나여서 힘들다고 오히려 하소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