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만화에서 안영이는 처음에 거의 사기적인, 메리 수나 치트키가 생각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뽐낸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자기 상사인 대리나 상사의 기존 아이템, 업무를 체크하고 더 좋은 사업이 될 수 있도록 디밸럽, 업그레이드를 계속하다 보니 상사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고 매일 눈치 보이다 보니 술 먹고 너 때문에 출근하기가 싫다고 토로할 정도로... 물론 안영이의 이런 유니콘스러운 넘사벽 신입의 모습이 수백 화 내내 이어지지는 않는다.
2013년에 연재했던 미생에서 당시에 월급으로만 세후 365만원을 받았던 안영이. 지금 봐도 적은 월급이 아니지만 10년 전에는 더욱 그러하다. 대기업이니 명절 보너스도 있을 것이고 각종 상여금 등등을 생각해 보면 안영이의 연봉은 최소 5000 각종 보너스를 합쳐서 많으면 6000 7000도 가능한 굉장한 신입사원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안영이에 대해 이런 의문이 들 만하다. 안영이는 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낸 걸까.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니까 금수저에 엄친딸의 삶을 살아왔을까?
안영이의 아버지는 직업군인. 딸이 반장이 되고 전교회장이 되고 전액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굉장히 모범적인 엘리트로 성장했지만 그는 흔한 군인 아버지답게 딸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군인의 옷을 벗은 후, 딸이 회사에서 임원코스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자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가 가게 하나 차려보고 싶다며 딸에게 손을 벌린다. 그러자 안영이는 보란 듯이...
아버지가 자기 이름으로 대출받으려는 걸 알게되자 임원코스고 뭐고 바로 그만두는 안영이. 적성이고 뭐고 까라면 까는 게 일 아니냐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당신은 이전에도 가게 열었다가 자기 성질대로 손님하고 싸운 적 있지 않냐고 일침하는 안영이. 그리고 결정타로 아버지가 평생 딸 앞에서 외쳐왔을 남자답게 사나이답게 군인답게라는 말을 참 시시하다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안영이.
아마 안영이는 어릴 때부터 자기에게 무관심하다가 돈나올 구석이 생기니까 자기에게 말을 거는 아버지에게 이미 질려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한 대 맞는 것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서 대놓고 아버지에게 불화를 선언한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바에야 아빠와 불화하고 말겠다고...
이렇게 안영이가 강경하게 아버지와 불화하는 건 물론 자존감 높은 엘리트이기에 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아마 원 인터를 다니면서 장그래를 만난 덕분이 아닐까. 자신과는 다르게 10대에 너무나 큰 실패와 상처를 겪은 장그래. 고졸임에도 낙하산 백으로 입사해서 주변의 눈치와 압박을 받았음에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온길 인터로 이직해서도 자기만의 바둑을 두는 그래그래 장그래...
자기 자신의 길을 지켜나가기 위해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
부모든 누구든 예외는 없다 너의 칼을 들어라...
Ps. 프린세스메이커, 에반게리온과 그렌라간을 제작한 내 어릴적의 추억이자 일본 서브컬처의 거성 가이낙스의 파산 소식을 어제 들었다. 회사는 물론 사람이 아니지만 법으로는 법인이라는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받기도 하는 게 현대 사회니까... 아쉬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