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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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어젯밤은 과장 조금 보태서 열대야를 방불케 했습니다. 5월 치고 서늘했던 날씨도 적응이 안 됐는데, 몇 발짝 가다가 뒤돌아서니 급히 따라오던 뒤 사람이 성큼 다가와 부딪히기 일보 직전인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올해 첫 선풍기를 개시했습니다. 슬슬 여름이라는 거대한 녀석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겠군요.


저는 서울보다 온도가 낮은 경기 북부의 모 지역에서 자라 일종의 추위 부심이 있습니다. 마치 제가 북부대공이라도 된 것 마냥 서울의 추위는 추위도 아니지 라며 코트를 휘날리곤 했죠. 뭐 저기 어디 하얼빈에서 온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반대로 더위엔 그야말로 쥐약입니다. 서울의 아스팔트는 저를 말 그대로 녹입니다. 여름이 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땀이 흘러내려 어지러움을 동반합니다. 도저히 제 의지로는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장마철 습도는 또 어떻습니까? 여기가 어항 속인지, 내가 금붕어인지, 아무리 애써도 쫄딱 젖는 꼴이 물에 빠진 생쥐나 다름없죠. 저번부터 자꾸 쥐 이야기가 나오는데 숨겨진 의도는 없습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미화됩니다. 온통 청량한 초록빛에 반짝이는 태양, 푸른 바다, 선풍기와 수박, 들려오는 매미소리, 여름 방학의 추억과 오랜만에 일을 내려놓고 떠나는 여름휴가 등 상상하면 설레고 얼음을 깨문 듯 시원해지는 기분에 다시 여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겠죠. 지금까지는 희망 편이었습니다.

절망 편을 말해보자면, 온갖 풀과 벌레 그리고 모기, 작열하는 태양, 금방 상해버리는 음식,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들, 어딜 가나 사람이 미어터지는 휴가철, 주야장천 비가 쏟아져 축축한 장마철,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지하철과 버스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절망적인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만, 역시 좋은 기억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 말 뒤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면 그럴싸해진다고 하던데,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5월인데 땀이 줄줄 흘러서 옷이 달라붙었다... 여름이었다.

-모기떼가 끊임없이 윙윙거렸다... 여름이었다.

-어제 만들어둔 음식이 오늘 아침에 쉬어버렸다... 여름이었다.

-아무튼... 여름이었다


이렇게 쓰는 게 아닌 건 저도 잘 압니다. 본래 감성적인 느낌으로 청춘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문구라는 것을요.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루어진 여름에 어울리는 소설을 추천합니다.


<여름과 루비> 박연준

우리가 지닌 유년 시절, 그 시절의 분위기, 뜨거운 여름의 추억을 제공합니다. 마치 뉴진스가 제공한 허위 유년시절로 우리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겪어본 것만 같은 장면들이 그려집니다. 모든 구절이 시적이라 전부 마음에 담고 싶었던 기억이 있네요.


여러분의 다가올 여름이 희망 편이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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