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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집니다. 정확히는 내내 잠이 깨지 않은 기분이에요. 책을 읽다 까무룩 잠에 들기도 하고, 그렇게 눈을 감아도 깊은 곳 까진 도달하지 못해 금세 깨어납니다. 저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을 돕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인데요,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잠이 쏟아진다니. 역설적이네요. 질 좋은 수면을 이루지 못하니 내내 피곤한 거겠지요.
여기저기 머리만 대면 자던 사람이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한 지 수개월 되어갑니다. 그 사이엔 우울증과 사기와 친구의 죽음을 거쳐왔어요. 또 한 번 역설적이게도 큰 일을 연달아 겪고 나니 죽고 사는 문제 이외엔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어졌습니다. '어쩌라고'의 태도를 지니게 되었달까요. 어쩌라고. 이거 한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어쩌라고.
불행 중 다행히도 긍정이 체질인 듯싶습니다. 우울증 약도 오랜 기간 함께하고 있지만 이젠 현 상태로 유지만 해도 살아가겠다 싶고요. 사기로 큰돈을 잃었지만 저를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고, 더 큰 가치를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지만 보내기 전에 한 번은 더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친구도 후회 없다며 떠났기에 좋은 마음으로 빌어주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억지 긍정회로를 돌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하는 게 제 살 길이겠죠. 게다가 놀랍게도 큰 일을 치른 이후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전엔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 따윈 없이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하고 재미없는 일상이 서럽기만 했는데,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미래까지 연결이 되더라고요. 예를 들면 현재하고 있는 모델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이나, 이 일들이 이후에도 제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염두에 두는 일 같은 거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의 미래에 대한 꿈이라. 이 또한 역설적이군요.
모순적인 일상에서 긍정의 힘을 다시 믿어봅니다. 믿음이란 타인에게 주는 믿음보다 나 자신에게 주는 게 더 어려운 일이죠. 정신승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때로는 그저 피곤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만 해도 작은 승리처럼 느껴집니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고요한 새벽에는 평소 밀어두었던 생각들이 물밀듯 밀려오죠. 그 시간이 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요. 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혹시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