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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피의 법칙 같은 날이 있죠. 어제는 아침부터 커피를 쏟았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제 징크스와 더불어 밥집이 사라졌고, 그래서 그냥 옆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어떤 분이 실수로 우동 국물을 제게 쏟았습니다. 그때까지 아 오늘 참 일진 사납다 싶었어요.
그런데 우동 국물을 쏟은 분이 제게 연거푸 사과를 하시더군요. 사실 쏟은 수준도 아니고 그분이 떨군 우동 그릇에 국물이 튀어올라 하필 옆에 있던 제게 튀었을 뿐이었죠.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세탁, 옷 비용이라도 물어주겠다고 계좌번호를 요청하더라고요. 혹시나 화상을 입었으면 합의금도 주겠다면서요.
순간 고민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 사람 착한 사람 같은데 잘 못 걸렸으면 돈 뜯겼겠다 생각했습니다. 당시엔 저도 좀 기분이 언짢았지만 고개를 그릇에 박고 자괴감에 빠진 표정으로 식사를 하시는 그분을 보니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가는 길에도 와서 한번 더 사과를 하기에 괜찮다고 하며 돌려보냈죠.
옷에 튄 우동 국물은 이미 밥을 먹는 동안 다 말랐고 뜨거웠다는 기억도 사실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이 더 컸던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이 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갔거든요.
오히려 그 우동 국물 사건이 제게는 하루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나보다 더 속상해하는 사람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분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니 제 마음도 누그러들더라고요. 머피의 법칙이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실은 다른 사람의 선의를 확인하는 날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불운'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다른 관점에서의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커피를 쏟은 것도, 단골 식당이 없어진 것도 사실 그냥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인데, 연달아 겹치니까 마치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거죠.
어쩌면 머피의 법칙이란 것도 결국 내가 어떤 렌즈로 하루를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상황도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고 보면 불운의 연속이 되지만, 보는 방향을 조금만 전환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더라고요.
이젠 일이 꼬일 때마다 잠깐 멈춰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다른 관점은 없을까, 이 상황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죠.
머피의 법칙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