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재탐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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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는 심각한 길치입니다. 지금까지 잘 가던 길을 반대로 돌아서면 처음 보는 길이 눈앞에 나타나요. 제 눈엔 그렇게 보입니다.


초등학생 때 대형마트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2층에서 계산하는 엄마아빠에게 3층 책 코너에 가서 있겠다고 말하고 홀로 신나서 뛰어갔는데, 도저히 책 코너를 못 찾겠더라고요. 아무리 애를 써도 같은 자리만 뱅뱅 돌 뿐 나타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에어컨코너였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저 때문에 엄마아빠는 미아 방송까지 했습니다. 미아 방송을 듣고 있는 저는 더 미칠 노릇이었죠. 나도 거기로 가고싶어..


어른이 된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GPS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끔 GPS조차 절 속여요. "200미터 직진 후 우회전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저는 200미터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감이 안 옵니다. 그래서 멀쩡한 골목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헤매다가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무정한 안내를 듣게 되죠.


또 당황스러운 건 지하철역에서 나올 때입니다. 1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5번 출구로 나가면, 제게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분명 같은 역인데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게 낯설어져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다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올바른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어느 출구로 들어왔는지도 까먹거든요.


친구들은 제가 길을 못 찾는 것을 신기해하고, 엄마는 아직도 초등학생 때 이야길 꺼내며 답답해 하십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진지한 문제예요. 새로운 곳에 가는 건 마치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것 같아서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래도 저 나름대로 길치 생존법을 터득하긴 했어요. 일단 랜드마크를 기억해둡니다. 큰 건물이나 특이한 간판, 편의점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새겨두죠. 그리고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는 일부러 일찍 길을 나서서 미리 가봐요. 리허설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실제로는 또 길을 잃는 게 함정이죠.


사실 가끔은 길치인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저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하지만 길을 잃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예쁜 카페나 숨겨진 골목길들. 그런 것들을 보면 '아, 이것도 나쁘지 않네' 싶어져요.


저는 길치로서 많은 모험을 했습니다. 물론 그 모험이 항상 즐거웠던 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제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고 흥미진진했다고 봅니다. 길을 잃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하나씩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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