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01
아침 일찍부터 마트에서 장을 봤다. 어제는 쿰쿰한 숙소에서 잤고 오늘은 더 좋은 숙소로 이동을 한다. 하지만 역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진다. 아무래도 같은 가격이기에 역과 가까운 숙소는 컨디션이 덜 좋고, 거리가 멀어지면 더 좋아지는가 보다.
시드니 중심가의 백패커스에서 2-30분 거리에 있는 스트라스필드로 온 이유는 백패커스의 자리가 없어서도였지만, 이 단기방의 가격이 굉장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6명이서 함께 지냈던 백패커스가 1박당 30-40달러였는데 옮겨온 숙소는 1박당 2인 기준 80달러다. 한국인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니 마음도 더 편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재료를 조금 더 마음 편히 구비해 놓을 수 있다는 점도 있다. 백패커스도 냉장고는 있었지만 나의 친구 주디는 엊그저께 우유를 도둑맞았다.
친구 쏘야가 체크아웃 전 나에게 갈비양념을 선물로 줬다. 마침 나는 한인 셰어하우스로 옮기니 갈비찜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냉큼 받아왔다. 아침에 이동하고 진이 빠져서 고기 핏물을 빼놓고 한숨 잤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의 휴식인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호주에 오고 일주일이 넘게 휴식 없이 계속 달렸다.
한국식 갈빗살은 마트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등갈비살을 샀다. 따로 복잡할 것 없이 갈빗살에 감자, 당근, 양파, 돼지갈비 양념만 넣었다. 보글보글 끓이고 보니 온 집안에 달큰한 갈비 냄새가 진동을 한다.
누린내가 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갈비는 성공적이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숙소 매니저님께 전화가 왔다. 어제 다른 숙소로 갔다가 이쪽으로 오는 수고를 하게 해서 미안하다 하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만두를 빚어놨으니 먹으라고 알려주셨다. 닭가슴살로 만든 만두였다.
며칠간 이동 대장정을 겪고 빨래가 더미로 쌓여있다. 빨래를 돌리는 김에 오랜만에 운동을 나섰다. 공원에 이런 대형 체스말과 보드가 있다. 시드니의 어딜가나 아직 겪어보지 못한 곳이라, 새로운 곳에 발도장을 찍으면 이런 이색적인 풍경을 만난다.
공기가 어쩜 이렇게 산뜻한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운동할 때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는데, 뛰는 내내 땀 한 방울을 안 흘렸다. 습하지 않아서 그런지 숨도 안 찬다. 굉장히 쾌적한 기분으로 러닝을 뛰었다.
나는 5킬로를 채워서 뛰는 강박이 있는데, 뛰는 내 귀 옆으로 새들이 자꾸 날아다녀서 러닝을 중단했다. 귀 바로 옆으로 새들이 날아다닌다.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릴 정도다. 내가 조롱을 당하고 있는 건가? 호주의 새들은 이렇게 나쁜 마음들을 품고 사나? 했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호주의 새들은 인간들을 그리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높이가 굉장히 낮다. 굳이 힘들여 높은 곳을 날아다닐 필요가 없는 거다. 새들은 나를 놀리는 게 아니었고 그저 자기들의 길을 날아가는 중이었다. 방해꾼은 나였다. 해치는 마음이 없다면 동물들도 그 마음에 적응해서 산다.
주디의 성화에 못 이겨 퍼스 행 비행기를 끊었다. 조금 더 천천히 예약해도 될 것 같다 생각했지만 주디는 애가 탄다. 주디와 함께 가는 게 아니라 나만 가는 건데 그렇다. 그녀의 급한 마음에 나는 조금 속아보기로 한다.
이 집은 놀랍게도 사람이 정말 많이 지내는 집이었다. 우리는 하도 조용해서 우리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방이 7개라 한다. 내가 갈비를 만들었다고 하니 너무 냄새나는 건 안된다고 하셨는데, 갈비를 보시더니 이 정도는 또 괜찮다고 하신다. 셰어하우스에 지내면서 눈치 주는 일이 많다고 하던데 혹시 이곳도 그런 건가?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매니저님은 우리가 내내 집 안에 있는 동안 한 번 얼굴을 뵙기 어려웠다. 그 전에도 연락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까스로 몇 차례 전화만 나눴던 매니저님을 만나게 된 건 늦은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였다. 하루종일 다른 일을 하시다가 그제야 퇴근하셨다.
실제로 매니저님을 만나고 나는 깜짝 놀랐다. 4-50대 아주머니일 거라 생각했던 매니저님은 70에 가까운 할머니였다. 굉장히 딴딴할 것 같은 목소리를 지니셨는데 작고 아담한 소녀가 걸어 들어왔다. 겉으로 봤을 때는 목소리와 비슷한 나잇대로 보인다. 하루 종일 바깥에 있다가 집에 돌아온 매니저님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전화를 받고 문자에 답장을 보내느라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며 왜 연락이 어려웠는지 알게 되었는데, 매니저님은 하루종일 다른 직업으로 일을 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쉐어하우스를 관리했던 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대화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고, 이 만남 또한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다. 내 인생의 귀인을 나는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호주에서의 삶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곳은 방이 많은데도 셰어하우스 매니저님은 거실에 커튼을 치고 살고 계신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셰어하우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을 보러 다녔던 주디와 지나 말로는 방은 세놓고 집주인은 가라지(창고)나 거실 소파에서 지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내 집을 좀처럼 나누는 일 없는 우리나라 문화와는 많이 달라 생소하다. 그리고 셰어하우스 매니저님은 시드니의 부촌에 대형 저택을 가지고 계신데 이곳에서 이렇게 지내고 계신 거라 했다. 그러면 내 머리 위에는 물음표가 계속 생겨난다.
뭘까? 도대체 뭘까? 이 질문은 어리석은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해답을 그리 멀지 않아 듣게 된다. 그것도 내 마음을 뒤흔드는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