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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8. 2024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쉬운 방법은

바로,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

내 발리 여행의 마지막 장소는 처음 시작했던 곳, 꾸따였다. 어딜 가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서핑 하나만 보고 공항과 가까운 꾸따에서 일주일을 묵었다. 그리고 그 뒤로 우붓, 길리이이이이이를 거쳐 다시 출국을 앞두고 꾸따로 돌아왔다.


꾸따에 돌아가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방탈출과 서핑이었다. 사실 길리에서 스노클링과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나는 서핑을 별로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말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서핑을 꼭 한 번 더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지난번 꾸따에서 내 서핑선생님, 로이와 그 가족들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로이에게 한 번 더 고객이 되어주고 싶었다.


(지난번 서핑 후기)

https://brunch.co.kr/@zoey27/50


그런데 안타깝게도 꾸따에 도착했을 때 내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길리를 떠나기 직전에 고막이 터져도 된다는 각오로 무리해서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몸살에 코피까지 났다. 꾸따로 가는 6시간 동안 거의 끙끙 앓았다. 그렇지만 이제 또 꾸따의 석양을 볼 수 있는 날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꾸역꾸역 해변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고 로이를 만나서 인사하고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한 달 만에 만난 로이네 가족들 중에는 내가 모르는 얼굴이 있었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였는데,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발리에 온 지 이제 4일 정도 된 로이네 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어도 한국어도 못한다는 그 친구, 아리는 원래도 조용한 것 같은데 나 때문에 우리가 영어로 대화했기 때문에 더더욱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무척 미안하고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로이한테 서핑을 한 번 더 하고 싶긴 한데 몸살이 나서 두 시간은 힘들 것 같고, 한 시간만 레슨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로이가 제안했다. “너 혹시 아리한테 수업 들어볼래?” 엥?


로이의 제안은 이랬다. 아리는 이제 막 서핑을 배우고 있고, 영어도 한국어도 못해서 누굴 가르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아리도 여기서 서핑 강습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온 거니까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리 같은 신참한테 고객을 맡기긴 힘들다. 그러니, 혹시 아리의 첫 번째 고객이 되어주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번역기로 ‘혹시 나를 실험용 쥐로 쓰겠다는 거야?’라고 물어보았다가, 어떻게 그렇게 표현할 수 있냐고 타박을 맞았다.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아마 로이는 몰랐을 거다. 그 제안이 얼마나 나한테 솔깃했는지!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몸살 기운에 제대로 앓았지만, 늦은 오후가 되자 좀 상태가 괜찮아졌다. 내일 점심 비행기로 발리를 떠나기 때문에 서핑 레슨을 받으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만약 로이한테 레슨 받는 거였으면 그냥 취소했을 거였다. 이미 받아봤으니까. 그런데 아리의 첫 번째 고객이 되는 건 이번이 유일한 기회였다. 사실 나는 서핑실력을 향상시키는 것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서핑 레슨을 받으려던 건 그냥 재미, 체험, 추억, 그리고 로이네 매출  올려주기.. 정도를 위한 거였다. 그런 내게 재밌고 추억이 되면서 아리에게 도움도 되는 이번 제안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첫 번째가 되기란 쉽지 않다. 아리의 서핑 강사 인생을 내가 열어줄 수 있다면 참 It's my pleasure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꾸역꾸역 또 해변으로 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3인 레슨이 시작되었다. 로이가 아리의 옆에 붙어있으면서 나를 가르치는 방법들을 설명해 주고 한 번씩 보드를 밀어주도록 시켰다. 서핑 레슨을 받으면 강사가 보드를 밀어주고, 타이밍에 맞게 외치면, 내가 그에 맞춰서 일어나는 일종의 팀플레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리로서는 그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엎드려”,“준비”, “일어나!” 등의 처음 배운 한국말에 맞춰서 내가 움직이니까 무척 재밌었나 보다. 잔뜩 신이 난 게 느껴졌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아리가 “엎드려!”하면 나도 “엎드려!”하면서 장단을 맞춰줬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보다 내가 서핑을 되게 잘했다. 거의 밀어주는 족족 해변 끝까지 잘 탔다. 그럼 또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셋 다 즐거웠다. 로이가 나한테 말했다. “이게 내가 원했던 거야. 우리가 다 같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렇게 아름답기로 유명한 꾸따의 석양을 배경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내가 발리에서 보는 마지막 석양이었다. 내 여행의 마무리로 정말 완벽한 경험을 한 것 같아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로이네 가족들은 나보고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 해줬다. 내 재미와 의미를 위한 행동이었는데, 사실 내가 딱히 손해 본 것도 없는데 좋은 사람으로 봐줘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니면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이라서 나도 모르게 착하게 행동하는 건가….


길리 여행을 시작하면서 만난 한 가이드가 자기 인생의 모토가 ‘카르마’라고 했다. 남을 도우면 그 덕이 자신에게 나중에 돌아온다며, 그래서 자기는 남을 돕는 걸 기껍게 여긴다고 했다. 나는 사실 기껍게 남을 돕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고, 내가 큰 손해보지 않는 정도에서만 타인을 위하는 편이다. 기가 막히게 내가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안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처럼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얼떨떨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도우면 그 사람의 반응을 보고 바로 이렇게 행복해지는 것도 카르마 아닐까? 결국 나의 이타심은 다시 나에게로 향하게 되니까. 남을 기분 좋게 만들 때마다 나라는 사람이 더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역시 나는 타인의 삶에 영향 미치고,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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