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캐리루, 『Bad Blood (배드 블러드)』
평소 제약산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뉴스에서 한 번쯤은 '코오롱 생명과학'과 '인보사'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2019년 5월 FDA에서 코오롱 티슈진사의 무릎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레이주'의 임상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한국에서도 이어 식약처에서 인보사의 허가를 취소하면서 세계 최초 관절염 치료제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인보사'가 막을 내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인보사에 대해서 뉴스 기사를 찾아 읽어보면서 가장 이해하기 쉽게 써놓은 기사가 있어 그 글을 첨부한다. '오렌지 주스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일부 감귤 주스가 섞여있었다'
인보사는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하여 관절에 직접 주사하는 주사제로 연골세포(1액)와 연골세포가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전달체(2액)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전달체인 2액이 연골에서 유래된 세포가 아닌 신장에서 유래된 세포로 확인되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28138
이 사건의 가장 큰 핵심은 코오롱사가 자료가 잘못되어 있는 것을 알고도 허위 자료를 식약처에 제출하여 허가를 받았는가 하는 여부이다. 일본 독점계약을 진행했던 미쓰비시다나베사에서는 코오롱사가 2017년 3월부터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해당 연도 말에 계약을 파기했다. 하지만, 코오롱 사는 허위제출이 아닌 자신들도 몰랐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 윤리의식은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특히나 제약산업에서는 사람의 건강과 생활 더 나아가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강조된다. 단순히 코오롱사가 허위자료를 제출했는가의 문제가 아닌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는가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이다.
인보사 사건을 보면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기업가치 10조 원의 'Theranos (테라노스)'와 여성창업가 'Elizabeth Homes (엘리자베스 홈즈)'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수많은 회사 중 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회사를 '유니콘'이라 부른다. 수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유니콘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유니콘이라는 말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빛을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Bad Blood (배드 블러드)』는 실리콘 밸리의 수많은 기업 속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Theranos (테라노스)의 시작과 끝을 담은 책이다. Theranos (테라노스)는 Elizabeth Homes (엘리자베스 홈즈)가 설립한 의료용 진단기기 개발 스타트업 회사로 단 몇 방울의 혈액으로 수백 가지의 검사를 한 번에 실시할 수 있다고 소개되었다.
처음 테라노스의 기술에 대해 들었을 때에 혈액을 정맥에서 채혈하지 않고 몇 방울의 피로 검사하는 것이 실리콘밸리를 흔들 만큼 대단한 기술 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업에 거대한 돈을 투자한 사람들이 '미래의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대단한 기술'이라 입을 모으는 것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랜 병원생활로 인해 더 이상 채혈할 혈관이 남아있지 않는 말기 암환자나 고령의 환자들에게는 채혈하는 그 순간이 엄청난 고통이다. 그들에게 이 기술은 기적과도 같았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개발되지 않은 기기를 마치 있는 것처럼 소개하며 그것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들 사람들의 희망을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짓밟아버렸다. 또한 실제로 홈즈의 거짓말에 속아 생활 속에 테라노스가 이용되면서 부정확한 검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모든 기업이 다 저마다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만, 특히나 제약이나 의료기기 분야는 그 가치가 사람의 생명과 연관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Bad Blood (배드 블러드)』에 그려진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사람에게 분노하는 이유이다.
가장 먼저는 엘리자베스 홈즈, 자신에게 있다. 그녀 자기 자신을 브랜드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레그는 엘리자베스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깊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그것이 가장된 목소리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레그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녀의 행동에는 일정한 논리가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압도적으로 남성의 세계였다. 벤처 투자가는 모두 남자였고, 저명한 여성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름을 떠올리려 해도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게 집착하여 옷도 스티브 잡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검은색 목폴라를 입고 테라노스 기기도 애플의 디자인을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또한, 애플이 밟았던 발자취를 밟기 위해 광고 회사도 회사의 위치도 옮겨갔다. 그녀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기 이전부터 이미 성공한 사업가 흉내를 내며 자신을 꾸몄다. 『Bad Blood (배드 블러드)』의 많은 부분에 그녀가 프레젠테이션이나 미팅을 할 때마다 신뢰감이나 믿음을 주었다는 표현보다는 일부러 만든 낮은 목소리와 이미지로 사람들을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만들었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자로 이름을 알린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엘리자베스 홈즈는 엄청난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투자자들부터 기업가까지 남자가 절대적인 곳에서 스탠퍼드를 중퇴한 젊은 여성 사업가는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들이는 방식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기업가라기보다는 영화배우처럼 행동했으며, 대중의 사랑을 한껏 즐겼다. 그녀는 매주 새로운 미디어와 인터뷰를 하거나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투자 속에 홈즈는 점점 더 자신을 브랜드화시키는 데에 집중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의 정확성과 품질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원했다.
그리고 이 거대 사기극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투자금액이 이토록 거대하게 늘어나고 큰 제약회사들이 줄지어 계약을 했던 큰 이유중 하나가 기업 간의 경쟁심리라는 것이다. '내가 놓친 이 사업이 나중에 대박이 나면 어떡하지?' '이 사업을 다른 경쟁사가 가져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테라노스를 테라노스가 가지고 있었던 실제보다 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두려움에 투자의 정당성을 부여했고, 간절히 자신이 가진 복권이 당첨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의 성공 스토리도, 테라노스와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거대 '유니콘'이었던 택시 애플리케이션 'Uber(우버)'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Spotify(스포티파이)'의 성장을 보며 테라노스가 엄청난 기회로 여겨졌던 것이다.
두 번째로 테라노스의 현재 상황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직원들을 통제했다.
『Bad Blood (배드 블러드)』에 나와 있는 테라노스의 경영 방식, 회사 운영을 살펴보면 이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테라노스는 겉으로는 엘리자베스 홈즈의 얼굴을 빌려 미래의 엄청난 혁신을 가져올 의료기기 회사로 비쳤지만 그 안은 모래 위에 쌓은 모래성 같이 위태로웠다.
애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 기술이 이미 완성된 상태고, 환자에게 사용하려는 단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에런이 그녀에게 아직 테라노스의 기술 개발은 진행 단계라고 설명한 것이다. (중략) 불완전한 의료 기기를 실험하기 위해 환자들을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애나를 괴롭혔다.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회사의 부서 간 사람 간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회사 밖으로는 보안상의 이유로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정보를 내보내기를 꺼려하므로 조금 더 보안에 극성스러운 회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내부에서 서로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정보를 공유해야 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테라노스는 모든 일이 엘리자베스 홈즈와 그의 애인이자 이사진으로 엄청난 권력을 지녔던 '서니'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직원들은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홍보하고 다니는 테라노스의 실체조차 보지 못했고 실제 연구하고 개발하는 직원조차 그것이 얼마나 개발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테라노스의 제품 개발보다는 존재 자체에 수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테라노스가 규정 전문가를 고용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테라노스는 세상 물정과 담쌓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었다. 보건 산업은 나라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받는 분야이고, 환자의 목숨이 걸린 일이나 당연히 그래야 했다.
테라노스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사람들이 투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회사 안에는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실험하는 실험실에는 관련 경력이나 경험을 가진 직원이 없었다. 권한이 없는 직원이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으며, 투자받은 돈의 대부분은 제품의 개발이 아닌 광고에 쓰였다.
광고비 이외에도 테라노스에서 가장 많이 돈이 쓰인 곳은 제품 개발이 아닌 변호사를 선임비로 보인다. 회사 내부의 비밀이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회사의 정체가 조금씩 세상에 알려질 때 엘리자베스 홈즈는 거대한 변호사 군단과 로펌의 힘으로 퇴사한 직원들과 이 글을 써낸 기자를 협박했다. 그녀는 테라노스의 존재를 지키기 위하며 무슨 일이든지 행할 것 만 같았다.
그녀의 도덕성과 사회성에 대해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어떠한 것이 정답인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의 생명 앞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목숨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자신의 몸을 바쳐 기술을 개발하고, 수술을 하며, 환자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배드 블러드 (Bad Blood)』를 보면서 의료기기/제약 산업이 마치 스마트폰 어플이나 핸드폰처럼 단순히 하나의 '상품'으로만 가치를 지니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테라노스의 사례를 보며 '유니콘'이 되어 실제 엄청난 성공을 이룬 기업과 테라노스의 경영방향 등을 살펴볼 때 확연하게 차이가 보인다. 그리고 회사를 이끌어 갈 때 어떠한 방향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제약 산업과 같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삶을 위한 '상품'이라면 그 모든 것에 앞서 '윤리의식'과 '도덕성'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