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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닥 김훈 Jan 11. 2022

<바램> 단편

문득 떠오르는 언어가 있다. 그것이 무엇을 말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머리에서 떠올라 잠들지 않는다.


젠장...

그것 바로 "너"다.


너는 어디에 있을까?

실종이라는 생각도 가끔은 한다. 실종이면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고, 나는 너를 찾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는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스스로 떠난 것이라는 부정하고 싶은 믿음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떠나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같이 있으면 즐거워했지만 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눈 빛은 어딘가를 향한 체 멍해져 보였다. 난, 너가 그렇게 건조해져 가는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정하며 떠나 보낼 수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 필요하고 부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떠한 너의 표정을 읽어도 절대로  밖으로 소리를 놓지 않았다. 말이라는 생각이 언어가 되어, 소리로 귓가를 흔들면 결국 현실이 되고  것이다.


물론, 넌 말라 가겠지...

표현하지 않겠지만, 아니 듣지 않겠지만 결국 말라 갈 것이다.

하루.. 하루...


그래도  버틸 것이라 맹세했다. 너를  앞에   있고 함께라는 영역이 울타리   있기에 함구할 것이다. 너의 말라감에  마음이 문드러진다해도  문드러짐의 망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절대 함구할 것이다.


문득 "너"인 것은 너의 존재가 나에게는 사고와 같기 때문이다.


처음처럼 너가 없는 삶은 평온했다. 늘상의 아침에 게으른 하루가 이어지고 별다른 의욕 없이 나의 하루는 하루가 되고 이틀이 되고 사실 그 날짜가 며칠이건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나는 게으르지만 평범하며 미련하지만 평온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나에겐 평화로운 일상이 주어져 있었다.


하지만 "너"의 사고는


게으름을 부지런으로 미련함을 성실함으로 채웠으며, 무엇보다 타인들의 시선에 부단히 좋은 모습을 남기려 했다. 난 과감히 비난받아 마땅했던 평화로운 일상을 포기하고, 너를 위해 하지 않던 성실한 감정으로 노력이라는 것을 했다.


이유는 "너"라는 존재와의 대화와 생활 그리고 우리라는 함몰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역시 하지만,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 찾아온 "너의 사고" ""에게는 가식적인 평온 같았다. 너의 미소는 늘상 대화의 5분을 넘기지 못했고 멍했다. 물론,  그럴수록  많은 수다와 행동을 늘어 놓으며 너의 환심을 사려했다. 때로는 나의 노력이 멍해질 ... 나는 사람의 모습을 포기하며, 폭력이라는 약에 취해가했다.


결국... 난 폭력적인.....

싫었다.

나의 일상은 폭력적인 모습이 뛰어 나올때 마다 지옥이 되었다.


지옥은 멀리해야 한다. 아무도 지옥에서 행복을 말할 수 없다. 아무리 그게 사랑이라 표현해도 그것은 지옥일 뿐이다. 결국 난 , 너로 인해 "지옥"을 열고 만 것이다. 너의 실종을 받아 들이는 이유이며 실종임에도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마도 실종된 너는 지금쯤 더 이상의 멍한 눈빛은 없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느낀 '너'에 대한 그 사고와 같은 호기심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살고 있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너"를 나는 결코 찾지 않는다. 물론 나의 게을렀던 일상은 이제는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실종 당항체 하루하루 생사를 걱정하며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지옥이 너무 커 왜 지옥으로 내 일상이 변했는지도 사실 모르겠다. 이제 나에게는 '너'보다 '지옥'이 만연하다.


그래..

이제 무의미한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불행한 사람일 뿐이다.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기 우해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러 가고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통해 벌어진 돈을 가지고 먹고, 마시고 하면서 지옥스러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너는 이미 망각된 것이다.


다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실종"으로 불행해져 버린 성실한 사람의 탈을 쓰며 살고 있다. 마치 지금의 불행도 오로지 너의 실종에 귀결된 것처럼 오늘도 바둥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며 건전하고 성실한 그러나 갑작스런 '실종'으로 불행한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일심히...

부지런히...


..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듯 '너' 임에도 불구하고 '사고'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태하며 게으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너무나 평온했던 그 시절로 말이다. 어떠면 나의 바램은 정말, 정말 미안하게도 실종된 '너'의 부고가 아닐까...


시선으로부터 다시 정신줄을 놓아도 타당한 것 같은 순간이 그것 외에는 없는 것 같다.


문득 떠오른 '너'라는 말들에게 비천하고 죄악스런 바램이 있다.

그건 '너'의 부고다.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난 다시 사고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그것이 '너'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의 비천한 바램이다.

부고하기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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