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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닥 김훈 Jun 13. 2022

<글개미>단편

개미들이 허기가 졌다. 배고픔에 개미들이 굴을 나와 먹이를 찾아다닌다. 허기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무엇이든 돌진하게 만든다. 이전에 없던 용기와 과감함을 허기는 허락하며 그것이 무엇이든 달려들게 한다. 


설령 그것이 자신들을 언제나 죽일 수 있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건장한 사마귀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서 있어도 허기짐에 나약해진 개미는 주저하지 않는다. 그저 달려들고 물고 가능하다고 믿는 모든 것을 향하야 개미는 사마귀에게 달려든다. 물론 건장한 사마귀의 칼날과 같은 앞발과 튼튼한 턱을 소유한 이빨로 인해 머리와 몸을 분리되고 갈퀴 갈퀴 찢겨지고 만다. 하지만 그 다음 개미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미가 죽던 말던 허기에 지쳐 먹을 것을 탐욕하는 배고픈 아이의 젖 빨림과 같다. 물론 다음 개미 역시 사마귀의 두터운 발아래 깔리고 모든 것은 짖니겨지고 만다. 


하지만 어떠랴 다음 개미와 그다음 개미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돌진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설령 좀전 까지 먹이를 함께 찾던 혈육이건 뭐건 딩둘거리는 섞은 살덩이를 밟고 앞으로 돌진하며 건장한 사마귀의 탄탄한 다리를 물어본다. 턱이 나가고 이빨이 아스라져도 허기라는 배고픔은 귀신처럼 망령처럼 스스로의 턱관절을 부러뜨리면서도 입을 오물거리게 만든다. 다만 아직 사마귀는 건장하고 개미들은 허기에 미친 귀신들일뿐 힘이 없다. 


하지만 개미들은 계속해서 나온다. 앞에게 쓰러지고 뭉개지면 그 다음이 시체를 넘어 쓰러진 동려의 찢어진 팔 다리를 밟고 다시 전진하면서 사마귀의 눈을 물고, 다리를 물고, 날개를 물고 계속해서 달려든다. 


아무리 건장한 사마귀라 할지라도 단 몇 분에 수십 마리의 개미들을 죽여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해도 결국 허기라는 귀신에 잠식되고 살을 발려나가기 시작한다. 앞에 쌓여 있는 개미들의 시체들을 발판삼아 더 많은 개미들이 결국 사마귀를 물어뜯고 씹고 삼키면서 허기에 배를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보다 큰 사마귀라 할지라도 이 큰 무리의 개미들 허기를 달랠 수는 없다. 다시 허기는 밀물처럼 덮치기 시작하며 개미들 서로에게 달려든다. 어미는 새끼를 새끼는 다른 새끼를 강한 개미는 약한 개미를 물어뜯기 시작한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허기는 채울 수 없다. 


문득 소 한 마리가 서로를 물고 있는 개미들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황소.

저 소를 먹을 수만 있다면 개미 무리는 모두 배부를 수 있으며, 허기는 사라질 것이다. 

저 소를 먹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우리는 서로를 먹어치우는 반역을 범하지 않아도 된다.

저 소를 먹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료의 다리 하나를 물고 있던 개미는 그 다리를 네 벹으며, 눈시울을 접고 황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다음 개미도, 그다음 개미도 그들은 황소의 발걸음 하나에도 다 죽을 수 있음을 망각한 체 달리기 시작했다. 시꺼먼 땅바닥 구름들이 몰려와 황소의 다리를 잠식했다.


황소는 갑작스런 개미들의 달려듬에 놀라 이리저리 뛰기 시작했고, 황소의 발걸음 한 번에 수많은 개미들이 죽어나갔다. 허기짐을 해치우기 위해 스스로를 죽여가면서 개미들은 황소에게 달려들었다. 다리가 짖니겨지고 머리가 박살 나고 더듬이가 뜯어지고 개미들은 형체를 알 수 없게 눌려 터졌다. 


황소의 거대한 발과 움직임은 개미들의 죽음을 사방에 펼쳐 뜨렸고 허기는 개미들 스스로를 사망게 했다. 


죽고 또 죽고 또 죽고


그러나 개미들은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겨우 조금 맛본 사마귀의 티끌 같은 한 조각으로는 허기를 채울 수 없었으며, 오히려 허기의 간절함과 죽음의 괴로움을 더 크게 느끼게 했을 뿐이었다. 결국 황소가 어떠한 힘을 가졌던, 개미들 그들이 스스로 어떻게 되든 그들은 생각할 수 없었으며,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허기의 고귀한 명령에 수 백 아니 수천 마리의 개미들 모두는 저항할 수 없었고 철저한 복종으로 황소를 향해 나갔으며 죽음은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여분의 것이 아니었다. 


이미 무리의 절반에 해당하는 개미들이 황소의 발걸음에 시체가 되어 그들이 밟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이 황소의 다리를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남아있는 턱관절의 힘을 이용하여 두터운 황소의 가죽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황소는 발버둥을 쳤으며, 나무에 문지르며 개미들을 떨구어내고 뭉그러뜨리며 죽여나갔다. 하지만 개미는 죽어나간 동료의 흔적을 다시 물어뜯고 물어뜯고.. 두터운 소가죽을 빨갔게 만들며 핏물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소 피 속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으며 소의 탄탄한 살결을 물어뜯었다. 


고통이 충혈되는 눈알 같은 소는 달리기 시작한다. 풀숲을 지나 웅덩이를 향해 소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고 개미는 미친 듯이 허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사라져 가는 동료들을 망각하며 물어뜯고 물어뜯고 자신보다 수 백배 아니 수천 배의 황소를 포식한다.


웅덩이를 찾지 못한 소는 고통의 목소리를 천지 가득 채우며 온몸을 땅바닥에 비벼된다. 비비고 웅크리고 다시 나무와 부딪히며 황소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흔적을 사방에 떨 춘다. 


황소의 거친 호흡이 서서히 평온을 찾아가자, 개미들도 귀신같던 허기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개미들은 황소의 다리 한쪽을 파먹어 들어가며 살덩이를 찢어나갔다. 하지만 황소의 살덩이가 찢어나간 만큼 개미들은 죽고 사라져 버렸다. 


살아남은 개미들은 포만을 통해 황소 다리 일부를 포식하며 살덩이를 뱃속에 넣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개미들은 이미 죽고 없었다. 포만의 개미들은 지체 널브러진 황소를 뒤로하고 스스로를 보기 시작했다. 이미 여왕개미는 황소의 발아래 죽고 없었으며 그 이상의 귀족 개미들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미천한 일개미들만이 남아 아주 작은 집단이 되어 있었다. 

여왕도 없고, 귀족도 없는 개미집단은 다른 여왕을 찾아야 하지만, 이미 너무나 작은 집단이기에 어디에서도 여왕개미를 탈취할 힘은 없었다. 


황소는 한쪽 다리를 절룩이며 다시 자기가 있던 자리로 사라져 버리고 개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 남겨져 버렸다. 


스스로의 허기로 그들은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을 망각한 체 귀신이 되어 물어뜯기만 한 것이다. 개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다시 닥쳐올지 모를 허기를 생각하며, 뭐든 움직여야 한다는 본능이 꿈틀거릴 뿐이었다. 


"움직여!" 


다시 허기가 찾아오면 우리는 더 이상, 소비할 수 있는 죽음이 없어.. 모잘라..

빨리 여왕을 찾아와야 해.. 

찾아와야 해..


설령 우리가 다 죽더라도..


"움직여!"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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