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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물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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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pr 14. 2021

튤립으로 맞이하는 봄

튤립 연대기 (feat. 히아신스)

(스크롤을 내릴수록 아름다운 사진이 나옵니다^^)


매년 겨울이면 튤립 구근을 판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1월이 넘도록 왕마늘처럼 생긴 튤립 구근 판매가 이어진다. 

튤립 구근은 추위를 겪어야 꽃이 핀다. 때문에 구근을 사서 노지에 심으면 겨울에 알아서 저온처리가 되고 봄에 싹이 나오고 꽃대가 올라온다. 

저온처리가 된 구근을 사면 (보통 실내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저온처리된 구근을 산다) 베란다에 심고 기다리면 빠르면 1월부터 꽃을 보게 된다. 혹시 저온처리가 안 된 구근을 샀다면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었다가 봄에 심으면 된다. 


튤립 34알과 히아신스 5알


나도 11월 말에 튤립 구근과 히아신스 구근을 샀다. 

저온처리 여부를 고심하다가 저온처리가 된 구근을 샀다. 나에게는 옥상이 있지만, 땅이 아닌 화분의 흙 속에서는 구근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다고 실내에 심자니, 겨울에 20도가 넘는 실내 온도가 튤립의 성장에는 너무 높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갈등을 하느라고 냉장고에 넣어둔 구근을 2월 16일이 되어서야 꺼내서 심었다. 

베란다가 없는 우리 집. 여전히 밖은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실내는 20도가 넘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중간지대인 계단에 옥상의 화분을 들고 들어와 두었는데 이곳은 기온이 11도 정도였다. 단지 문제는 이곳은 해가 잘 안 든다는 곳이다. 다행히 창문은 있어서 간혹 바람을 쐬어줄 순 있지만!!!!


구근은 곰팡이가 곧잘 생겨서 구근 껍질도 까고 소독도 하고 심어야 하지만, 모든 것이 귀찮아진 나는 햇볕에 녹은 축축한 흙에 알을 하나하나 넣었다. 



3월 7일.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구근 모두 움트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축축한 흙도 문제고, 통풍이 안 되는 것 때문인지, 몇 개의 구근에 푸른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밖으로 내놓았고, 봄의 햇빛과 바람을 맞고 싹이 쑥쑥 자라기 시작했다. 3월 16일


히아신스는 벌써 꽃을 만들기 시작했고, 해를 받아서 붉게 물든 튤립의 잎은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냈다.


해를 보고 자라는 식물이 모두 그러하듯이, 단단하고 짱짱하게 자랐다. 

식물의 성장은 언제나 놀랍다. 

싹이 난지 열흘 만에 꽃 봉오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질이 얼마나 급하면 잎 석 장을 만들자마자 꽃봉오리가 보인다!
3월 19일. 아직 이렇게 키가 작은데, 벌써 이렇게 꽃봉오리가 나오면 어떡하나...


3월 19일 밤부터 20일 오전까지는 비가 제법 왔다. 아직 꽃이 핀 것이 아니라서 비를 맞게 내버려두었는데, 비를 맞은 튤립은 싱그러워 보였다. 


3월 20일. 비를 맞은 튤립의 모습. 튤립 잎 느낌이 너무 좋아.


잎 사이로 통통한 봉오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히아신스도 기대 된다.


튤립은 싹, 잎, 봉오리, 꽃 모두 다 이쁘다. 

그 순간순간은 마치 다른 개체 같다. 구근에 뾱~하고 나온 싹은 정말 앙증맞고, 싹이 펼쳐지며 잎이 되는 순간은 무언가 소중한 것을 감싸 안은 듯 우아하다. 잎이 펴지면서 생기는 프릴은 어떻고! 단단하지만 보드라운 질감 만으로도 너무 멋진데, 잎 가장자리의 구불구불한 곡선은 최고다. 튤립의 백미는 봉오리다. 멋들어진 잎이 서너 장 생기면 그 사이로 범접할 수 없는 봉오리가 슬며시 올라오는데!!! 튤립의 꽃말은 '기대'가 아닐까. 


3월 22일. 튤립 잎의 색과 질감과 모양은 독보적이다. 


3월 25일. 구불구불한 튤립의 잎은 정말 너무 멋진 것이다!!! 


봉오리가 뜨거운 봄 햇빛을 받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걱정 쟁이인 나는, 꽃이 필 것을 대비해 다시 실내로 화분을 옮겼다. 


3월 30일. 히아신스가 먼저 꽃을 피워 올렸다. 


히아신스 블루스타
히아신스 차이나핑크와 잔보스


4월 1일. 튤립의 꽃대가 무지막지하게 길어지기 시작했고, 히아신스의 꽃볼은 최대치가 되었다.


4월 2일. 튤립의 봉오리들!


튤립의 봉오리는 정말 신기하다. 

일단 초록색으로 시작해서 봉오리 끝에서부터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다. (이거야 말로 마술 같다!)


초록이던 꽃 봉오리가 무슨 연유로, 어떤 작용으로 이렇게 점차 말갛게 변하고 색이 올라오는 건지!!!


꽃이나 열매를 키워보면 좀 작아서 실망스러울 때가 있는데, 모두 막판에 비약적으로 몸집을 불린다. 

튤립도 봉오리가 저렇게 작은데, 하며 조금 서운한 맘이 들다가도 색이 나면서부터 몸집을 불린다. 열매도 그렇다. 블루베리를 키울 때 보니까 파는 블루베리에 비하면 우리 집 블루베리 알이 너무 작은 거다. 이거 어떤다 싶었는데 색이 나고, 허옇게 분이 생기고, 익기 시작하면서 열매의 크기가 뿌아아악~ 커지는 거다. 


튤립도 봉오리와 꽃 크기의 차이가 몇 배나 난다. 

4월이 되면서 매일매일 튤립 사진을 찍고, 어떻게 하면 내 새끼가 더 예쁘게 나올까 고심하면서 사진을 찍고 엄선하고, 식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다. 



(엄선된) 어여쁜 튤립 사진만 올려보겠다. (사진은 시간순)

튤립은 다섯 종류를 심었다. 

스트롱골드(노랑), 네그리타(보라), 망고참(노랑/복숭아), 다이너스티(하양/분홍), 멘톤(살구색) 



해 아래서 찍고 싶어서 아이 방으로 잠시 옮겼다.
19송이를 잘라서 테이블에 놓았다.
절화가 주는 아름다움 이란 것이 있다.
시들면서 색이 또 바뀌는 튤립
오늘 늦게 꽃대를 올린 스트롱 골드 하나를 마지막으로 잘랐다.


튤립,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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