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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2. 2020

#05 “주도권을 잡았다는 느낌이 확 드는 거야.”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5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05

   

“물건 도착. 오늘 밤에 실행이닷!”


이틀 후,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고 사진과 함께 희수가 소식을 전했다.


“네가 먼저 남편한테 서비스를 해줘 봐. 그럼 그것의 진가를 알게 될 거고, 남편도 그걸로 널 애무해주겠지.”


“와, 이거 장난 아니네? 방금 손바닥에 좀 떨어뜨려서 느낌을 봤는데 진짜 대박이야. 물에도 금방 씻기고.”


“씻기는 거 완전 마술 같지? 시험 삼아서 좀 사용해보면 바로 가치를 알 것이다.”


대답도 없이 사라진 희수는 5분 후에 다시 대화창에 나타나더니 야단법석을 부렸다.


“대박!!! 언니, 이걸 이제야 말해주다니!! 그 숱한 세월 동안 나한테 이걸 왜 안 알려줬어? 이건 통성명하고 바로 소개해줘야 할 정도의 물건이잖아.”


희수의 글에 깔깔 웃었다. 나는 눈가를 닦으면서 희수에게 대답했다.


“니가 먼저 이것저것 좀 물어보지 그랬냐. 난 다들 알아서 구비해놓고 하는 줄 알았지.”


“언니, 나 경험이 없을 뿐이지 이런 얘기 하는 거 진짜 좋아하거든. 학교 다닐 때는 남자들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구. 그러니까 언니도 앞으로 말하는 거 한치도 주저하지 마.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궁금한 상태라는 걸 잊지 말아 줘.”


“알겠어. 우리 진작 이런 대화 좀 할 걸 그랬네. 나도 이걸 너무 늦게 알았어. 임신했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아무래도 핸드잡을 많이 했으니까. 그러면 나도 훨씬 수월하고 오빠도 더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워.”


그러고 나서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무슨 마음으로 남편에게 덥석 말한 건지, 대체 어떻게 그 용기를 냈는지.


“희수야, 근데 나는 진짜 믿기질 않아. 너희 계속 섹스 안 했다며. 말도 잘 안 한댔잖아. 근데 어떻게 섹스토이를 샀다고 말하고 그날로 남편한테 사용해보기까지 한 거야? 이게 보통 용기로 될 일이야?”


“그거야 뭐, 오빠는 언제나 원한다는 걸 내가 확실히 알거든. 그래서 절대 마다할 리 없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말할 수 있었던 거야.”


“뭐라고? 그걸 아는데도 계속 안 했다고? 니가 거부한 거야?”


“그게, 내가 늘 오빠한테 빡쳐 있는 상태야. 말도 하기 싫은 상태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거든. 오빠는 내가 그러든 말든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개의치도 않아. 우리 계속 그런 상태야.”


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희수는 그 긴 세월을 줄곧 화가 나 있다는 거지. 궁금하지만 그건 묻지 않는 게 좋겠지.


“우와! 내가 이렇게 보람찰 수가 없다. 이걸 계기로 너희 사이가 좌르륵 풀릴 수도 있어. 부부 문제는 침대에서 푼다는 말이 우습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니거든? 의외로 굿 섹스 한 번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기도 해. 정말 신기하다니까?”


“굿 섹스라, 나한테는 너무 먼 얘기인 것 같아.”


“아니야, 지금 나이에는 오히려 더 재미있게 할 수도 있어. 오히려 신혼 때는 너무 모르고 부끄럽고 그래서 되게 소극적이잖아. 역할놀이 같은 것도 하면 얼마나 재미있다고.” 


“뭐! 역할놀이? 미드에나 나오는 그 역할놀이? 진짜야? 언니네 너무 웃긴다!”


“옛날 남친을 우연히 만난 상황이라거나, 또 우리가 사귀기 전인 학교 선후배인 척하면 되게 재밌어. 너도 나중에 남편하고 사귀기 전으로 설정하고 한번 해봐. 너네는 회사 상사와 직원으로 하면 되겠네.”


“역할놀이라니! 상상만 해도 오그라든다. 우린 어림도 없을걸. 근데 언니, 이게 말이지 고작 한 번이지만 섹스만큼은 내가 주도권을 잡았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제대로 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며칠 전에 오빠한테 섹스토이 말하는데 그 느낌이 확 왔거든. 언니는 모를 거야. 나한테는 이 느낌이 너무 신기한 거 있지. 맨날 눈치만 보고 살았는데 말이야. 암튼 우선 이거 써보고 또 보고할게. 오빠가 내 앞에서 몸부림치는 꼴을 내가 꼭 보고 말 거야.”


희수는 어떤 상태이길래 그 잠깐의 일로 주도권을 잡은 느낌이 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전전긍긍하고 불안해하던 희수의 태도가 떠올랐다. ‘너 왜 그렇게 정신이 없어?’ 희수를 만날 때면 내가 한두 번씩 하던 말이었다. 눈치만 보고 살았다는 희수의 말을 들으니, 때때로 허둥대던 희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희수 남편이 어떻게 대했길래 눈치만 본다는 말이 튀어나오지?     


희수는 직장에서 남편을 만났다. 나이는 물론이고 직급도 높은 상사였다.


“언니, 회사에 진짜 카리스마가 넘치고 멋진 사람이 있어.”


희수는 첫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동그라져서는 호들갑을 떨며 내게 말했었다. 그러고 금방 사랑에 빠지더니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결혼한다고 했다. 희수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르던 희수 남편의 얼굴이 생각난다. 그때가 벌써 8년 전인데 결혼식 이후에는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처음에 만나길 상사로 만났잖아. 나이 차이도 좀 나고. 희수 씨가 눈치만 보고 살았다는 말은 정말 그랬다는 게 아닐 거야. 약간 어려운 정도 아닐까? 결혼해도 처음 설정된 관계라는 걸 아예 무시하지는 못하잖아.”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상사였던 남자와의 결혼 생활은 아무래도 결이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부부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권력 관계가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눈치만 보고 살았다는 말이 나온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어느 한 가지라도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싶은 희수의 마음, 그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섹스밖에 없다고 생각한 희수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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