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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12. 2020

#04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해봤어.”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04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04


“언니, 나 아침부터 섹스 얘기해도 돼?”


10시도 안 된 오전이었다. 아침부터 햇살이 좋길래 부지런히 빨래를 돌려 거의 다 널었을 때 희수에게 카톡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3일이나 연락이 없어서 빨래를 다 널고 연락을 한번 해볼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기구 사용 후기도 꽤 궁금했지만, 혹시라도 남편에게 들키진 않았을지, 그 생각만 하면 명치께가 답답해지는 것이 당장 소화불량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한번 시작된 걱정은 제멋대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수건을 아무리 탁탁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이지. 언제나 환영.”


“언니가 걱정할까 봐 보고하려구 그러지.”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고. 납덩이만 같던 걱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나는 베란다에 기댄 채로 웃으면서 글자를 톡톡톡 입력했다.


“써봤지? 어땠어? 그렇게 기대했는데 우리 희수, 무진장 만족했어야 하는데.”


나는 한 손으로 빨래를 급히 마저 널고 식탁으로 와 앉았다.


“둘 다 써봤어. 나 정말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언니 말대로 사람의 혀가 아주 쬐금 더 나은 듯해. 기승전결 면에서만 보자면.”


“하하. 그렇지? 그렇게 기대했는데 어쩌누? 실망을 안겨줘서 미안하다 야.”


“아냐, 처음이라 조금 무섭기도 해서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가지구. 그래도 좋았어. 근데 언니, 내가 섹스토이 커밍아웃을 했어. 오빠한테 말이야. 근데 오빠가 수줍어하면서도 좋아하는 거야!”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희수가 지금 뭐라는 거지? 남편한테 뭘 말했다고? 정작 말을 꺼냈던 건 나였지만 사실 어림도 없는 일이라 걸리지만 말아라 했던 건데, 뭘 어쨌다고?


“희수야, 남편한테 말을 했다고? 야!! 너 정말이야?”


글자를 입력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희수의 답이 오는 몇 초간 심장은 방망이질을 쳤다.


“응. 오빠한테 기구를 써 보기도 했다니까?”


기절하겠네! 만나서 얘기하는 중이었다면 의자가 뒤로 자빠지도록 벌떡 일어났을 거다.


“뭐라고? 그걸 남편한테 사용했다고? 왜? 아니 근데 너 진짜야? 대체 그걸 어떻게 말한 거야? 뭐라고 말했어?”


“몰라.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말해봤어. 언니 말대로 용기를 냈지. 난 잃을 게 없으니까.”


잃을 게 없다는 희수의 마지막 말에 벌떡이는 심장이 조금 진정됐다.


“근데 남편한테 뭐를 사용했다는 거야? 그거 다 여자용이잖아. 남편이 너한테 해본 게 아니고?”


“바이브레이터 말이야. 이거 남자도 좋은 거 아니야? 오빠 몸 여기저기에 대봤는데 오빠는 좋아하는 티를 안 내더라.”


어이가 없어도 유분수지. 이 애를 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해? 그런데 희수 남편은 그걸 또 가만히 내버려 두었고?


“결혼한 지 8년이나 된 애가 그것도 몰라? 남자는 바이브레이터가 좋지 않아. 나 참, 그걸 어디에다가 댔다는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다 났다. 이 부부가 몇 년 만에 어색하게 옷을 벗고 처음으로 덜덜거리는 진동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상상도 안 되었다.


“뭐 젖꼭지에도 대보고, 허벅지에도 대보고, 꼬추에도 대봤지. 근데 신경만 분산된다는 거 있지? 기껏 해주니까.”


“바이브레이터는 네 클리에만 좋은 거야. 남자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남자도 진동이 오면 좋을 줄 알았어. 난 오빠가 몸부림치는 꼴을 보고 싶었어. 그럼 내 기분이 좀 좋아질 거 같았거든.”


희수의 말에 긴장이 풀린 나는 상황 파악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사라고 한 섹스토이 때문에 희수와 희수 남편이 몇 년 만에 다시 섹스하게 되었다는 거지? 


“그래그래, 모를 수도 있지. 근데 너무 신나는데? 너희 부부가 그랬다는 게, 아직 그럴 수 있는 사이라는 게 말이야. 그래서 너희 몇 년 만에 섹스한 거야?”


“이걸 섹스라고 할 수 있나? 그냥 페팅 좀 했어.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어색했는데 또 하필 중간에 은성이가 깨 가지구 그냥 흐지부지됐어. 오빠가 자려고 누워있을 때 섹스토이 산 거 말하구, 그거 오빠한테 좀 해보다가 끝난 거야.”


“근데 너 정말 대단하다. 남편이랑 말도 별로 안 하고 데면데면하다더니, 갑자기 기구를 들이대? 그게 가능한가?”


희수가 이 정도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그만큼 희수가 절박했다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절박하다고 한들, 등 조금 떠밀렸다고 이렇게 바로 실행해버릴 줄이야.


“언니, 나는 정말 오르가슴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오빠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어.”


희수의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섹스리스 부부가 다시 사랑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아닌가. 게다가 그 거룩한 시작이 나로 인해서였다니, 문득 사명감마저 느껴져 가슴이 떨렸다.


“아침에 어색하디? 간밤에 그랬다고 갑자기 다정하긴 힘들 거 아니야, 둘 다.”


“오빠는 평소처럼 별말 없이 출근했어. 나도 아침에 은성이 유치원 보내느라 바쁘니까 뭐 신경도 안 썼구.”


“희수야, 너 다시 남편하고 섹스할 생각인 건 맞아?”


“응. 그런데 하도 안 해서 가능할지 모르겠네.”


희수는 맘을 먹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희수의 이런 결심이 웹 소설을 보다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인지, 섹스리스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인지, 나한테 등 떠밀렸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희수는 변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희수야, 지금 갑자기 생각났는데, 너 혹시 <어글리 트루스>라는 영화 봤어? 섹스 카운슬러가 남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데, 그 사람이 여자들을 대상으로 말하는 장면이 있어. 남자 사로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는데 책에 나오는 10단계 방법이니 뭐니 여자들끼리 말하는 그런 거 다 소용없다고, 한 가지만 기억하라는 거야. 그게 뭔지 알아?”


“섹스 잘해주라는 거구나? 맞지?”


“뭐 비슷한데 주인공이 꼭 기억하라고 한 건 바로 블로우잡이였어. 블로우잡!”


“맙소사. 진짜야? 뭐야, 정말 그 정도야? 웬일이야?”


희수는 믿을 수 없는지 물음표를 마구 날렸다.


“오빠는 그 장면에서 완전 수긍하던데? 육체적인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진짜 좋대. 블로우잡은 언제든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대.”


“정말? 형부가 정말 그렇게 말했다구? 아, 나는 그건 별로던데.”


“여자랑 남자는 다르겠지. 나도 내가 오럴 받는 건 사실 별로야.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다니 믿어야지 뭐. 클레오파트라 있잖아. 근위병을 100명이나 뒀는데 그 100명의 근위병한테 다 블로우잡을 해줬대! 놀랍지? 책에 나와 있더라니까? 그래서 입술 두꺼운 클레오파트라로 불렸었대. 근위병을 다 제 편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배신하지 못하게 말이야. 클레오파트라는 그 옛날에도 그걸 알았던 거야.”


“웬일이야? 기원전부터 그랬다고?”


“남자를 사로잡는 방법을 본능처럼 알았나 봐. 어쨌든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났어. 영화에서 사랑은 곧 섹스다, 이걸 무척 강조하거든. 어쨌든 오빠 말로는 그때 너무너무 사랑받는 느낌이 든대. 너네는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연인들처럼 서로 페팅에 좀 더 비중을 두는 건 어때? 사실 오럴이야 부부들이 보통 섹스하기 전에 거의 하는 거지만.”


“블로우잡이라, 그 정도는 내 오르가슴을 위해서 해줄 수 있어.”


“맞다! 너 섹스도 안 한다면서 하도 오르가슴 타령을 하길래 섹스토이 알려줬던 건데, 이제 너 남편하고 할 거면 다른 걸 알려줄게. 이건 진짜 기대해도 된다?”


“뭔데? 뭘 사면 되는데? 어서 알려 줘.”


희수의 들뜬 표정이 바로 코앞에 있는 듯했다. 나는 얼른 침실에 들어가서 침대 옆 탁자에 있는 것을 집어 들고 사진을 찍어서 전송했다.


“이거야. 꼭 이걸로 사. 내가 다른 것도 몇 가지 사봤는데 무조건 이게 최고야. 사용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대단해. 어마어마하다고! 손이 미끄러져서 날아간다니까? 남편한테 이걸로 애무해달라고 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소상히 알려주리라. 나는 신이 나서 마구 떠들어댔다.


“그 기구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열 배 이상의 만족을 보장합니다. 야, 대답 좀 하라고.”


이분쯤 지나서야 나의 글이 읽음 상태로 바뀌었다.


“언니, 나 주문하느라구. 벌써 주문 완료했어. 하하!”


“이야, 빛처럼 빠르구나. 자, 이제 클리 집중 공격에 대비하라고! 이거 남편 핸드잡 해줄 때도 좋아. 진가가 발휘될 거야. 오케이?”


“오케이!”


희수는 모처럼 신나 보였다. 그리고 희수만큼인지 어쩌면 더한지 모르겠지만 나도 어깨춤이 절로 났다. 남의 섹스에 이렇게 열 올릴 일인가 싶었지만, 내가 등 떠밀어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희수의 반응이 이렇게까지 열렬할 줄이야! 왠지 희수의 세상이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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