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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Aug 20. 2020

#17 “둘 다 만족해야 할 거 아니야.”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17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17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는 희수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부담이 될까 싶어서 스마트폰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우리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겠지?”


나는 희수 대신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희수 씨가 자기 잘못도 꽤 있었다는 걸 인정했잖아. 그게 중요한 거 같아. 모든 게 남편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거랑 자기 잘못도 있었다고 인식한 거랑 앞으로의 관계 개선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거든.”


“근데 연락이 없으니까 걱정이 돼. 남편이 또 거부해서 희수가 실망하고 포기해버린 건 아닐지.”


“남편도 당연히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희수 씨가 받아들여야지. 희수 씨 남편이 진짜 얼마나 힘들었을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어.”


남편은 여전히 희수 남편의 입장이 되어 상처를 매만지고 있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못 이기고 희수에게 말을 걸기로 했다.


“우리 희수가 1일 1잡을 했을까? 은성 아빠가 거부하진 않았을까? 근데 거부했어도 너 그거 이해해야 한다.”


나는 혹시 희수 남편이 거부했을 경우를 대비해 일부러 선수를 쳤다. 이렇게 보내 놓고 화면을 째려보면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잠시 후에 읽었다는 표시로 바뀌었다.


“오빠, 희수 읽었어!”


답이 온 것도 아닌데 대단한 속보라도 되듯 서재로 간 남편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래, 이따가 말해줘. 나 이번 주 마감인 게 있어서 작업할게.”


“나 언니 시간 너무 뺏는 거 같아서 얘기 안 하고 있었단 말이야. 언니 새로 소설 들어갔어? 지난번에 나한테 취재 못 했던 그거 말이야. 시작했지?”


희수는 내가 새로 소설을 시작했을까 봐 말을 못 걸고 있었던 거다! 뭔가 일이 틀어져서 말을 못 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조마조마했던 맘이 풀려서 좀 전에 먹은 점심이 바로 다 소화돼버린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답보상태지 뭐. 어쨌든 나 하나도 안 바빠. 궁금해서 죽는 줄 알았어.”


“결론은 했어. 히히. 근데 내가 또 그놈의 ‘해줄까’를 말해가지구. 그래서인지 오빠가 그냥 잔다는 거야”

“아니, 해줄까를 또?”


나는 기절해서 쓰러지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래서 정말 큰맘 먹고 용기를 내서 슬쩍 만지면서 이래도? 이래도? 그랬더니 여전히 피곤하다고 잔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결론을 이미 아니까 편한 마음으로 다음 말을 종용했다.


“그래서 뭐 어떡해, 나왔지. 설거지랑 정리를 다 끝내고 나도 자려고 누웠는데, 오빠가 다리가 너무 아프다면서 끙끙대는 거야. 어제 현장 가는 날이라서 종일 걸어 다니는 날이었어. 그런 날은 정말 다리가 아파. 내가 알거든. 그래서 종아리를 좀 주물러 줬어.”


“잘했다. 그래서?”


“종아리를 주물주물 해주고 있는데 자기 섰다는 거야. 나 참, 그럼 아깐 왜 튕긴 거래? 좌우지간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내가.”


“그 망할 놈의 해줄까 때문에 튕겼지! 근데 남편이 말로 했어, 섰다고?”


“어. ‘나, 섰다?’ 이렇게. 그래서 또 입으로 받았다니까?”


“또? 블로우잡은 섹스 전에 잠깐만 하거나 그냥 사랑의 표현으로 하는 거지. 삽입은 시도해보지도 않은 거야?”

희수 남편은 왜 가만 누워만 있는 걸까?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그러고만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희수의 희생을 톡톡히 즐기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 어제부터 가임기거든. 위험한 날짜라서 삽입은 안 된다고 내가 처음부터 그랬어. 그러니까 아무 말 않더라. 나는 혹시라도 가임기라고 하면 넣겠다고 고집부릴까 봐 걱정했거든.”


“그런 중요한 문제를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고집을 부린다는 게 말이 되니? 얼른 대화해서 확실하게 결정해.”


“대화하기가 힘들지만 한 번은 해야겠지.”


희수는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숙제인 듯 대답했다. 남편과 대화하기가 저렇게 힘들어서야 어찌하나.


“근데 니가 해줄 때 남편이 널 만질 거 아니야. 그러면 가임기고 뭐고 무조건 섹스하게 되는 거 아니야?”


“예전에 난 괜찮으니까 만지지 말라고 해서 안 만져. 난 그게 너무 별로야. 본격적으로 만지는 거 말고 그렇게 슬슬 간지럽게 만지는 게 너무너무 싫거든. 내가 그래서 스킨십을 싫어하는 거야. 근데 오빠는 자기가 좋아서 만진다고 했었어. 그게 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


“그게 왜 이해가 안 가? 만지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잖아.”


“엥? 누굴 만지는 건 순전히 상대방 좋으라고 하는 거 아니야?”


너는 귀찮기만 한데 순전히 남편을 위해서 지금 희생하는 거냐고 썼다가 얼른 지웠다. 혹시라도 희수가 그렇다고 하면 또 어쩔 건가. 그럼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 부부끼리의 섹스는 어떤 행위도 누구의 희생이 아닌 서로의 즐거움으로 느껴져야 마땅한데, 희수는 아직 그 마음까지는 힘든 거겠지. 나는 그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


“아, 언니. 어제 블로우잡할 때 웃긴 일이 있었어. 오빠가 안 만질 테니까 옷 좀 벗고 해달라는 거야. 나 진짜 너무 당황스럽고 싫었는데 이런 요구가 처음이라서 그래도 벗어줬다?”


“야, 너 그럼 매번 옷을 다 입고 해줬던 거야? 그게 뭐야.”


“응. 벗고 한 적은 없어. 어쨌든 기분이 좀 그랬지만 벗고 하는데 오빠가 약간 신음을 내더니 가슴으로 자기 몸을 좀 만져달라는 거야. 가슴으로! 속으로 내가 얼마나 놀랐게?”


“웬일이야! 그거 우리가 좋아하는 거야. 그래서 해줬니?”


“정말? 난 속으로 이건 이상한데, 계속 그랬거든. 해주긴 했어.”


“그렇게 발견해 나가는 거지. 부부끼리는 서로 합의만 되면 뭐든 해도 되는 거라고. 그거 나도 너처럼 블로우잡 하다가 발견했었어. 내 젖꼭지가 오빠 허벅지에 닿은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이 엄청 좋은 거야. 그래서 젖꼭지로 계속 오빠 허벅지를 이리저리 쓸었더니, 글쎄 오빠도 죽어 나가더라고. 오빠 말은 되게 색다른 느낌이래. 네 남편도 그걸 느낀 거지. 그래도 용기 있게 해달라고 말했네. 다음에는 너도 젖꼭지 감각에 집중해봐. 느낌이 좋다니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언니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내가 뭔가를 발견하다니, 이게 뭐라고 성취감이 다 느껴진다.”


“새로운 걸 처음 하려면 어색하고 민망할 수도 있는데 마음을 열고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해. 그래야 재밌지. 너희 부부가 날려 버린 세월을 만회하고도 남을 지름길을 알려줄 테니까 너도 적극적으로 찾아봐.”


“기술교육 너무 좋다!! 나 진짜 이 대화방 수시로 보면서 맨날 복습한다구.”     


희수의 마지막 말에 나도 희수와 나눈 대화를 쭉 훑어보았다. 희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고, 나 역시 긴 세월을 혼자 애쓰며 터득해왔다. 


그래, 섹스 학교가 필요한 거야. 우리 모두에게는 섹스를 잘 가르쳐 줄 누군가가 꼭 필요하다. 다들 너무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몰라. 여자들은 남자와 남자의 성욕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섹스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남자라고 다를까. 경험이 많은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남자들은 모른다. 여자의 마음과 몸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남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남자들 모두 자신은 엄청난 기술보유자인 양, 변강쇠라도 되는 듯 술자리에서 허풍을 떤다. 하지만 너도나도 지껄이는 그런 허세 때문에 더 압박감을 느끼고 기가 죽는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남자들도 정작 섹스에 중요한 것들을 배울 기회가 없다. 그저 남들에게 들은 허풍과 포르노에서 본 것이 자신이 아는 전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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