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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Sep 03. 2020

#21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들이잖아.”

사실은 사랑하는 사이 #21

연재 중이던 소설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2021.1.15)

<하는, 사랑> 출간을 알립니다. 

하는, 사랑




:: 연재소설입니다. 순서를 확인해주세요. ::

::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있습니다. ::



#21


“부부는 섹스해서 사랑한대.”


며칠 전 남편이 느닷없이 말했다.


“전후가 바뀌었잖아. 사랑해야 섹스를 하지. 남자는 몰라도 여자들은 그래.”


남편의 말에 신경이 조금 거슬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연인일 때는 그렇지만 부부는 섹스해서 사랑하는 거래. 마광수 교수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그렇게 쓰여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며칠 곰곰이 생각해봤거든.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내가 대꾸하지 않자 남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지난번에도 한 말이지만 부부가 섹스를 안 하면 점점 사랑이 옅어질 거 아니야. 심하면 상대가 아예 싫은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싫은 사람과 살아가야 하니까 짜증이 나고,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지. 상대를 생각하면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있잖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야. 이혼하거나, 아니면 아이 때문에 겨우 참으면서 불행하게 살거나.”


“그럼 왜 부부가 섹스를 안 하게 되었는지 먼저 얘기가 있어야지. 왜 섹스를 안 해서 급속히 사랑이 식었는데? 누구 잘못인데 그건?”


나는 왈칵 성질이 났다. 내 머릿속에는 섹스리스가 된 상황의 원인 제공자는 대부분이 남자이기 때문이다.

“일단 제일 큰 문제는 임신, 출산, 육아의 삼연타겠지.”


남편의 말에 나는 크게 분노하고 말았다.


“임신, 출산, 육아 이건 다 여자의 일이잖아. 얼마나 힘든지 오빠는 옆에서 고스란히 다 지켜봤잖아. 그것 때문에 섹스리스가 된다고? 아아~ 그게 제일 큰 원인이었네. 부인은 화장실도 제때 못 가고 머리는 산발한 채로 힘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남자들은 그놈의 사정을 꼭 해야 하니까, 힘든 부인은 나 몰라라 하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는 거지? 어?”


“그럼 제일 큰 문제는 여자가 남자를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자도 여자 몰라. 자기네들의 거룩한 성욕 해소가 제일가는 문제라 온통 그 생각뿐인데 뭘 알겠어. 그저 일 년 열두 달, 발정이 나 있는 게 남자들이지?”


내 남편의 얘기도 아닌데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서 목소리까지 떨렸다. 


“여자들도 남편의 심정은 생각해주지 않잖아. 힘들어 죽겠는데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치근덕거리지? 하면서 고깝게 쳐다보면 남편들은 어이쿠 하겠지. 그래서 참다가 다시 며칠 후에 시도하는데 부인이 또 거부해. 좋게 거부하는 것도 아니고 경멸에 찬 눈빛이라도 보내봐. 다시 말할 용기를 내기가 힘들지 않겠어? 그렇게 멀어지는 거지.”


“그게 잘못이야? 임신하면 얼마나 힘든데. 애 낳고 나면 너무 아파서 딱 죽겠다고. 잠도 못 자니까 말도 곱게 안 나와. 게다가 너무 엉망이라 그 꼴로는 섹스하고 싶지도 않고. 남편이 되어서 그걸 고려해주지도 못한다는 거야? 결혼했으니 상황이 어떻든 무조건 대주라는 거야?”


“왜 감정적으로 그래. 무턱대고 요구하는 남편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내 말은 여자들이 남편의 상태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가시 돋친 말까지는 안 할 거 아니야. 남편도 부인이 힘들고 피곤한 것 알지, 그래서 그때 다들 혼자 많이 해결해. 나도 그랬고. 그래도 어떡해. 사랑하는 아내랑 섹스하고 싶어 죽겠는데. 더군다나 애 낳으면 잠깐이라도 각방을 쓰잖아. 굳게 닫혀있는 문을 섹스하자고 두드려야 하니까 남자들도 무척 고민한다는 거야. 수없이 고민하다가 말한 건데 몇 번이나 사납게 거부당했다고 해봐. 다시 말 꺼내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여러모로 취약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내가 그때 지속적인 거부를 했다면 오빤 어떻게 했을까?”


이제 불똥은 그쪽으로 튀었다.


“지금 그런 가정을 하면 뭐해. 너는 그때도 내가 하고 싶어 할 때마다 빨아주고, 손으로라도 해줬잖아. 몸 상태가 괜찮으면 섹스도 했고. 당연히 보통 때보다는 횟수가 말도 안 되게 줄었지만 말야. 내 말은 남자들의 욕구가 상당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래 참기 꽤 힘든 종류라는 것을 여자들이 알아주면 좋겠다는 거야. 모르는 것과 알고 있는 건 반응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 그리고 섹스가 중요한 의무라는 사실도 서로 잊으면 안 되겠지. 출산 때문이건 다른 일 때문이건 간격이 뜸해지다 보면 한없이 어려워지는 게 부부의 섹스인 것 같아. 한번 벌어진 간격을 다시 좁히는 게 단순하지가 않대. 부부 둘 다 섹스의 끈을 놓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거지.”


나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자, 그러면 섹스를 안 한 지 꽤 됐다고 해봐. 그래서인지 사랑도 좀 식었어. 아니, 식은 정도가 아니고 이젠 저 인간이 싫어. 이런 상황이라면 제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다고 해도 이미 상대가 싫어졌는데 어떻게 싫은 인간하고 다시 섹스하냔 말이야.”


이미 나에겐 싫은 사람이 되어버린 남편, 어떻게 다시 그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함께 뒹굴 수 있는가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희수는 실천했다. 그러니까 나는 희수에게 계속 사랑을 말했던 거다. 희수가 사랑 따위 없노라고 한결같이 말해도, 그래서 나는 희수한테 사랑이 있다고 줄곧 확신하는 거였다.


“노력해야지. 희수 씨처럼 용기를 내야지. 그래서 우리가 희수 씨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우리 같았으면 아마 못 했을 거라고 그랬잖아? 근데 희수 씨는 실천했어. 용기 내는 자가 행복을 쟁취하는 거지. 그냥 절로 잘 되는 건 없어. 섹스라는 게 단순하지 않잖아. 아주 오묘한 감정선들이 있다고. 특히 남자는 자존심에 타격을 입으면 ‘내가 너 아니면 섹스 못 하냐?’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해 버리기도 하더라고.”


“남자들 맨날 자존심을 그렇게 들먹여. 여자도 자존심 있어. 남자보다 센 자존심 있다고. 나까지 자존심 부리자니 다 엉망이 될 거 같으니까 참는 거거든. 봐주는 거지.”


“제일 좋은 건 대화야. 제일 힘든 것이기도 하지만. 희수 씨도 남편하고 먼저 대화를 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그래서 상담가들이 억지로 대화를 끌어내는 거잖아. 말도 안 하고 상담실에서 등 돌리고 있어도 계속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시키잖아. 그러다가 대화가 좀 되면 섹스하고 오라는 숙제도 내주는 거고. 스스로 대화도 섹스도 못 한다면 그런 강제적인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렇게 억지로 한 번만 해도 마음이 변하는 경우가 실제로 꽤 많았대. 그러니까 이거야말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딱 맞지.”


“어느 정도여야 말을 하지. 남편은 맨날 술 마시고 와서 지독한 냄새나 풍기고,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는데, 다시 섹스하자는 말이 어떻게 나와.”


“도저히 노력할 맘이 안 들면 계속 지옥에서 불행하다 불행하다 하고 살아야지. 사랑했던 사람들이잖아. 사랑해서 결혼했잖아. 왜 못해. 눈 딱 감고 몇 번 시도해보는 거지. 얼마든지 다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끔찍하게 보였던 이유가 섹스를 안 해서였다니, 그게 믿겨? 억지로라도 다시 섹스를 시작하면 마음이 움직이고 사랑의 꽃이 피어오른다는 게? 하지만 사실이래.”


사람의 마음이란 참 알 수가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지긋지긋하고 싫다가도 아주 작은 불씨로 다시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사랑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 또한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니 말이다.


“근데 섹스리스의 기준이란 게 있나? 안 한 지 몇 년 됐다고 하면 당연히 섹스리스인데, 또 되게 희한한 게 일 년에 두세 번은 하면서 산다는 사람도 있잖아. 근데 자기들은 하긴 하니까 섹스리스라고 생각 안 할 것 같아.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거지.”


남편은 내 말을 들으면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찾아보니까 한 달에 한 번꼴이면 섹스리스가 아니다, 그것도 섹스리스다. 의견이 반반인 것 같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이 마지노선인가 봐. 근데 부부끼리 겨우 한 달에 한 번만 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건가?”


“뭐,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마음이 있다면 그 잠깐의 짬도 안 날까 싶은데, 우리가 절대 짐작하지 못하는 사정도 있는 거겠지. 근데 남편이 도무지 하자는 말을 안 하면 어떻게 해야 해? 남편이 요구하지 않는 바람에 졸지에 섹스리스가 됐다는 사람도 있거든. 엄밀히 말하자면 희수도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여자가 먼저 하자고 하면 되잖아. 내가 너한테도 몇 번 말 했었잖아. 너는 왜 하고 싶다는 말을 안 하냐고. 난 그 말을 들으면 너무나 기쁠 것 같다고 했었잖아.”


“여자한테는 밝히면 안 된다는 심리적 저지선이 있긴 해. 성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저항이 있다고. 지금이야 내가 먼저 덤비기도 하지만, 예전을 생각해봐. 절대 내가 먼저 다가서질 못했잖아. 근데 남자들도 마냥 쉬운 건 아니라니까 여자 쪽에서도 때로는 용기를 내긴 해야겠네.”


나는 말끝에 또 희수를 떠올렸다. 단박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아니 용기를 내야 했던 희수의 마음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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