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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주 Dec 08. 2020

단백질이 필요하세요?

병아리콩으로 후무스 만들기

여기저기서 단백질을 챙겨 먹으라는 말이 많이 들려온다.

TV 예능프로에서도 중년의 나이에는 단백질을 꼭 챙겨 먹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단백질이니 근손실이니 하는 얘기가 예능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음식과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남편의 입에서도 단백질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맨날 살 뺀다고 굶을 생각 말고, 단백질을 먹어. 내가 봤는데 단백질을 먹어야 살이 빠진대. 스쿼트도 좀 하고."

노력은 없이 허구한 날 살 타령인 내게 남편도 단백질 얘기를 했다.


흠.... 단백질이라.....

매일 달걀흰자(심지어 나는 노른자를 좋아한다), 닭가슴살(나는 치킨에서도 닭가슴살은 안 먹는데...), 두부(두부를 좋아하지만 그걸 매일?) 이런 걸 먹어야 한단 말인가?


이때 내 머릿속에서 예전에 트위터에서 얼핏 본 레시피가 스치듯 지나갔다.

"오빠, 후무스 해 먹을까? 후무스? 되게 맛있잖아. 그게 순 단백질이란 말야. 게다가 채소도 많이 먹을 수 있어!"

"후무스를 만든다고?"

"어, 나 할 수 있어. 재료가 되게 단순했어. 맛을 보면서 만들면 그 맛쯤은 찾을 수 있어!"




후무스, 호무스, 홈무스, 허머스 등 비슷한 갖가지 발음으로 불리는 후무스는 영문으로도 Hummus, Hommus 등으로 표기한다.

나와 남편이 후무스를 처음 먹어본 건 (아마도) 2003년의 터키 혹은 시리아에서였을 것이다.

시리아에서는 병아리콩 수프도 먹었다. (그건 정말 맛이 없었다.)

그때 먹은 음식 사진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 당시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시작할 때였는데, 메모리카드 가격이 너무 비싸서 메모리카드 몇 개를 사가는 것만으로도 큰 지출이었다. 몇 달째 하고 있는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던 터키와 시리아에서 음식을 찍는 것으로 가뜩이나 부족한 메모리카드를 채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때는 음식 사진을 찍는 유행(?)이 없었다.


어쨌든 콩으로 만든 소스는 무지 쌌고, 빵은 거의 거저였기 때문에 후무스에 중동 빵을 찍어먹는 것으로 가난한 여행자는 연명하였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많은 여행을 했는데, 이집트, 요르단, 또 터키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여행하면서 중동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았다. 그 외 중동이 아닌 나라도 중동 음식점들은 꼭 있었는데, 눈에 띄면 흔쾌히 들어가서 반가운 마음으로 중동 음식을 먹었다.


기본 후무스. 멋지게 퍼담아 올리브유를 둘러준다. (2018년 아랍 에미리트)


병아리콩과 파프리카 가루로 멋을 낸 후무스. (2018년 아랍 에미리트)


이것은 중동의 또 다른 디핑 소스인 가지 페이스트이다. 바바가누쉬 라고 부르는데 굉장히 맛있다. (2018년 아랍 에미리트)


간 구이와 코샤리, 샐러드와 양고기를 시켰는데 후무스와 야채는 당연한 듯 딸려 나온다. (2013년 이집트)


여기서 후무스처럼 보이는 건 바바가누쉬! 얇은 중동 빵에 찍어 먹으면 후무스도 바바가누쉬도 정말 맛있다. (2013년 이집트)


따뜻하게 구워져 부푼 빵과 요구르트에 버무린 샐러드, 그리고 병아리콩을 가운데 담아준 후무스와 파슬리를 잔뜩 얹은 바바가누쉬 (2013 요르단)


후무스와 함께 바바가누쉬는 중동 음식의 대표 소스. (2013 요르단)


후무스 옆에 동그란 튀긴 볼은 팔라펠이라는 중동 음식인데, 병아리콩에 고수, 마늘, 양파 등을 다져 넣어 빚어 튀긴 것이다. (2013 요르단)


팔라펠은 특히 아이가 굉장히 좋아했다. 팔라펠을 저 중동 빵(가운데가 주머니처럼 벌어진다) 안에 넣어 으깨주면 샌드위치처럼 잘 먹었다.

중동 사람들은 피타브레드라고 부르는 저 빵 안에 후무스와 팔라펠과 감자튀김과 양파를 넣어 먹는다.

사실 팔라펠을 그냥 먹다가 중동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따라먹었더니 맛있어서 우리도 내내 그리 먹고 다녔다.


방콕에 있는 중동 음식점에 가서 시킨 샐러드와 후무스 콤보 (2014년 방콕)


치앙마이에 있는 중동 음식점에서는 이렇게 예쁘게 나온다. 얼마나 맛있는지! 가운데 동그란 것이 팔라펠이다. (2014년 치앙마이)


한때 코스트코에서 파는 갈릭 후무스를 사다 먹었다.


이 후무스를 아직도 파나? 하고 검색하니까 웬걸!

쿠팡에서만 후무스로 560개의 제품이 검색되어 나왔다.

이제 후무스는 생소한 음식이 아닌 거다.




잘만 만들면 우리가 먹어본 맛이 날 테고, 잘 못해도 단백질은 먹을 것이니까 믿질 것이 없었다.

아무튼 영 아니다 싶으면 불렸다 갈아서 김치찌개에 넣으면 될 일이니까.

게다가 병아리콩도 생각보다 쌌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1kg의 소포장 병아리콩을 샀다.


1킬로에 4천 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킬로는 8천 원 대다. 그렇다고 덥석 4킬로를 사진 못했다.)


물에 불린다. 가장 좋은 건 자기 전에 담가놓고 아침에 만드는 것!


병아리콩 외에 필요한 재료는 올리브유, 레몬즙, 다진 마늘, 소금, 참깨, 큐민 파우더(옵션)이다.

내 생각에는 참깨도 굳이 꼭 넣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생각이 들고, 참깨 대신 참기름을 좀 넣어도 될 것 같다.

뭐든 있는 재료를 최대한 살려서....


레몬즙이 필요한데, 집에 있는 이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레몬 한 개만 사긴 좀 그러니까.


그리고 큐민. 이것은 옵션인데,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고 중동의 맛을 원하면 큐민파우더를 조금 첨가하면 된다.


우리도 처음에는 큐민(커민)을 넣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지에서 먹어본 맛과는 한 끗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우리가 만든 후무스에는 중동의 냄새가 없었다. 그 중동 냄새의 원천은 큐민이다.

커피콩을 가는 분쇄기가 집에 있기 때문에 큐민 파우더 말고 큐민 씨드를 사서 조금씩 분쇄해 놓고 사용하는데, 주로 카레를 만들 때 넣는다. (그러면 보다 인도의 향이 난다.)  

어쨌든 큐민 파우더를 넣는 것은 옵션이다. 중동 냄새 따위 없어도 이미 후무스의 맛은 차고 넘치니까.




레시피의 정량이란 건 크게 소용이 없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것을 위해 써놓자면,

- '불린 병아리콩' 약 250그람 기준. (만들기 전 불린 콩을 10분쯤 삶고 식혀 준비)

- 레몬즙 2~3큰술,

- 다진 마늘 적당히 (나는 작은 각얼음 크기로 얼려놓은 다진 마늘을 한 개 넣었다.)

- 참깨 2~3큰술 (참기름 조금으로 대신해도 괜찮고 굳이 넣지 않아도 괜찮다.)

- 큐민 파우더 조금 (옵션. 나는 1/3 티스푼 정도 넣었다.)

- 소금 한 티스푼

- 올리브유 (되기를 보면서 - 꽤 많이 들어간다.)

- 물 조금 (갈 때 너무 되직하여 잘 갈리지 않으면 물을 조금 첨가해도 괜찮다.)


모든 재료를 갈기 직전


미리 말하자면 첫 번째 시도에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참깨를 저렇게 넣으면 안 되었다. 저 작은 알갱이는 전혀 분쇄되지 않았다.

물론 톡톡 씹히는 맛이 좋다면 괜찮다. 그래도 나는 매끄러운 본토의 질감을 원했기 때문에 참깨가 갈리지 않아 아쉬웠다.

참깨를 분쇄할 돌절구나 분쇄기가 없다면 그냥 참기름을 넣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나중에는 참깨를 분쇄해서 넣었고, 또 한번은 대신 참기름을 넣었는데 둘 다 괜찮았다.)


병아리콩 껍질도 벗겼다면 좋았겠지만 잘 벗겨지지 않았다. 메주콩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불린 병아리콩은 모양 때문인지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았고, 삶아서 벗기자니 으깨져서 그냥 다 갈아버리기로 했다.

(나중에는 껍질을 벗겨서 만들어 봤는데 훨씬 보드랍고 고소한 후무스가 되었다. 그리고 껍질 벗기기도 요령이 생겨서 점점 더 잘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올리브유를 많이 넣어야 했다. 페스토를 만들 때도 올리브유가 꽤 들어가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푸드 프로세서로 오래 갈지 않아서 사 먹던 후무스처럼 곱게 갈리지 않고 콩 건더기가 남아있는데, 나름 씹는 맛? 이 있다.


자, 이제 먹어보자! 당장 집에 있는 채소는 오이밖에 없어서 오이를 준비했다. 토마토는 사이드.


중동에서 주던 것처럼 후무스 위에 올리브유를 뿌렸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깜짝 놀라는 동시에 이걸 왜 여태 안 만들어 먹었을까 한탄했다.

곱게 갈리지도 않고, 꽤나 되직했지만 우리가 아는 후무스의 맛이 난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해서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아이도 잘 먹었다. 등교하는 날은 아침 일찍부터 무얼 먹기 힘들어하는데,  오이와 후무스를 먹겠다고 하길래 금방 준비해 주었다. 오이 하나와 후무스 한 접시를 싹 먹고 등교했다.




두 번째 시도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실패를 거울 삼아 믹서기를 꺼냈다. 믹서기에서는 훨씬 더 곱게 갈릴 것이라 예상.

그리고 물을 첨가하면 보다 보드랍게 갈린다는 글을 몇 군데서 보고 콩을 삶을 물도 첨가해서 갈았다.

그리고 참깨도 분쇄해서 넣었다. 병아리콩 껍질은 두 번째까지는 벗기지 못했다.


확실히 지난번보다는 부드러워 보인다.


갈 때 물을 조금 첨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리도 이제는 밑반찬처럼 후무스를 내놓는다.


후무스는 고기를 찍어먹어도 되고, 채소를 찍어 먹어도 되니까.

빵을 먹을 때도 좋고, 과자도 찍어 먹는다.

다시 올리브유만 넣어 약간 되직하게 만든 후무스는 밥 대신 먹기도 한다.

아이와 남편의 밥을 한 그릇씩 푸고, 나는 밥그릇에 후무스를 가득 담아서 반찬과 함께 먹는다.

생각만으로는 살이 쫙쫙 빠질 것만 같고, 항상 단백질이 부족하다고 나오는 인바디 체중계도 이제는 단백질이 표준이 되었다고 해줄 것만 같다.


어느 날의 다이어트식 점심. 후무스와 채소 스틱도 모자라 양파와 당근을 넣은 달걀말이도 곁들였다.


이건 오늘 저녁에 만든 후무스다. 이번에는 껍질을 벗겨서 그런지 굉장히 보드랍고 고소했으며, 색깔도 조금 더 노랗다. 껍질 벗기는 수고는 할만하다.



단백질이 필요한 당신께, 팔방미인 후무스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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