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요리 열세 가지 - 쑥국부터 쑥살사 까지!
서울 한복판에서도 사람 없는 야트막한 산이 바로 집 뒤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특히 작년에는 그 가치가 더 빛이 났다.
아이의 중학교 입학이 한없이 미루어지면서 우리는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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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뒷산을 올랐다가 쑥을 캐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마치 자신의 소질을 발견한 듯 몹시 즐거워해서 매일 쑥을 캐러 나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나와 남편도 채집을 매우 좋아하므로 홀린 듯 봉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매일 산을 오르는 날이 시작되었다.
운동도 하고 쑥도 캐고 즐거운 봄날이었다.
쑥도 한철이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아래 사진들은 2020년 3월 19일부터 4월 16일까지, 약 한 달간의 쑥 뜯기와 쑥 먹기의 기록이다.
우리가 해 먹은 쑥 음식은 열세 종류나 된다. 매일매일 쑥을 먹었다.
처음 산에 간 3월 19일은 강풍 주의보가 있는 날이었다.
강풍주의보 때문에 아무도 없나 보다 했는데, 이 야산에는 사람이 계속 없었다.
우리는 전쟁 통의 동막골 주민들처럼, 이 산에서만큼은 코로나를 체감하지 못했다.
마스크 없이 온 산을 즐겼다.
낙엽 아래 초록색이 보여서 "이제 새싹들이 올라오나 봐." 하고 낙엽을 걷으니 아기 쑥이 빼꼼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 얘네들 쑥이다, 쑥이야!!!"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여린 쑥이었다.
낙엽을 헤치면서 골라서 뜯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모여 있는 쑥을 발견하면 얼마나 신이 나던지!
고작 몇 개의 쑥이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아이는 "여기 쑥 집단 서식지야!"라고 외치면서 신이 나서 어깨춤을 췄다.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춤을 췄다.)
쑥을 함께 갈아 찹쌀 반죽을 부치면 무지 맛있을 것 같아서 해봤다!!!
나는 어려서부터 찹쌀 반죽을 기름에 부쳐 먹는 걸 좋아했다. 엄마가 그걸 자주 해주셨는데, 기름에 자글자글하게 튀겨진 가장자리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동그랗게 돌려가면서 가장자리를 먼저 먹었다. 가운데 말랑한 부분은 설탕을 찍어먹고.
아이 식성이 나와 닮아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도 다 좋아하는데 찹쌀 지짐도 그중 하나다. 은찬이가 어릴 때부터 나 역시 찹쌀 지짐을 해주었다. 엄마가 진짜 좋아하던 음식이라고 하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찹쌀 지짐을 먹을 때마다 가장자리가 맛있지 않냐고, 하지만 이걸 먹고 나서는 바로 치실을 하고 이를 잘 닦아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참 많이도 부쳐 먹었다.
가뜩이나 좋아하는 찹쌀 지짐인데, 자기가 직접 하나하나 뜯어온 쑥을 넣었다니 얼마나 더 맛있겠나!!!
아이도 나도 남편도 대열광을 하면서 먹었다.
조청도 찍어 먹고 설탕도 찍어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것이 있겠냐, 매일 쑥을 뜯어다가 이걸 해 먹자, 다음에는 쑥을 훨씬 더 많이 넣어야 한다, 당장 또 쑥을 뜯으러 가고 싶다, 내일이 기대된다. 야단도 아니었다.
아이가 두릅 튀김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쑥도 튀기면 아주 맛있을 것 같았다.
뜯어온 쑥 중에서 형체를 잘 갖춘 것을 골라서 묽은 튀김옷을 입혀 튀겼다.
맛? 꼭 말로 해야 하나.
뭘 튀겨도 맛있다는 건 진리 아닌가.
하루아침에 매화가 모두 만개해서 놀라 자빠질 뻔했다.
어디서 향이 난다? 하면서 산에 올랐더니 다 매화향이었다!
광양 매실농원에 갔을 때도 매화향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매화나무 밑에서 아찔한 매화 향을 맡으면서 쑥을 뜯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층 더 실려오는 매화향에 환호하고, 조금 큰 쑥을 발견하면 반드시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누구든지 "여기 이 쑥 좀 봐!" 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하던 걸 멈추고 반드시 봐주고 함께 "우와~"를 외쳐주었다.
내가 잠시 매화향기에 취해있을 때, 아빠와 아들은 정신없이 쑥을 뜯었다.
조금이라도 쑥이 귀엽게 모여있으면 아이는 반드시 큰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만 가자고 하는데도 아이는 이걸 다 놔두고 집에 갈 수가 없다면서 난리다 난리.
집에 가는 길에 쑥이 보이면 또 캐고, 쑥이 보이면 또 캤다.
아이는 자기가 못 견디고 캐는 거면서, 이래서는 우리는 영영 집에 갈 수가 없다고 했고, 그럼 캐지 않으면 되지 않냐니까, 쑥을 보면 그럴 수 없는 걸 알면서 그런 말을 하냐고 해서 웃으면서 다시 쑥을 캐다 집으로 가다 그랬다.
처음으로 쑥국을 끓여보았다. 찾아보니 콩가루를 쑥에 묻혀서 넣으면 더 맛있다고 그래서 콩가루까지 샀다.
남편은 먹어본 중에는 이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 진심이었는지 먹는 내내 엄청난 감탄을 쏟아냈다.
나는 속으로 이것도 꽤 맛있지만 그래도 찹쌀 지짐을 따라갈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쑥 향은 이게 제일이라는 건 확실하다. 쑥 사우나 속에 들어앉아서 쑥을 코에 꼽아놓은 것처럼 국에서 쑥향이 대단했다!
은찬이도 자기가 캐 온 것이라 그런지 처음 먹는 쑥국을 잘도 먹었다.
사실 쑥 요리로 검색하면 쑥국과 쑥버무리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 쑥 버무리 잘하기가 쉽지가 않다.
쑥버무리는 과거에 한 번 실패한 적이 있다. (과거에도 나와 남편은 쑥 캐는 걸 좋아했고, 아이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둘은 쑥을 캐러 일부러 차를 몰고 근교로 간 적도 있다.)
위 사진은 그래서 별다른 기대 없이 좀 성의 없는 쑥버무리 반죽이다.
멥쌀가루를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 쌀을 불려서 갈았는데, 그마저도 곱게 갈지도 않았다.
완성된 쑥 버무리다. 곱게 갈리지 않은 멥쌀 덕분에 밥에 쑥을 넣고 치댄 것처럼 되었다.
그래도 쑥향도 나고 단맛도 있고, 입자가 살아 숨 쉬지만, 어쨌든 쑥 버무리다.
아이는 그래도 잘 갈린 쪽으로 떼줘가면서 나랑 남편이 이 많은 걸 다 먹어치웠다.
우리는 쑥 부자라서 아낌없이 쑥을 넣었다.
얼마나 쑥 부자인지, 조금이라도 질길 것 같은 대궁은 아낌없이 다 버리고 여린 잎만 취하는 거다.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가도 쉴 때 쑥이 보이면 쑥을 뜯었다.
"언제 쑥을 발견할지 모르니까, 언제나 항상 예비 비닐봉지를 가지고 다녀야 해!"
아이는 이 세상에 쑥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면서, 지구는 쑥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쑥 천지일 줄은 몰랐다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탄을 하곤 했는데, 정말이지 여기도 쑥 저기도 쑥.
온 땅에 쑥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산책로에도, 인도에도, 차도에도, 나무 밑에도, 잔디 속에도 쑥이 지천이었다.
양파와 쑥 만으로도 이렇게 맛있는 부침개가 된다!
역시 지지는 건 항상 맛있다니까. 믿고 먹는 부침개.
쑥을 한껏 넣은 부침 반죽에 청양고추, 깻잎, 버섯 등 그때 그때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부쳐먹었다.
찰랑찰랑한 고구마묵을 쑤고 있다.
묵에 대해서도 쓰고 싶지만 너무 길어져서 묵 얘기는 나중을 기약한다.
굳힌 고구마묵에 엄마가 짜준 귀한 들기름을 팍팍 넣고, 김을 구워서 잘라 넣고, 우리가 캐 온 쑥을 넣었다.
간장으로 간을 살짝 한 쑥 고구마묵무침. 쑥이 씹혀서 입 안에서 향이 퍼질 때마다 환상적이다.
아이는 늘 깨끗하게 뜯어서 가지런하게 모은다. 어차피 비닐봉지 넣을 건데 그냥 뜯어서 넣으라고 해도 자기는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도 약간 이런 편이다. 절대 막 뜯지 않고 봐가면서 내 규칙대로 뜯는다.
그래서인지 쑥 수확량을 보면 항상 남편>나>아이 순이다.
쑥을 대량 소비할 수 있는 페스토.
쑥 향이 대단했다. 한동안 집에서 쑥향이 가시지를 않았다.
냉동실에 즐비한 바질 페스토 병 앞으로 쑥 페스토 3병을 넣어놨다.
바질 페스토도 한번 올려야 하는데...........
바질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다.
맛있다고 야단 났다. 워낙 페스토를 좋아해서 그런지 향이 강한 쑥 페스토도 만족해하며 먹었다.
남편도 이건 정말 별미라면서 맛나게 먹었다.
남편이 쑥국이 너무너무 맛있었다고 다시 끓여달라고 그래서 쑥을 때려 넣고 끓였다.
콩가루도 보란 듯이 묻혔다. 쑥국에 콩가루를 왜 묻히는지 알겠어! 너무 맛있다.
쑥개떡에는 쑥을 데쳐서 넣는 거라고 해서 슬쩍 데쳐서 함께 갈았다.
쑥이 함유된 쌀가루는 쑥향을 뿜뿜하면서 보슬보슬했다.
쑥개떡 반축은 오래 치대면 치댈수록 쫀쫀하다고 해서 열심히 치댔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가 쑥개떡을 참 많이 해주시는데, 조금 더 열심히 지켜볼 걸 그랬다.
아직도 친정에 간다고 미리 연락을 드리면 쑥개떡을 만들어 놓으시는 날이 많다.
잘 익은 쑥개떡에 소금을 살짝 섞은 참기름을 발라서 한 김 식혔다.
식어야 쫀득하고 맛있다는데, 식기 전에 자꾸만 손이 간다.
아이와 남편은 떡+꿀 파라서 참기름을 발랐다는데도 꿀을 또 찍어먹었다.
나는 떡+간장, 떡+들기름 파다.
초반에 우리가 뜯은 쑥은 얼마나 아기였던 건지.
비라도 한번 내린 다음 날에는 쑥들이 쑥~ 커져있었다.
반찬으로 달걀말이 하면서 (처치곤란으로 많아진) 쑥을 잔뜩 넣었다.
썩 잘 어울려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 산에 다니면 뭐하냐, 쑥찹쌀 지짐이를 이렇게 먹어대는데......
4월이 되어도 계속 산에 다니면서 쑥을 뜯었다.
되게 웃긴 건, 쑥이 좀 자라서 쑥이 많아지자 쑥 뜯는 재미가 반감되었다는 거다.
쑥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우리는 쑥이 어딨나 살펴가면서 뜯는 게 재밌었던 거다.
집단으로 있는 걸 발견하거나, 조금 큰 쑥을 발견하면 환호하는 재미가 사라진 거다.
너무 많으니까 더 편하고 봉지는 금세 채웠지만, 재미는 덜 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엄마가 짜주신 무지 향긋한 들기름이 있어서 그걸로 비볐다. (간은 연두로 했다)
국수에 맛있고 신선한 들기름과 간장 조금만 넣고 먹어도 맛있을 판에....
쑥까지 더해져서 별미였다!
상큼한 봄이 입안 가득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듬기도 수월해졌다. 그간 너무 어린 쑥을 뜯어가지고 다듬는데 정말 오래 걸렸는데, 요령이 붙어가면서 모든 것이 숙달된 조교처럼 척척이다.
쑥 재고량이 어마어마해서 당분간 쑥을 뜯지 않기로 약속까지 했다.
산에 가면 안 뜯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산에 가지 말고 다른 데서 운동하자고까지 했다.
봉지를 안 가져가면 산에 가도 안 뜯을 거라는 말에 그러자고 했으나, 산에만 가면 뜯어서 주머니에라도 넣어가지고 오는 통에 며칠 다른 곳으로 가서 운동을 했다.
이렇게 '쑥 안 뜯기' 가 힘들 줄이야!!!
반찬으로 이용할 방법을 연구하다가 얼갈이와 미나리를 조금 넣고 쑥을 왕창 넣고 고춧가루 조물조물해서 무쳤더니 아주 상큼하고 맛있었다.
하다 하다 쑥 살사소스를 만들었다.
고수 대신 쑥을 넣고 만들었는데 무지막지하게 맛이 있었다. 감동!
한동안 이것만 먹어도 되겠다 생각했다.
토마토, 양파, 쑥, 청양고추를 다지고 연두와 레몬즙을 넣었다.
이걸 매일 먹고 싶을 만큼 맛있다!!!!!!
여전히 쑥이 많아서 뭘 할까 하다 쑥경단을 만들어 보았다.
찹쌀가루로 만드는 새알이 아니고 멥쌀가루로 했다. 그러니까 쑥개떡 반죽인 거다.
작은 새알 모양으로 빚어서 삶았다. 무늬가 있어서 그런지 작은 새알 같다.
절반은 참기름을 묻혔고,
절반은 기름에 다시 조금 튀겨서 조청 넣고 달달 볶았다. 고구마 맛탕처럼.
지난번 보다 쑥을 훨씬 더 넣고 다시 쑥개떡을 만들었다.
예쁜 떡살로 모양을 찍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런 게 있을 리 없어서, 레몬즙 짜는 도구로 모양을 찍어봤다.
아이는 조청을 찍어먹고,
남편은 꿀을 찍어 먹고,
나는 참기름 바른 것을 먹는다.
지나가는 할머니가 알려주셔서 뜯어다 먹어 본 망초 나물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나중에는 망초만 뜯으러 다닐 정도였다.
망초 나물 넣고 김밥도 말아먹고. 망초를 데쳐서 말려서 묵나물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는 코로나로 중학교 입학인 늦어지던 2020년을 엄마와 아빠와 나물 캐러 다녔던 봄으로 기억할 것이다.
매일 먹던 쑥 요리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올해도 아이는 2월 말부터 몇 번이나 "엄마 아빠만 쑥 뜯으러 가면 안돼."라고 했다.
올해도 몇 번쯤은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 손을 잡고 산에 올라가 쑥을 뜯게 될 것을 안다.
그리고 또 맛있는 쑥 요리를 해 먹겠지.
사실 찹쌀가루도 빻아서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다.
뭐니 뭐니 해도 쑥찹쌀 지짐이가 최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