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 Apr 18. 2021

아내가 스톡옵션을 받았다

딩크 라이프, 남들과는 조금 달라도

  아내가 스톡옵션을 받았다. 아내의 회사는 인센티브의 하나로 매년 몇 명을 선정해 스톡옵션을 주는데, 올해 아내가 그중 하나로 뽑힌 것이다. 스톡옵션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사실 우리 둘 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알아보니, 3년 뒤에 현재의 주가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3년 뒤에 주가가 오른 만큼 이익을 얻게 되는 것. 우리는 계산을 시작했다. 주가가 만 원이 오르면? 오 만원이 오르면? 만약 십만 원이 오르면…? 계산해보니 꽤 큰 돈이었다. 나는 꽤 들떴다. 그 돈이 생기면 뭘 하지? 대출금을 빨리 갚아야 하나? 차를 바꿀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돈은 ‘우리의 돈'이 아니니까. 그건 '아내의 돈'이니까.


  우리는 결혼을 하고도 흔히 말하는 ‘경제권’을 합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각자 돈을 벌고 각자 돈을 쓴다.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서로 동일한 금액을 모아 한 통장에 넣고 그 돈으로 모든 걸 준비했다. 집도, 가구도, 결혼식과 신혼여행도 똑같이 절반씩 부담한 셈이다. 그 통장은 자연스레 우리의 ‘생활비 통장’이 되었고, 그 통장에 연결된 신용카드는 ‘생활비 카드’가 되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 룰을 지키고 있다. 각자 월급을 받으면 정해진 생활비와 대출금을 생활비 통장에 넣는다. 그리고 함께 쓰는 비용은 생활비 카드로 결제한다. 각자의 경제적 의무는 딱 거기까지. 나머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것으로 무엇을 사든, 무엇을 하든 일절 터치하지 않는다.


  가끔은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데, 그때마다 난 매번 고민에 빠진다. 바로 결제할 카드를 고르는 순간이다. 음, 왠지 아내도 조금은 먹을 것 같은데…? 그럼 내 카드로 해야 하나, 아니면 생활비 카드로 해야 하나…? 나는 괜히 한 번 더 아내에게 묻는다. 이거 시킬 건데 먹을 거야? 음, 맛만 본다고? 고민 끝에 양심껏 내 카드를 골라 결제한다. 그리고는 다짐한다. 다음에는 꼭 아내가 좋아하는 걸 시켜야지.


  또 가끔은 생활비 카드를 쓸 때 둘 모두 관대해지는 경우도 있다. 생활비로 결제해도 분명 절반은 내 돈이 쓰이는 것이지만, 또 반대로 생각하면 절반만 내면 되지 않은가! 내 돈으로 사는 건 자꾸 주저하게 되는데 생활비로 사는 건 과감해진다. 우리는 이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이라 칭한다. 그러다 늘 생활비 카드의 명세서를 받아볼 때면 깜짝 놀라곤 한다. 우리가 이렇게나 많이 썼다고? 이번 달은 또 긴축 정책이다! 물론 지난달도 그랬지만.


  이런 방식에는 장점도,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각자의 경제권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자유 아닌가. 내가 번 돈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자유.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각자의 수입과 소비는 각자가 책임진다. 우리는 둘 다 어른이니까, 그 정도 자유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친구들에게 우리의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친구들은 대부분 아내로부터 용돈을 받는다고 했다.


  결혼을 준비하던 한 친구에게 ‘우리처럼 각자 수입을 관리해보면 어때?’라고 제안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친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답했다.

  “나랑 여자 친구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연봉도 차이가 좀 나서. 이런 상황에서 절반씩 부담하자고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고 연봉에 비례해서 비율을 정하자고 할 수도 없잖아. 무슨 남도 아니고 이제 가족인데.”

  맞는 말이다. 나와 아내가 이런 삶의 방식이 가능했던 건, 우리가 서로 비슷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연봉도 비슷했다. 부모님의 경제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걸 절반씩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합리적이 아니라 ‘냉정한’ 방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친구들은 우리의 방식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나중에 연봉 차이가 많이 나면 어떡하게? 그리고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잖아. 그때도 냉정하게 절반씩 낼 거야?”

  그 말이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나보다 아내의 연봉이 더 높다. 나도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우리 회사는 딱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연봉도 크게 오르지 않고, 인센티브도 그저 그렇다. 그에 비해 아내의 회사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아내는 능력을 인정받아 스톡옵션까지 받았다. 어쩌면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더 오래 회사를 다니며,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쯤이면 난 아마 백수가 되어 있겠지. 그땐 어떡하나. 난 아내만큼 생활비를 낼 수 있을까?


  난 이런 고민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부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경제적 인간’이니까. 결혼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돈이 많다고 해서 그 경제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가사와 육아로 인해 수입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분명 가사와 육아라는 경제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2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각자 '1인분'의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도 요즘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또 평생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자기 계발도 멈추지 않기로 다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어린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것을 스스로에게 주려고 어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알에이치코리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그 누구도 내게 공짜로 점심을 차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러므로 내 점심은 스스로 차려야 한다. 갖고 싶은 건 스스로 가져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어른이라면 그래야 하니까.






이전 07화 지금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