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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Jun 22. 2020

지금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있나요

딩크 라이프, 남들과는 조금 달라도

  지난 주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친한 친구 A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 청첩장을 나눠주는 자리였다. 청첩장을 받고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A의 신혼집으로 화제가 넘어갔다.

  “집은 어디다 구했어?”

  “OO동에 구했어. 이전 세입자가 좀 빨리 나가서 엊그제 입주했어.”

  “OO동? 왜 거기야? 너 회사 출근하기 불편하지 않나?”

  “아, 여자 친구네 집이 지금 거기거든. 여자 친구네 부모님이랑 같은 아파트로 구했어.”

  뭐라고? 처가댁이랑 같은 아파트? 심지어 같은 동이라고? A는 처음부터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가까운 곳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구하다 보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집이 나왔는데, 장모님의 권유에 못 이겨 그 집으로 결정한 것이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우리 부부와는 먼 얘기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A의 부부는 곧 아이를 가질 것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장모님의 도움이 절실할 테니까.


  A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난번 만난 친구 B가 했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B는 신혼집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고, 이사 갈 집을 구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서울 모처의 집을 사서 들어간다고 했는데, B와는 전혀 연고가 없는 동네였다. B의 부부는 둘 모두 지방 출신이라 그동안 B의 회사와 가까운 곳에 살았는데, 새 집은 회사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왜 그 동네야? 너 남편은 지금 지방에서 근무한다고 했고, 너네 회사랑은 꽤 먼데?”

  “알아보니까 그 동네가 집값에 비해서 학군이 좋대. 학군이 좋아야 집값도 안 떨어질 거고, 나중에 아기 낳을 것도 생각하면 여기가 좋겠다 싶더라고.”

  나는 그때도 공감할 순 없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좋은 학군이 중요하지, 중요하고 말고.


  주변에 결혼을 하거나 이사를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했다. 신혼집은 되도록 부모님 댁 근처로, 두 번째 집은 되도록 학군이 좋은 곳으로. 나는 그 결정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육아보다 힘든 것은 없고, 자녀 교육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래서 직장의 출퇴근 거리가 조금 멀어져도, 상대방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조금은 불편해도, 심지어 비싼 집값 때문에 생활수준이 다소 낮아져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라 하지 않았나. 자식을 위해 세 번도 이사를 가는데, 한 두 번쯤이야.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동네를 걸었다. 나는 우리 동네를 꽤 좋아한다. 서울 한 복판이지만 주변에 산이 많아서 은근히 시골 같은 느낌이 난다. 아내와 산책을 할 때면, 강원도 어딘가의 작은 도시에 있는 것 같지 않느냐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 십여 분만 걸어가면 우리가 좋아하는 카페들이 있고, 또 반대쪽으로 십여 분만 걸어가면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시장 골목도 있다. 우리는 정말 이 동네가 좋아서 이 곳으로 이사 왔다. 우리 부부의 두 번째 집, 두 번째 동네였다.


  신혼집을 떠나야 했던 건 우리 둘 모두 회사를 옮긴 탓이었다. 더구나 아내는 경기도에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면서, 신혼집이 있던 동네에서는 도저히 출퇴근이 힘들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아내의 회사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의 한 신도시를 알아보았다. 아무래도 같은 예산이면 서울보다는 나은 집이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집들은 하나 같이 마음에 들었다. 20년도 더 된 낡은 아파트에 살다가 신축 아파트를 구경해보니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아니, 다들 이런 집에 살고 있었단 말이야? 우리는 새 집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꽤나 들떴다.


  몇 개의 집을 구경하고 나와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동네가 왠지 어색했다. 생전 처음 와보는 동네라 그런가 싶으면서도 어딘가 계속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가 문제지? 주변에서 다들 살기 좋은 동네라고 했는데. 우리는 곧 어색함의 이유를 찾아냈다. 동네의 어디를 가도 유모차를 끈 부부들이 가득했다. 아파트 단지에도, 길거리에도, 동네 카페에도. 신혼부부가 많이 사는 동네라면 당연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 풍경이 우리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곳 어디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없는 동네에 우리가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쫓기듯 그곳을 떠나 왔고,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결국 아내가 희생하기로 했다. 아내의 회사로부터 조금 멀더라도,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예산 안에서 교통편이 그나마 나은 곳을 찾던 중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발견했다. 이번에도 20년이 넘은 아파트였지만, 단지에 나무가 무성한 게 마음에 들었다. 단지 곳곳 나무 그늘에 놓인 벤치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세련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여유로운 풍경. 나와 아내가 자랐던 어릴 적 아파트를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까이에 있었다. 조용한 골목길, 작은 카페들, 울창한 숲과 공원, 그런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 곳에 살기로 했다. 부모님 댁과의 거리? 아주 멀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으면 오히려 좀 멀리 있는 게 낫다고 늘 생각한다. 좋은 학군? 이 동네에는 딱히 좋은 학교가 없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던 부부도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이사를 간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야 무슨 문제인가. 깨끗한 환경? 길 건너 동네에는 꽤 낙후된 빌라촌이 있다. 만약 우리도 아이를 키웠다면, 요즘 뉴스에 나오는 부모들처럼 내 아이가 빌라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려 놀까 걱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걱정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 동네의 느낌 있는 카페들을 좋아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 둘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이 곳에 산다. 월급의 반 이상을 대출금으로 갚으며 사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우리는 앞으로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 살기로 했다. 집값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대출금을 조금 더 갚더라도, 부모님이 조금 서운해하시더라도. 우리는 지금, 살고 싶은 곳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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