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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May 06. 2020

혼수 대신 자기만의 방

딩크 라이프, 남들과는 조금 달라도

  결혼을 결심했을 때, 아내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내심 불안했다.

  “대출 없는 아파트? 1캐럿 다이아몬드 반지? 아니면 호텔에서 올리는 결혼식?”

  모두 오답이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다고 했다. 아내는 단지 한 가지를 원했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더라도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


  결혼을 준비하며 수많은 신혼집 인테리어 후기를 들여다보다가 우리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집 어디에도 혼자만의 공간은 없다는 것이다. 작은 신혼집에서 대개의 방 구조는 비슷했다. 거실과 부엌, 그리고 방은 두 개 혹은 세 개. 가장 큰 방은 침실 겸 드레스룸, 작은 방 하나는 공동의 서재,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면 드레스룸 혹은 언젠가 태어날 아이를 위한 예비 방. 우리는 의아했다. 그럼 모든 공간을 함께 쓰는 거잖아? 만약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어떡하지? 방 문을 걸어 잠가야 하나? 둘 중 하나가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건가? 이 흔한 구조에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더 신기했다.


  내가 처음 ‘내 방’을 가진 건 중학생 때쯤이었다. 그전까지는 두 살 터울의 형과 함께 방을 쓰다가, 형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은 우리에게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결혼 직전까지 쭉 내 방에서 지내왔다. 내 방은 나의 침실이자, 서재이자, 거실이었다. 가족의 거실과 부엌이 있지만, 나는 내 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두 살 터울의 오빠가 있는 아내는 더 어릴 때부터 혼자만의 방을 가졌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이후로는 홀로 자취 생활을 했다. 나보다 더 혼자만의 공간이 익숙할 터였다. 그런 우리가 결혼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만의 방이 사라진다고? 뭔가 단단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건축가가 쓴 책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부부가 한 방을 쓰느냐 각방을 쓰느냐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가의 부부는 한방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유교 사상에 따라 남자는 사랑채에, 아내는 안채에 따로 머물렀다고 한다. 중세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대개 남자의 공간과 여자의 공간은 층부터 달랐고, 각자의 침실 역시 다른 층에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중산층이 성장하고 연애결혼이 유행하면서 결혼과 동시에 부부가 한방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서윤영,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도서출판다른) 어차피 처음부터 원래 그랬던 건 없다면, 우리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결혼은 평생토록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순간,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약속은 아니다. 우리에겐 분명 혼자만의 시간도, 공간도 필요하다. 나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방’을 갖기로 했다. 


  우리는 방 세 개가 있는 작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선택했다. 가장 작은 방을 침실로 정했다. 어차피 잠만 자는 방이 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사이좋게 방 하나씩을 나눠 가졌다. 가구도, 배치도, 조명까지도 원하는 대로 각자의 방을 꾸몄다. 나는 전부터 꿈꿔 왔던 나무 무늬 상판을 올린 커다란 책상을 놓았다. 건축가의 사무실에나 있을 법한 은색 테이블 램프가 책상 위에 올라 있고, 방 한 켠은 커다란 검은색 철제 서랍장이 차지했다. 아내의 방은 보다 화사하다. 하얀 테이블이 방 한가운데를 차지했고, 아내가 모아 온 수많은 문구들이 책상 위를 수놓았다. 하얀색 우드 블라인드 위에는 알록달록한 포스터와 엽서가 붙었다. 두 개의 방은 마주하고 있지만, 문을 열면 완전히 다른 각자의 세상이 그 안에 있었다. 


  집에서는 함께 있을 때도 많지만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많다. 아내는 주로 아침 시간을 방에서 보낸다. 아내는 혼자 하는 아침 식사를 좋아한다. 작은 트레이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담아 아내의 방 테이블에서 조용한 아침 식사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 역시 혼자 보내고 싶은 시간이 있다. 주로 늦은 저녁 시간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TV를 보거나 할 때면 나는 어두운 방에 조그만 테이블 램프를 켜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주말 저녁이면 혼자 술을 마시며 유럽 축구 중계를 보는 것은 나의 크나큰 낙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안 그래도 좁은 집에 방 두 개를 각자 쓰다 보면 비효율적인 부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작은 방에 각자의 책상, 각자의 사물들과 옷까지 모두 한 방에 몰아넣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질러도 내가 어지럽힌 방이 낫다. 남이 어지럽힌 것을 정리하는 것이 더 화나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방은 각자 스스로 청소하는 것으로 규칙을 정했다. 때때로 서로 다퉜을 때면 각자의 방은 커다란 성벽이 되기도 한다. 화가 난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굳게 닫힌 아내의 방문을 바라보는 일은 슬프기 짝이 없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음을 깨닫곤 한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에서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 후 거실에 마주 앉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우리를 바라보며 쓸데없는 남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방을 쓴다고? 그럴 거면 뭐하러 결혼을 했어? 그거 별거로 가는 지름길 아니야?”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거실과 침실에서 다시 만난다. 혼자 있는 시간만큼 함께 하는 시간도 충분하다. 어쩌면 모든 것을 함께 하고 모든 행복을 함께 누리는 것만큼 낭만적인 사랑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가능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낭만에 지친 사람들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남자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이런 이야기들 말이다. 

  “결혼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여자 친구가 집에 놀러 왔는데, 집에를 안 가. 내일이 돼도 집에 안 가고, 다음 주가 돼도 집에를 안 가.”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권한다. 부디 자기만의 방을 가져보라고.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책 <자기만의 방>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여 각자 연간 500파운드와 자신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인간을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면.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그녀는 1900년 대 당시 여성의 경제적, 정신적 자유를 위해 ‘자기만의 방’을 제안했다. 하지만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라고 무엇이 다를까. 그녀가 외쳤던 자유를 우리는 온전히 누리고 있을까. 적어도 나와 아내는 집에서의 정신적 자유를 지키고 싶었다. 결혼이 자유를 빼앗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대부분 함께 하고 싶지만, 때로는 자유롭고 싶으니까. 그럴 땐 자유로워야 한다. 서로의 자유를 걱정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그 자유가 우리를 다시 서로에게로 데려다 놓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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