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이 Jun 04. 2020

그랜드 피아노는 사양하겠습니다

어쩌다, 딩크 라이프

  우리가 딩크 부부임을 밝히면 사람들은 항상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한다.

  “대체 왜 아이를 안 갖기로 한 거야?”

  물론 그 이유를 수도 없이 댈 수 있다. 우리와 같은 딩크 부부의 이야기로 글을 써 책을 낸 브런치 작가 ‘꽃샘’은 그녀의 책 에필로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아이 낳지 않을 이유로 책 한 권 써도 모자라.” 말이 씨가 됐다. 정말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책 한 권을 써내고야 말았다. 무언가의 부재에 대해서 책 한 권을 써내다니.
이샛별, <우리 둘만 행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싸이프레스


  하지만 나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럼 아이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개는 아무 의심 없이 그 당연한 길로 들어선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과 육아를 하는 삶의 길. 나도 처음엔 그랬다. 결혼 전부터 아내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해왔지만 사실 난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준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 나중에 아이를 나면 이름을 뭐라고 짓고 싶어? 생각해둔 이름 있어?”

  “오빠, 무슨 소리야? 나 아이 안 낳을 거라고 했잖아.”

  “아니, 지금 당장이 아니라, 정말 나중에 혹시라도 낳게 될 수도 있잖아?”

  “나는 정말 나중에 혹시라도 안 낳을 건데?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농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꽤 심각해졌다. 나는 지금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는 보다 확고했다. 나중에라도 아이를 갖고 싶은 거라면 지금이라도 결혼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그제야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왜 낳지 않아야 하는지. 그랬을 때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지, 아주 먼 훗 날에는 어떻게 될지,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인생은 어떤 모습인지 까지. 어쩌면 이 문제 때문에 '결혼'과 '부부'의 의미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얼떨결에 아이가 생기고, 남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긴 이야기와 깊은 고민 끝에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결혼을 하기로 했고, 아이를 갖기 않기로 했다. 


  아이를 가지면 안 되는 치명적인 이유란 건 없다. 아이 없이 사는 삶에서 무언가 대단한 걸 얻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결론은 반대의 질문에서 나왔다. ‘왜 아이를 가져야 하지?’의 질문 말이다. 우리에겐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가 없었다. 물론 자식을 낳아 기르고, 후세를 만드는 것이 인간의, 나아가 모든 생명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인간이 스스로의 본성을 바꿈으로써 누리고 사는 것들이 지금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출산과 양육도 인간의 본능이지만, 행복 추구와 자아실현도 똑같이 중요한 본능이다. 우리에겐 후자 쪽이 더 중요했다. 


  아이를 키움으로써 부모가 느낄 행복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감히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행복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 역시 반드시 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한 부모의 희생 말이다. 행복이 너무 큰 나머지 그 희생이 고통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나와 아내가 각자 누리고 싶은 생활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아주 현실적으로는 육아와 양육을 위해 아주 많은 시간과 돈도 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먼 훗날의 커다란 행복을 위해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지금 우리가 아이 없이도 충분히 누리고 있는 소소한 행복을 이어가기를 선택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중략) 이십평대 아파트에는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준비를 하며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금과 기본적으로 들어가게 될 생활비를 하나하나 정리해 엑셀 파일로 만든 적이 있다. 앞으로도 둘 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다는 전제 하에 아주 딱 맞는 가계부가 만들어졌다. 조금의 여유나 빈 틈도 없는 가계부. 순간 생각했다. 여기서 아이가 생긴다면? 경제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밖에서 보내고 해가 진 뒤에야 집에 돌아온다. 그 짧은 저녁과 주말에야 우리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진다. 여기에 육아가 더해진다면? 답은 분명했다. 누군가 그랜드 피아노를 준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을 갖는 것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당연한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갖지 않는 것도 행복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괜한 욕심에, 남들이 다 가지고 있어서, 혹은 누군가 부추기는 바람에 갖지 않아도 될 것을 애써 가짐으로써 되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우리 부부에게 그랜드 피아노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혼 후에 아내는 작은 전자 피아노를 사서 거실 한 편에 놓았다. 우리는 그걸로 충분했다. 주말이면 종종 아내는 전자 피아노 앞에 앉는다. 나는 그 피아노 소리를 사랑한다. 




이전 02화 우리 진짜 부부 맞다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