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딩크 라이프
결혼한 지 일 년째 되던 해, 우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긴 줄에 서 있을 때였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가족은 입국 심사 같이 받아도 되지 않나?”
“그렇지. 우리는 결혼했으니까 이제 가족이네. 줄도 긴데 같이 받을까?”
“그러자. 근데 쟤네가 우리가 가족인 줄 어떻게 알까? 가족관계증명서도 없는데.”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당당히 둘이 함께 심사대 앞에 섰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심사관이 물어 왔다.
“너희 둘은 가족이야? 남매? 부부?”
“응, 우리는 부부야.”
“결혼반지 보여줄래?”
“결혼반지? 잃어버릴까 봐 안 끼고 왔어. 근데 그게 문제야?”
순간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심사관은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언제 결혼했어?”
“우리 작년에 결혼했어.”
“그럼 결혼기념일 얘기해봐. 잠깐, (나를 가리키며) 이번엔 너가 대답해봐.”
나는 일순간 당황해서 머뭇거리다 더듬더듬 날짜를 이야기했다. 심사관의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아무래도 우리를 위장 부부로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밀입국자들이 미국 입국을 위해 부부로 위장하는 사례가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 뒤로도 진짜 부부가 맞는지를 테스트하는 몇 개의 질문이 더 날아왔다. 우리가 아무리 답해도 심사관은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몇 번을 더 물었다.
“너네 진짜 부부 맞아?”
“맞다니까!”
“진짜야??”
“당연하지!!”
우리는 억울했다. 우리가 부부인 게 그렇게도 믿기 어려울 일인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부만큼 증명하기 어려운 관계도 없는 것 같다. 마치 연인에게 너희의 사랑을 증명해보라고 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 아닌가. 물론, 둘을 똑 닮은 아이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 이미 혼인신고를 마쳤다. 꽤 의미 있는 절차라고 생각했던 우리는 각자 반차 휴가를 내고 구청 앞에서 만나 손을 꼭 잡고 들어갔다. 하지만 혼인신고는 허무할 정도로 금방 끝났다. 서류는 이미 다 작성해왔고 제출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담당 공무원은 완료되면 문자가 갈 테니 이제 가면 된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여 박수라도 쳐 주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보다는 낭만적일 줄 알았던 우리는 허탈했다. 이렇게나 쉽다고? 부동산을 계약할 때는 서류를 몇 번을 확인하고, 도장을 몇 번을 찍고, 긴장을 얼마나 했는데? 부부가 되는 것이 이토록 쉽다면 헤어지는 일도 마찬가지로 쉬우려나. 혼인 신고를 마친 우리에게 주어진 증명서는 ‘가족관계증명서’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부부라는 관계는 아주 나약하고 가느다란 끈 같은 것이다.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관계 중에서도 가장 느슨하고 허술한 관계. 결혼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 끈은 한 사람의 마음만 변해도 언제든 툭 하고 끊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갖는지도 모르겠다. 더 강력한 끈을 가지고 싶어서.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서로의 마음에만 이 관계를 맡겨둘 수 없어서.
이렇게 나약한 관계에 불과한 것을 알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다. 사실 꽤 가까운 친구들도 우리의 결혼에 의아해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는데도 결혼을 굳이 해야 돼? 사랑을 하고 싶으면 연애를 계속하면 되고, 같이 살고 싶으면 동거를 하면 되잖아. 굳이 결혼을 해서 얻는 게 뭐가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둘이 행복하게 사는 게 목적이라면 꼭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결혼은 약속이자 선언이었다. 그게 결혼의 의미였고, 우리는 그 의미가 중요했다.
‘결혼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사람이 영원한 사랑을 믿으며,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한눈팔지 않고 상대에게 충실하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이것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개념이다. (중략) 내 생각에 결혼의 핵심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겠다는 선언에 있다. 그 선언을 더 넓은 세상에 할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 굳건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식은 거부하되 혼인신고는 했다. 우리는 국가를 향해 선언했다.’
장강명, <5년 만의 신혼여행>, 한겨레출판
누군가는 그 약속과 선언을 결혼식에 으레 포함되는 식순의 하나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가 장강명의 부부가 그러했듯 우리에게도 결혼의 본질은 그 약속이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상, 우리를 이어 줄 것은 그 약속 하나뿐이었다. 그러므로 부부가 되어 얻는 것이 비록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뿐이라 할지라도, 결혼은 분명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나 연애, 동거보다는 더 깊은, 그리고 더 오랜 것을 함께 나누자는 약속으로서.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청에 제출했던 서류 속에서, 그리고 지금 이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입국 심사관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이런 이야기들을 입국 심사관에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심사관은 우리에게 열띤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너희는 미국에서 일자리를 절대 가지면 안 돼, 비자 기간이 끝나기 전에 꼭 너희 나라로 돌아가야 해, 우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씨(I see)’로 응답했다. 마침내 우리의 여권에 못 미더운 입국 도장이 찍혔다. 공항을 떠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 고초를 겪지 말자고. 우리가 부부인 것은 틀림없지만, 다음부턴 반드시 입국 심사를 따로 받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