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딩크 라이프
오늘도 나와 아내는 ‘궁예질’을 하고 있다.
“걔네 부부 왠지… 딩크일 것 같지 않아?”
“그치…? 왠지 아기 안 낳을 것 같지?”
물론 그들이 딩크이건 말건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꽤 민감한 질문인지라 속시원히 물어보지도 못한다. 그저 우리끼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누군가의 SNS를 볼 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멋대로 추측’(궁예질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할 뿐이다. 그래도 어딘가 우리와 비슷한 삶의 방식이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면 괜한 추측들을 하게 된다. 비슷한 종족을 만났을 때 느끼는 어떤 ‘촉’ 같은 것이랄까.
우리가 관찰하는 ‘딩크의 관상’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먼저, 부부가 각자의 일이나 자기 계발에 열정적인 경우. 아무래도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커리어에 끼치는 영향을 걱정할 수 있으니. 다음은 둘이 함께 즐기는 취미생활, 특히 익스트림 스포츠나 아웃도어 액티비티 같은 것들이 있는 경우. 임신과 육아로 그 취미를 멈추고 싶지 않아서 출산을 차일피일 미루는 부부들을 종종 보았다. 혹은 반려동물을 한 마리 이상 키우고 있는지. 확실히 반려동물이 함께 있으면 자녀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이런 조건들에 한 두 개쯤 해당되면 딩크 부부일 확률이 높다는 게 우리 나름의 관찰 결과이다.
가끔 TV에서 연예인 부부를 볼 때도 이런 추측들을 하곤 하는데, 사실 (공식적으로 선언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건 가수 이효리, 이상순 씨 부부였다. 그들의 집에서 찍은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그들이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내심 기대도 했다. 그 부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딩크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딩크 부부에 대한 편견, 이를테면 부부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든지, 나이가 들면 외로울 것이라든지, 하는 오해들을 불식시켜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얼마 전 한 프로그램에서 이효리 씨가 폭탄선언(?)을 했다.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고 지금 임신을 준비 중이라고. 물론 그녀의 임신과 출산,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하지만,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어버렸다. 마치 다 같이 연애하지 말자던 친구 중 하나가 어느 날 이성 친구를 떡하니 데려온 느낌이랄까. 아니면 지금까지는 우리와의 공통점이 하나 정도는 있었는데 이제 그것마저 없어졌기 때문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적 서운함을 조용히 삭이며, 우리는 그녀 부부의 임신이 성공하기를 멀리서 빌어주었다.
사실 딩크가 될 관상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애초에 ‘딩크족’이란 건 그저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에 대해 붙이는 이름이다. 그 결심이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가벼운 것이다. 내 주변에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가 나중에 아이를 가진 부부들이 수두룩하다. 일에 열정이 있다고 해서, 취미를 사랑한다고 해서, 반려동물이 함께 한다고 해서 그 마음이 변치 않는 것은 분명 아니다. 혹은 의도치 않게 아기가 생길 수도 있고, 양가 어른들의 절실함에 못 이겨 타협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끔 주변에서 이런 속내를 털어놓을 때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이 사람과 결혼은 하고 싶은데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달라. 결혼해도 되는 걸까?”
“아예 처음부터 아이 가질 생각이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하나봐. 그게 제일 맞추기 어려운 것 같아.”
자녀에 대한 생각이 다르면 결혼하면 안 되는 걸까? 아예 연애도 시작하면 안 되는 걸까? 고민 끝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것만으로 결정해버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그 결심과 마음의 단호함은 언제든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가치관이 얼마나 잘 맞는가’라고 생각한다. 가치관이라고 하니 좀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해 두 사람이 꿈꾸는 삶의 모습, 일상의 장면이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게 완벽히 일치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더 중요한 건, 그 꿈을 맞춰나가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설득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은 꿈꾸는 삶에 아이가 반드시 한 명쯤 있지만, 상대방은 반드시 없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간극을 두 사람이 함께 얼마나 줄여나갈 수 있을지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아무런 논의 없이, ‘결혼하면 아이 한 명쯤은 있어야지’, ‘아이를 안 낳을 거면 뭐하러 결혼해?’라는 말로 당연함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 사람이라 좋아했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창비
결심은 늘 힘이 약하다. 진정 힘이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아이가 있어도, 아이가 없어도 이 사람과는 행복할 수 있겠다는 믿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나의 행복을 희생시키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게 있으면 됐다. 그러면 연애든, 결혼이든, 육아든 시작하자. 믿어도 좋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고, 여전히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