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딩크 라이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너희는 아이를 언제쯤 가질 계획이야?”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우리는 아이 생각이 없다고. 그러자 상대가 다시 물었다.
“너네가 그 말로만 듣던 ‘딩크족’이구나?”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딩크? 히딩크? 히딩크 감독님은 아는데… 딩크는 또 뭐야??”
DINK. ‘Double Income No Kids.’ 쉽게 말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하는 신조어라고 했다. 좀 더 정확한 의미로는 부부가 각자 경제 활동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출산을 하지 않고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요즘 사람들을 부르는 단어였다. 수많은 ‘무슨 무슨 족’ 중에 나도 뭔가 하나는 속하겠지 했는데, 그게 ‘딩크족’이라니. 우선 ‘딩크’라는 어감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히딩크가 자꾸만 떠오르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히딩크는 자녀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나와 아내가 ‘딩크족’이 되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단지 우리는 결혼하기 전부터 한 가지 생각만큼은 똑같이 확고했다. 아이를 낳지 말자는 것. 우선 우리 둘 모두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조그만 아기들을 마주쳐도, 다른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생각을 딱히 한 적이 없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피붙이가 생기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조카가 생기고 나서도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조카는 나를 조금 더 많이 닮았고 귀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생기지 않았다. 아내도 나와 비슷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마’나 ‘아빠’로 불리는 것을 꿈꿔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와 아내가 꿈꾸는 훗날의 모습은 ‘엄마’와 ‘아빠’가 되는 대신 각자가 하고 있는 ‘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 때 어떤 선배는 나에게 충고랍시고 결혼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그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남자는 확실히 결혼을 하면 안정감이 생겨. 일단 옷 입고 다니는 것만 봐도 혼자 사는 남자와 와이프가 챙겨주는 남자는 다르다니까. 그리고 결혼을 하고 조금 귀찮아지기 시작하지? 그럼 아기를 낳아. 그때부터 와이프는 아기만 보고 있을 거야. 그럼 넌 다시 편해질 거고.”
그 선배의 옷차림을 아무리 살펴봐도 혼자 사는 남자보다 어디가 나은지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일 잘하는 내 여자 친구가 왜 나와 내 자녀를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약속했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을 위한 삶을 살지는 말자고.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돈도 버는 각자의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둘 모두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돈을 번다는 이유로 어쩌다 보니 ‘딩크족’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왜인지 떳떳하지 못했다. 먼저 부모님 앞에서부터 그랬다. ‘그래도 하나는 낳아야지.’라는 말씀을 얼굴을 볼 때마다 하시는 부모님에게 ‘저희는 딩크족인데요!’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못했다. 친구나 회사 동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왜 안 낳으려고 해?”
“실수로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
와 같이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부터,
“나도 안 낳으려고 했는데, 좀 더 살아보면 달라지더라.”
“그럼 너 죽을 때 장례식은 누가 치러주냐.”
등등의 편협한 잔소리까지. ‘딩밍아웃’을 하고 나서 들이닥치는 후폭풍이 꽤나 성가셨다. 한 편으로는 은근히 자신이 없기도 했다. 혹시 나중에 우리도 생각이 바뀌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어쩌지? 그렇게 되면 내가 지금껏 했던 말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비웃겠지? 세상에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저 ‘지금은 별로 생각이 없어요.’라는 말로 재빨리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를 가지려고 남편과 함께 노력했고, 임신을 했지만 초기에 유산이 되어 버렸다고. 그 때문에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고, 오히려 내가 왜 아이를 가져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나는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라고, 그 이유를 찾을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지만 얼마 후 그녀는 다시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그 결심의 이유가 놀라웠다. 그녀의 가까운 친구가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야, 너 지금 남편이랑 좋은 게 얼마나 갈 것 같아? 나는 아이를 안 낳았으면 진작에 이혼했을 거야.”
이 말에 그녀는 두려웠다고 했다. 사랑 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아서. 사랑의 감정보다 강력하게 둘을 이어 줄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것은 두 사람을 비로소 핏줄로 이어 줄 ‘아기’ 뿐인 것 같아서. 두려움이었다. 부모가 될 자신도, 되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아이를 갖게 만드는 것. 여태껏 꿈꿔왔던 많은 것들을 끝내 포기하게 만드는 것.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없게 하는 것. 남들이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대부분은 그 두려움에 지고 만다. 그리고 떳떳한 ‘부모’가 되고 나면 여전히 고민 중인 누군가에게 그 두려움을 물려준다. 흥, 아이를 낳지 않고도 행복하겠다고? 그게 될 것 같아? 아이를 낳아 보라고. 그 두려움들은 모두 사라질 거라고.
나도 한 때는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흔들림 없이 사랑을 지키는 부부들이 분명히 있다. 아이 없이도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살아간다. 둘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분명 가족이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워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어 졌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아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한 일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두려움을 강요받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결혼을 왜 했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답한다. ‘아내와 함께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나는 아내에게 결혼을 청하며 ‘내 아를 낳아도!’라고 말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넌 나만 바라봐.’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날 닮은 아이를 갖고 싶어서, 혹은 사랑을 박제하고 싶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둘이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딩크족’이라고 부르던 ‘히딩크’라고 부르던 중요치 않다. 우리는 그저 가장 행복하게 사는 삶을 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내가 더 행복하게 해 줄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