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잘 부탁합니다
이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 나는 한동안 브런치를 떠났다가 돌아온 상태였다. 떠나기 전 몇 달은 글쓰기 모임에서 '매일쓰기'란 걸 하고 있었다. 분량은 상관없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인증하는 미션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며 잘 쓰고 싶고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일 때문에, 가사와 육아, 주변사람들, 컨디션 등 다양한 난제로 꾸준히 글을 쓰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어쨌든 나는 글로 인해 지장을 받는 일이 전혀 없다는 듯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글로 채우고 싶었기에 가끔은 허덕이면서도 꾸역꾸역 쓰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코로나 시절이라 일이 줄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고, 글을 쓴다는 게 힘들어도 재미와 보람이 있었기에 욕심을 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사람들로 인한 동기부여와 자극, 여유가 있다고 해서 글이 술술 써지지는 않았다. 처음의 의욕과 달리 나는 갈수록 조급한 마음에 쫓기고 있었다. 쓰지 못하는 핑계가 하나둘 생겨났고 왜 힘들게 이걸 매일 해야 하는지 조금씩 회의가 들었다.
마감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싶었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확인을 받아야 하는 숙제, 제출해야 할 일기와 비슷해져 버린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계속 뒤로 밀려났고, 그러자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까지 사라져 버렸다.
글쓰기가 싫어진 이유는 더 있다. 나는 브런치라는 공간을 그저 글쓰기 노트로만 생각했다. 나의 글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가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이 좋았다가 싫은 마음이 공존했다. 마치 일기를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보이는 게 싫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 같은 나의 마음이 답답하고 이중적인 마음이 나도 이해가 안된다)
의무감으로 올리는 글은 양과 질에서 실망감을 가져왔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 같지 않다는 현실자각의 벽에 심하게 부딪혀 버렸다. 대체 나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또한 나는 내 글에만 신경을 썼기에 다른 사람들의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사실만 중요했고 글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은 놔두고 무엇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은 깊었지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내야 할지 몰라 자기 검열만 되풀이했다. 쓰는 행위에 자꾸 의미부여를 하자 정신이 피곤해졌고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글을 보고 있자니 울적해졌다. 빈 화면이 무서웠다.
이제 달라지고 싶다. 전에 쓴 글들은 들추고 싶지 않은 과거 같아서 읽지 않고 있다가 다시 읽어보니 과연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성의 없어 보였다. 여전히 글은 쉽지 않지만 지금은 발행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글을 천천히 되새겨 읽어 보고 오래 매만져 다듬는다. 내 글을 누가 읽을까 따지기 보단 일단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써본다. 진지한 글과 가벼운 글을 오고 가며 단조로운 글과 시적인 글도 엮어보고 사진과 음악을 곁들여 본다. 내 마음이 글과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일들을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눈으로 밑줄을 치며 공감하고 정성껏 주고받는 한 줄 댓글에 위안을 얻는다. 보이는 글에 보이지 않는 진심을 고스란히 길어 올리는 요즘의 글쓰기가 참 평화롭다. 그때는 없었지만 오늘의 나에게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