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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Aug 23. 2022

콩자

2020년 12월 15일의 기록

그 커피나무의 이름은 ‘콩자’였다. 콩자는 나의 반려식물이었다.


볕이 잘 들던 사무실 창가 한편을 차지한 콩자는 사무실 구성원 모두의 보살핌을 받으며 애지중지 길러졌다. 콩자는 내가 첫 소설을 쓰는 내내 곁에 있었고, 그렇게 쓴 글로 엮은 책의 발표회에도 참석하여 자리를 지켰다. 나는 서늘한 공기가 행여 추위에 약한 콩자를 해칠까 서툰 뜨개질로 옷도 지어 입혔다. 영양 공급에 좋다 하여 불린 현미를 얹어 주었다가, 잘못하면 벼가 자라 버린다는 말에 서둘러 털어낸 적도 있었고, 비료 삼아 커피 원두 가루를 주었다가 뿌리가 썩어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에어컨 실외기 위로 산책을 보내어 흠뻑 비를 맞게 했고, 바람 좋은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고 콩자와 함께 햇살을 맞았다. 어느새 키가 훌쩍 커버린 콩자의 첫 분갈이를 하고 제대로 한 게 맞는지 조마조마한 한 때를 보내기도 했었지만 콩자는 금세 새 봉오리를 틔워 파릇한 여린 잎을 피웠다.


커피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적어도 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나는 나의 반려식물 콩자의 꽃을 보고 싶었다.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울에 관해 떠올릴 때면 눈앞에 늘 콩자가 어른거린다. 잎의 윤기와 부드러움이, 그걸 반짝이게 비추던 따뜻한 햇살이 생각난다. 시들시들 말라 힘을 잃어가던 모습과 콩자를 묻었던 화단 흙의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생각난다.


스스로 비정상적 일정도로 우울하다고 느낀 것은 그 무렵이었다. 나는 말수가 줄었고, 표정이 없어졌다. 헤프던 눈물마저 사라졌다. 말 그대로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곁에서 나를 지켜보던 동료는 어느 날 내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요즘 콩자가 시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냐고, 그리고 너도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내가 우울할 이유는 많았다. 돈을 벌지 못해서, 미래가 불투명해서, 과거가 후회돼서, 그리고 뚱뚱해서. 당시 나는 일명 ‘다이어트 약’인 식욕 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복용했던 식욕 억제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이었고, 장기 복용했을 때 부작용이 만만찮은 약이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용기 내어 첫 방문한 정신과는 생각보다 따뜻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웬만한 내과만큼 사람이 많아서 놀랐고, 겉으로 보기엔 모두 ‘멀쩡’ 해 보여서 놀랐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진료실에 들어가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나는 약을 먹게 될까, 이거 기록에 남나? 이런 생각을 하다 깜빡 졸기까지 했다.


어떻게 왔어요?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살아온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의사 선생님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는데도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우울한 사람임을 증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그동안 참 힘들었겠다.’ 한 마디에 나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구나.


병원에서는 2주 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신기하게도 약국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프라이버시 때문인지 병원에서 바로 약을 지어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약을 먹어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꾸준히 약을 먹었다. 약을 먹으면 잠을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날, 나는 아무도 없는 밤중에 사무실에 들렀다. 잎이 까맣게 죽어버린 콩자를 데리고 나와 묻었다. 손수 만들어 주었던 이름표를 땅에 꽂고, 안녕, 이라고 작게 말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벗어났다.


호밀밭출판사 We-rite 참여 원고

http://bu-rite.com/bbs/board.php?bo_table=we1&wr_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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