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박경주 May 30. 2020

#5. 기소유예

[르포 소설] 가족

 민정은 매번 큰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형사사건의 친고죄가 폐지 됐다고는 하지만, 사망자 부모의 위임장으로도 얻을 수 없는 사건자료가 수두룩했다.

 원주에 있는 관할 경찰서 민원실에 들렸을 때, 담당자는 박주란의 주민등록등본 또는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며 접수를 반려했다.

 주란의 신혼집 근처 구청에 들렸을 때, 담당자는 주란의 친필로 작성된 위임장이 있어야 주민등록등본 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가족관계증명서라도 발급해달라고 간청했지만 친부의 위임장으로는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주란이 갑자기 죽고 나서 민정은 울지 않았다. 가장 슬픈 사람은 민정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주란이었다. 민정은 주란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울지 말자 결심했었다.

 10년 가까이 묵혔던 미안함과 무력감이 민정의 심연에서 끓어올랐다. 민정의 작은 몸에서 흘러나온 슬픔은 구청 민원실 전체로 팽창해 갔다. 민정의 세상이 지금 여기에 멈춰버렸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느꼈다. 민정은 그렇게 울면서 민원창구에 서 있었고, 사람들이 민정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민원신청인들이었다. 불편한 분위기를 느낀 담당자는 울상을 지으며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


 “필요한 자료가……, 수사자료 일체? 내사결과보고서 일부만 가능합니다. 피의자와 참고인 진술서……. 이건 당사자들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민정이 가족관계증명서와 위임장을 보여주자 담당 형사가 설명했다. 그는 업무용 컴퓨터를 통해 사건자료에 접속하더니 주란의 사건번호를 알려줬다.     


 사건번호 20093411      


 원주 검찰청 민원실에 들렸을 때 사건자료는 이미 폐기되고 없었다. 검찰청 보관기간은 3년이었다.

 “10년 전에 재정신청을 했더라면 판결에 대해 재검토가 가능했는데, 왜 가만히 있었습니까?”

 민원 담당자가 입 꼬리 한쪽을 뾰족하게 올렸다.

 "알려드리죠. 피해자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요양원에 있었고요. 경찰은 피해자 아버지에게 조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죠. 피의자 하성재는 고의적으로 친구인 저와 연락을 단절했었죠. 하성재가 폭행죄로 송치됐었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알게 됐네요. 혹시 지금이라도 재정신청을 할 수 있을까요?"

 민정은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 사이 민원 담당자의 입 꼬리를 아래로 축 쳐졌다. 그는 신속하게 마우스를 눌러 사건결과가 조회된 모니터 화면을 출력했다. 민정의 손에 출력물이 전달되자, 민정의 슬픈 노래는 멈췄다.     


 강원지검: 2009 형제 20201-1 하성재

 처분일자: 2009년 5월 4일

 죄명: 폭행죄

 처분: 기소유예

 공소시효: 2014년 1월 19일     


 폭행죄의 공소시효는 5년. 민정은 실소를 터뜨렸다. 하성재가 주란의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한 기간과 일치했다. 성재가 지원을 중단한 이유는 공소시효 만료였다. 주란엄마가 더 오래 살았다 해도, 어차피 그는 지원을 멈췄으리라. 그는 상상보다 훨씬 더 용의주도한 사람일게 분명했다. 민정은 서류봉투를 품에 꼭 안고 밖으로 나왔다. 12월 초, 을씨년스런 바람이 민정의 양쪽 뺨에 부딪혔다.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며칠 후, 사건 기록 담당자인 이 형사가 민정에게 연락했다. 보관기간 5년이 만료됐는데도 사건 자료가 보관 중이었다. 10년 전, 수사를 담당했던 최 형사가 자료를 보관해온 것이다. 수사결과에 대해 석연치 않은 마음이 있었다고 했다. 이 형사는 하성재에게 연락해 진술서 열람 동의여부를 물었다. 대부분의 피의자는 자료열람을 반대한다는데, 성재는 괜찮다고 답했다고 했다.

 이 형사가 보내온 메일을 여는 민정의 손끝이 떨렸다. 수사보고서, 현장 사진, 검안의 의견서, 피의자 하성재 진술서, 참고인 경비원 진술서 그리고 유품 목록이 첨부돼 있었다. 민정은 모든 자료를 출력했다

 주란의 검안 사진을 보면서 민정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사망한 주란의 인중에는 검붉은 색 코피가 굳어있었고, 왼쪽 팔꿈치는 부러진 채 바깥으로 접혀 있었다. 그런데 눈을 뜬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주란의 얼굴이 너무 멀쩡해 보였다. 14층 높이에서 추락했다는데 두개골에는 별다른 부상이 없어 보였다. 드라마에서 봤던 전형적인 추락사 모습과 달랐다.     


 추락사 사망원인      


 민정은 컴퓨터를 켜 검색창에 이렇게 입력했다. 연관검색어로 ‘두개골 골절’이 나왔다. 검안의가 작성한 의견서에는 두개골 골절은 아예 적혀 있지도 않았다. 의학 분야에 아는 사람만 있다면 물어볼 수도 있을 텐데. 민정의 인맥을 아무리 끝까지 파헤쳐보아도 의학과 관련된 분야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민정은 ‘밀알봉사단’에 게시물을 올렸다. 의료봉사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다.     


 도와주세요! 제 친구가 아파트에서 추락해서 사망했는데 두개골 부상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게 가능한한가요? 법의학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소시효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되도록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민정은 사건자료를 혼자서 분석해서 고소장을 만들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도움을 받을 변호사를 구해보려 애썼지만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민정은 혼자서 고소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 해내려면 좀 더 집중해야 했다. 민정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다.



글/사진: 박경주

이전 15화 #4. 목숨 값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박경주 르포소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