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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23. 2020

#4. 목숨 값

[르포 소설] 가족

 주란의 10주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민정은 주란의 엄마와 10주기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박주란 씨 어머니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요양원 원장이 전화기 너머에서 민정에게 말했다. 원장은 가족이 장례비용을 보내줘서 간단한 장례미사로 어머니를 잘 보내드렸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가족? 민정이 알기로 주란의 엄마는 일찍 이혼한 전 남편 외에 다른 가족이 없다. 주란이 아직 걸음마도 떼기 전에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민정은 주란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주란이 상처를 받을까 봐 민정은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해 묻지 않았었다.

 “어머니의 요양비도 아버지가 보내주셨습니다.”

 원장은 자세한 내용은 아버지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연락처를 알려줬다.      


 “아이구, 내가 딸년한테 해 준거 없으니, 내가 안 받을려 했지. 아니 근데, 사위가 울면서 전화를 안 끊는겨. 주란이가 불쌍허다면서. 마음이 짠하더라구우.”

 딸의 사망 후 10여 년 만에 걸려온 딸 친구의 전화에 주란의 아버지는 분명 울고 있었다.

 주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참혹했다.


 주란이 사망한 그날, 하성재는 장인에게 연락했다. 혼인 신고 전, 주란이 한 번 만나게 해 줬기 때문에 성재는 장인의 연락처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장인에게 주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생활비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장인은 필요 없다고 했고, 그는 위로금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으라, 설득했다. 그는 요양원 입원비와 장인의 생활비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이후 성재가 보내온 편지 봉투 안에는, 사위인 그가 가족을 돌보기로 했으니 양형을 가볍게 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가 들어있었다. 장인은 서류에 지장을 찍어서 그에게 보냈다. 며칠 뒤 그는 장인의 통장에 삼천만 원을 입금했다. 성재는 장례절차도 없이 주란의 시신을 화장했다. 그는 주란의 유골함을 퀵서비스로 장인에게 보냈다. 주란의 아버지는 딸의 유해를 당산저수지에 뿌렸다.


 민정이 한 달이 넘게 수없이 연락했건만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하성재. 그때 그는 주란의 아버지에게 탄원서를 부탁하고 있었다. 가족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돼 저수지 수면 위로 흩어졌을 주란의 넋. 그 모습을 생각하니, 묵혀뒀던 서러움이 민정에게 몰려왔다. 주란의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 세상에 남은 주란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수사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어? 몰러. 경찰이 나한테 연락한 적도 없구먼.”

 몸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민정은 통화를 마쳤다.     



 다음 날, 민정은 학원 강의를 휴강하고 오전 일찍 당진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가방에는 주란에게 선물하려던 차기(茶器)가 들어 있었다.

 정오도 채 안 된 시간, 당진 터미널 앞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주란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다. 밥상 위에는 빈 막걸리 병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반찬도 없이 김치 하나를 안주로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외모에 주란의 모습이 겹쳤다. 그을린 피부와 앙상한 몸매에도 누추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민정이 앉자 그는 전날 다하지 못한 남은 이야기를 털어냈다.


 주란의 엄마와 이혼하고 나서 그는 당진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남의 논에 농사를 지어 그럭저럭 살았지만, 나중에는 일용직으로 막노동을 하면서 근근이 삶을 이어나갔다. 그는 한 번도 주란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주소를 알았는지, 주란이 결혼 전에 남편감을 데리고 당진에 인사를 왔다. 딸이 죽고 나서 사위가 보내주는 생활비는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아휴, 그 나쁜 넘이 말여, 어? 주란 엄마 살아 있을 때 까지는 그 생활비 보내줬는데, 그 후론 돈두 연락두 뚝 끊겼지 뭐여! 아휴. 생면부지인 민정 씨가 나 대신 형사 고발해준다고 혀니 아휴. 눈물 나게 고맙구먼.”  

 주란의 아버지는 그 돈이 딸의 목숨 값이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민정이 준비해온 위임장을 내보이자, 그는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지장을 찍었다.      


 민정의 발길은 주란의 유해가 뿌려진 당산저수지로 향했다. 따가운 가을 햇볕 아래 저수지 둑길을 걸었다. 평일 오후라서 산책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저수지 수면 위로 자주색 연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저수지 가장자리 풀숲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렸다. 둑길 끝에 다다랐을 때 민정은 주란에게 결혼선물로 주려던 파란색 차기를 가방에서 꺼냈다. 차기는 아직도 호텔 로고가 인쇄된 하얀색 수건으로 곱게 싸여 있었다. 민정은 수건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차기 두 개를 가지런하게 놓고 바닥에 앉았다.      


 "주란아, 이제야 선물을 주게 돼서 미안해. 나를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가족으로 불러줬던 친구야."


 10년. 민정은 갑자기 조급해졌다. 민정은 학원 원장에게 연락해 2개월 휴직을 신청했다. 원장은 1개월 이상 휴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란의 사건과 관련된 자료는 대부분 원주에 있었다. 민정은 차기를 다시 호텔 수건으로 싸서 가방에 넣은 후, 서둘러 터미널로 향했다.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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