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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May 17. 2020

#3. 응급실에 주란은 없었다.

[르포 소설] 가족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주란은 거기에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난 후, 주란의 숨은 점점 더 가늘어졌고 몇 시간 뒤 멈춰버렸다고, 응급실 간호사가 민정에게 전해줬다. 아파트에서 추락해 화단에 누워 있는 주란을 경비원이 발견했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상태가 위독했다고 했다.

 “주란이가 아파트에서 추락했다고요. 왜요?”

 “자살하려고 뛰어내렸다고. 남편이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살이요? 그럴 리가 없어요!”

 민정은 힘들게 끌고 왔던 여행 가방을 손에서 놓쳤다. 아직 결혼 선물도 못 줬는데, 다리에 힘이 풀린 민정이 병원 바닥에 주저앉았다. 민정은 주란을 보러 영안실에 가겠다고 아우성쳤다. 간호사는 규정상 가족이 아니면 시신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하성재를 만나려고 했지만, 그는 경찰 조사를 받으러 이미 병원을 나선 후였다. 민정은 주란의 이름을 부르며 비명을 질렀다. 응급실 안 다른 환자의 가족들이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민정을 쏘아봤다. 우는 민정을 달래며 간호사가 안전요원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안전요원을 따라 민정은 응급실을 나왔다.

 민정은 울면서 주란의 사망 소식을 전할 친구를 힘들게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둘은 동창회 같은 모임에는 잘 나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결혼 소식도, 사망 소식도, 함께 나눌 친구들이 없구나, 민정은 병원 정문 앞에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민정의 폐 속으로 들어왔다. 코와 입에서 입김이 세어 나왔다. 점점 짙어지는 회색 구름 사이로 작은 눈송이가 휘날렸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원무과에 들려서, 혹시 하성재가 오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성재에게 계속 연락했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민정은 매일 성재에게 문자를 남겼다.  그는 딱 한번 답장을 보냈을 뿐 침묵했다


 경찰 조사가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민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본어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더 이상 출근을 미룰 수는 없었다.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민정의 머릿속은 온통 주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성재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민정이 힘들게 원주에 있는 신혼집을 찾아갔지만, 성재는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다. 민정은 답답한 마음에 원주 북부 관할 경찰서를 찾았다. 수사 담당자라며 최 형사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민정을 몹시 귀찮아했다.

 “실례지만 피해자와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친구인데요.”

 “직계가족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습니다.”

 민정은 어쩐 일인지 하성재가 연락이 안 된다고 최 형사에게 말했다. 그는 시신이 이미 남편인 성재에게 한 달 전에 인계됐다면서, 수사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며 민정을 내보냈다.

 “암튼 저희는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으니 그쪽에 알아보시죠?”

 원주 검찰청 민원실에 갔을 때도 민정은 같은 대답을 들어야 했다.

 “사건번호가 어떻게 됩니까? 피의자 주민등록번호는요?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이 아니면 사건 자료 열람이 불가능합니다.”

 민정이 사건번호를 알 리가 없었다. 남편인 성재의 주민번호는 더더욱. 무엇보다 민정은 피해 당사자의 혈육이 아니었다. 민정은 주란의 주민등록번호도 몰랐다. 민원 담당자는 피해자 직계가족의 위임장을 받아오면 열람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민정은 속이 탔다. 민정이 알고 있는 직계가족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딸조차 잘 알아보지 못했던 주란의 엄마뿐이다. 민정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주란의 엄마가 있는 시설을 겨우 찾았다.

 “자매님,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의 서명으로 위임장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요양원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민정은 충격적인 사실에 놀랐다. 주란의 사망 소식이 요양원에는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이 심해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주란의 엄마와 마주 앉아 민정의 뇌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슴을 조이며 저녁뉴스를 봤지만 주영의 사망사건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민정이 주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마치 포토샵으로 지운 것처럼 세상에서 주영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었다.

 주란이 갑자기 죽고 난 후 민정은 울음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민정이 주란에게 가족이었듯이 주란도 민정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이었다. 주란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민정을 망가트렸다. 민정은 서울로 이사했고 다시는 울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민정은 일상 속으로 강제 귀환했다.

 처음 몇 년간, 민정은 기일이 되면 요양원을 찾아 주란의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주란 엄마와 민정의 인연은 주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주란이 사망하고 나서, 민정은 주란 엄마와의 연결점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다 요양원을 향한 민정의 발길은 뚝 끊어졌다. 기일이 되면, 민정은 주란에게 선물하려 했던 차기를 꺼내 홀로 주란을 추억했다.


글/ 사진: 박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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