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꿈
서구의 근대 합리주의 정신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서양철학자를 한 명 꼽으면 르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진리는 감각적 경험이 아닌 순수이성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제 1 철학에 관한 성찰> (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에서 그는 이러한 주장을 꿈과 연관 지어 전개하였다. 즉, 꿈속에서도 깨어있을 때만큼 생생한 감각적 경험을 하는데, 꿈에서의 감각적 경험이 환각인 것처럼, 현실에서 얻어진 감각적 경험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에 의존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감각적 경험은 의심해야 하고, 이처럼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자신의 존재까지도 의심하는 단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심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탄생한 명제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이러한 그의 명제는 정신과 육체를 명확히 구분하는 이원론으로 이어졌고 이성과 논리적 타당성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하는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꿈을 연구하는 서양 학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꿈이 왜 과학적 사유의 대상으로써 가치가 있는지 입증하는 데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기존 학계에서 꿈을 중요한 연구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또 더 나아가 꿈이 존중받지 않는 문화 속에 있기 때문에 글의 초점이 그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무척 역설적이게도 합리주의, 이성주의 시대를 연 근대 서양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가 그의 철학 체계를 확립하게 된 데에는 1619년 11월 10일, 23세의 나이에 꾸었던 일련의 꿈이 계기가 된 것이다. 데카르트는 올림피카 (Olympica)로 알려진 자신의 일기장에 이 꿈에 대한 내용을 기록했는데, 두 차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잠든 후 세 번째 꿈에서는 꿈을 자각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스스로 해석한 내용을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지식이 만들어지는 방법을 개혁해야겠다는 일생의 사명을 새기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이 날의 꿈을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다. 이성을 중심에 둔 철학 체계가 꿈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알리기 어려웠던 것인지 그가 살아있는 동안 올림피카를 출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내용은 1691년 Adrien Baillet이 쓴 그의 전기 (Vie de Monsieur Des-Cartes)를 통해 세상이 알려지게 되었고 역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역사의 가장 흥미로운 아이러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꿈은 인류사의 여러 영역에서 - 과학, 음악, 문학, 의학, 철학 -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특별한 꿈들 - 악몽, 자각몽, 예지몽 등 - 역시 창의적 문제 해결을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서는 이러한 특별한 꿈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